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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06. 2024

무르고도 무른

 상담을 받은 뒤에 스스로를 해치는 습관이 완전히 사라졌나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빈도가 줄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원망하고 있었고, 오히려 무기력에서 조금 벗어난 그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우울의 늪에 빠져들었다. 약간의 힘은 희망을 끌어오기는커녕 미뤄두었던 죽음을 당겨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작은 충격으로도 휘청거렸고, 죽음을 향한 충동은 가라앉지 않고 매일같이 일렁거렸다. 죽을 용기는 없었지만 죽음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외부의 환경이 조금만 비틀려도 크게 흔들렸다. 가족 구성원 간의 작은 다툼과 불화에도 크게 상처를 입고는 왼팔에 그 감정을 새겨내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런 다음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후회를 하고 말았다.


 완전히 없었던 일처럼 상처가 말끔히 사라지려면 반년이 걸렸다. 딱지가 떨어지고 흉터가 흐려질 때까지는 절대 소매를 걷을 수 없었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겉옷을 입어 가며 가려야 했고 어쩌다 반팔을 입어도 상처만이 눈에 보여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의 시선도 나의 시선도 결국 왼팔에 고정된 채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린 한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 무서웠다.


 낙인의 몸뚱이와 꼬리가 거무튀튀한 색을 내며 달라붙을 때 즈음에는 상담을 하는 날이 돌아왔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주춤거리며 상담실 안으로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겉옷에서 한쪽씩 팔을 빼내었다.


 숙제를 해오지 못한 것만 같아 도무지 선생님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입에 붙어버린 말을 또다시 내뱉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또 괜찮다고, 그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고는 약이며 밴드가 담긴 구급상자를 꺼내 상처를 소독하고 물이 닿아도 떨어지지 않도록 두꺼운 밴드를 붙여주셨다.


 돌아온 집에서는 온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종종 슬픈 눈을 하고서 뻣뻣하게 굳은 내 몸을 끌어안으며 등을 쓸어주셨으나 나는 그 포옹이 너무나도 괴로워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 분위기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포옹이 낯설어 어찌하지도 못하고 그냥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어머니의 표정에서는 나를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다는 소망이 뚜렷이 보였으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쓸어내리는 그 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굳어가고 있다는 걸 그때쯤 확실히 느꼈다.


 몸에 있던 모든 감각은 상처를 입힐 때가 아니면 살아나지 않았다. 새로운 밴드를 붙이고 흉터가 사라진 뒤에도 몸이 무거워질 때면 항상 내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힘을 들여 우는 것마저도 지치기 시작했다.

웃는 것에도 부쩍 서툴어졌고 바깥을 나가도 공기의 상쾌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꿈속을 헤매며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간단한 단어를 떠올리는 것마저도 힘이 들어 한참을 생각해 내야만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점점 무뎌졌고, 내면은 점점 물러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억의 뒤편에 밀어 넣은 채로 잊고 있었던 것이 다시 떠올랐다.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꼭 품어왔던 것은, 내가 부서지고 망가져도 주변의 사람들만은 평소와 달라지지 않길 바랐던 작은 욕심.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


 나는 몸의 고통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잊으려 했었다.

실제로 바랐던 것은 사람의 온기였지만 내가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걸 사랑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게 가족 간의 사랑이든, 친구 간의 우정이든, 어떤 의미에서든.


사람의 온기를 받을 일은 앞으로도 없을 테니 어서 끝내버리자고, 나는 몇 번이나 나를 밀어내었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넬 때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 몸을  가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건 내가 그만큼 무르고 아픔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쉽게 삶을 내려놓으려 했던 것도, 다가오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도,

새롭게 받을 상처가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후의 도피를 하려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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