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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3. 2024

나는 내가 싫으면 안 돼?

그 물음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몇 번이나 내가 가진 우울 안에서 맴돌며 밖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든, 나는 나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며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나를 싫어하는 순간 나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금기를 깨 버린 사람이 되는 모양이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몸서리치도록 싫어도 그저 좋은 척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는 없었다. 손을 꼭 잡고서.


 하지만 나는 나를 미칠 듯이 싫어하고 미워하면서도, 내 등과 내 손에서 거칠게 나를 뜯어내어 기억의 흙 속에 파묻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려 가며 손톱을 바짝 세워 흙을 파내고 있는 것이었다.


 손톱 밑이 붉어지도록.


 내가 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 누구보다도 괴로워하고 아파하면서도, 나는 나를 밀쳐 다시 흙 속에 파묻고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며 미운 얼굴을 하고 돌아서곤 했었다.


 그러나 차마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저 본능적인 두려움인지, 아니면 나도 알지 못했던 애정과 연민이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어느 한쪽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모두 뒤섞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나를 구하기도 하고 파묻기도 하며 살아갔다. '왜 내가 나를 증오하면 안 되는가'에 대해 몇 번이나 물음을 던져 가며.



"지원님, 잊지 마세요, 지원님을 구할 수 있는 건 지원님 뿐이에요. 아무리 좋은 말을 듣는다 해도, 말을 듣고 손을 잡아서 끌어올릴 수 있사람은 결국 나 자신 뿐이에요."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 도움을 주셨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따뜻한 품이 다시 한번 몸을 감싸는 듯했다. 온기가 느껴진다.


 나는, 나를 정말로 미워하는 걸까?

희게 타들어버린 마음이, 깊게 파묻어 이미 흙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라 믿었던 마음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낯선 감각이다.


 내가 느낀 증오의 감정은 정말 나를 향한 것이 맞았을까?

사실 모진 말을 해서라도 나를 괴로움으로부터 떨어뜨려놓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손끝도, 발끝도, 눈도,  돌처럼 굳어있던 것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공간에 해가 들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조금은 움직일 수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어색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의 사고에서 삐걱거리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누구보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깊은 곳에는 '더 이상 내가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불투명한 삶이라는 것은 마치 재난 상황과도 같아서 빠르게 멀어지고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가 멎는 것만 같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나는 나의 눈을 좀 더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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