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덕에 작은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태껏 살아왔던 텅 빈 삶에 약간의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하나의 꿈을 찾고 싶다는 의지가 싹을 틔웠다.
내 삶의 색은 아직 옅었고 삶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의지도 아주 작았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은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당장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랬기 때문에 삶에 애착을 가질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키워왔던 꿈을 찾아내어야 했다.
많은 꿈을 품어 왔었다. 가족의 의지가 섞인 꿈도 스스로 찾아낸 꿈도 있었다. 모든 꿈이 특정 직업의 이름을 하고 있었고 그는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며 또 다른 압박감을 낳게 하곤 했었다. 그 직업의 이름을 달지 않으면 나는 결코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그 누가 꿈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마음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사랑스러운 것이 꿈인 것을. 나는 꿈이라는 틀 속에 여태껏 나를 가두어 오며 새로운 감옥을 만들어냈다. 희망의 가죽을 덮어쓴 새까만 감옥을.
그 작고 차가운, 눈이 아플 정도로 강한 색을 내는 가짜 꿈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하나의 껍질을 벗겨낸다. 구불구불 선을 그리며 기어나가는 한 마리의 뱀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담은 이 글을 '탈피'라 부르겠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부드럽고 여린 손을 갖고 있었던 어릴 적이었다. 언젠가 그런 말을 입에 담았던 적이 있었다. 그림이니 글이니, 많은 것을 입에 담았고 많은 것에 꿈이란 이름을 붙였다. 재능이 있대, 소질이 있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적마다 그런 말을 들었고 그런 말에 취해서는 꿈을 꾸었다. 닿지 않을지도 모를, 어쩌면 닿을지도 모를 꿈을 말이다.
"야는 글을 참 잘 쓴다. 그림도 잘 그리고... 이쪽으로 가게 해도 되지 않겠나?"
언뜻 들려온 외할아버지의 말씀에 아버지의 말씀이 얹어졌다.
"아유, 좋죠. 저도 예전에 그림 그리면서 살고 싶었는걸요."
좋은 말인 줄만 알았다.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보자. 허리를 바로 세우고 앉았다. 숨을 죽여 보았다.
"그런데 그 직업은..."
그러나 짧은 말 한마디에, 말의 숨결이 완전히 식는다.
"돈을 못 벌잖아요."
문학은 곧 문자로 그려나가는 예술이었다. 짧은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된다. 그 안에 무엇을 담아낼지는 우선 창작자의 손에 있다. 오롯이 자신을 담아내고 사람들 앞에 내보인다.
배를 곯기 딱 좋은 직업이랬다. 꼭 가족들만이 그러는 게 아니라 예술 분야의 뒷면을 보면 꼭 그런 말들이 따라다녔다. 행복이란 말로 가려내어도 결국 배를 곯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하고 슬프고 차가운 말을 뱉어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타인이 읽어주지 않으면 결국 바닥에 묻혀 힘을 잃고야 마는 것이 예술이 아니던가.
그런 슬픈 말로 꿈이 얼룩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보다 빛나는 사람들은 차고도 넘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겨우 그런 사실 하나로 간신히 찾은 꿈을 놓아 떨어뜨리기엔 너무나도 아깝다. 무엇이든 스스로를 채울 만한 것이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닌가.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할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지킬 것이 있다는 것이니까. 배를 곯는다는 말을 들어도, 힘들게 산다는 걱정을 들어도 사랑스러워할 수 있는 꿈이 있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