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Oct 27. 2024

전환

 어떻게든 대학교에 들어왔고 어떻게든 살았다. 나의 우울은 간헐적으로 올라와 마음을 찔러대곤 했지만 더 이상은 그것을 몸 어딘가에 새길 수도 없었다. 조금은 답답함을 느꼈고 몇 번이나 충동의 얼굴을 보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은 행복했고 가끔씩 얼굴을 보이는 고양이가 품 안에 자리를 잡을 때면 살포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생각보다 사람의 품을 아주 좋아했고 귀로 흘러들어오는 사람의 목소리와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을 사랑했다.


 단맛이 나는 두근거림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 좋았다. 좋아하는 영화나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약속으로 채워지는 달력이 좋았다. 같은 맛만 가득하던 하루에 다른 맛의 사랑이 들어오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다가올 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에서나 있을, 그러나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사랑하는 이들과 하루를 함께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함께 가꾸어주는 사람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몸을 상처 입히지 않아도 되었다. 가끔 충동이 올라오긴 해도 전에 비해 능숙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를 상처 입히는 것은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까지 함께 상처 입히게 되는 것이니 차마 나의 몸을 아프게 할 수가 없었다. 슬픔의 손길로 젖어든 눈가를 보고 싶지 않았기에.

눈을 감고도 찾아낼 수 있었던 날붙이는 어디에 뒀는지 한참을 생각해야만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샀던 날붙이들은 원래의 용도로 돌아갔다.

계절의 향기는 선명해졌고 그 틈새에 걸려있는 새벽의 별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입안에서 사랑이 담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손끝의 감각이 선명해졌다.



"너, 좀 달라진 것 같아."


여름방학 아래서 번진 밤하늘을 보고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엄마는 허리를 숙여 건조기에서 따스한 빨래를 꺼냈다. 대화가 잠시 멎은 사이 무엇이 달라졌을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짚어낼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니 엄마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다.


"밝아졌어, 전보다 훨씬 더. 호기심도 생기고, 잘 웃고. 정말 다른 사람 같아."


정말, 그러네.


내가 사람을 곁에 두고 살아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사는 의미라는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엄마, 진짜 사람 일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는 것 같아."


"그럼, 가보기 전까진 모르지."


여전히, 여전히 아프곤 하지만

그래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이 곁에 있어 다행이다.


하루 끝에 사랑을 담아낼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 딸, 잘하고 있어."


이 한마디에 담긴 사랑과 그 따스함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야.






이전 06화 [어제의 나를 안고 살아가] 휴재 공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