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건네주는 사랑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외출을 할 때마다 괴물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떨리는 몸이 싫었고, 멀쩡하지 않지만 멀쩡한 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싫었다. 굽은 등이 미웠고 자꾸만 땅을 향하는 시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삶에 대한 작은 목표도, 그럴듯한 소망도 없는 것이, 이대로 가다간 틀림없이 망가지고 부서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자꾸만 내 앞에 일렁이는 환영으로 나타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궁지로 내몰았다. 벗어날라 치면 다시 떠밀기를 반복했다. 일상에서 행하는 작은 일들마저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정성이 담긴 밥을 먹는 것도, 해를 보는 것도, 몸을 일으켜 씻는 것도 무거운 철근을 드는 것처럼 괴롭고 힘겨운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방문을 잠근 채로 드러누워 허공만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짐짝보다 못한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빨리 이 삶을 끝내는 것이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발을 들인 다음부터는,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삶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시도조차도 하지 못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내가 생각보다 겁이 아주 많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끝낼 수 있는 방법'같은 건 세상에 없었다. 내가 나를 멈추기 위해 어떠한 충격을 가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뿐만이 아니라, 평화로이 일상을 보내던 다른 사람에게도 우울의 손길이 닿게 되는 것이다.
죽어서까지 저주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몇 번이나 쓴맛이 나는 눈물을 흘렸고 스스로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로 잠들다 깨어나길 반복했다. 코를 향해 들어오는 공기가 얼마나 상쾌한지 알 수 없었고 어디에 몸이 닿아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갈수록 숨이 막혀가던 나는,
결국 나에게 손톱을 세울 수밖에는 없었다.
하나 둘, 내가 나에게 새기는 낙인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형태도 모양도 다양한 상처가 마음 이곳저곳에 생겨났다. 붉은 실이 팔을 휘감는 것처럼 보였다. 쓰라리고 부끄러운, 내가 나에게 새겨버린 상처가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야 말았다.
두 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들리지도 않을 사과를 거듭해 입 안에서 녹여댔다.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용서를 빌었고 끊임없이 나를 벌하는 나날을 이어갔다.
스스로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무서워하고 멀리하게 된 것은 그때가 시작이 아닐까. 나는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나를 벌하고 밀치는 사람이었다. 나를 등진 그 어깨를 몇 번이나 끌어안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그 누구의 사랑도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내가 나를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로부터 돋아나온 뼈대가 없으니 어떤 사랑도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뭉그러져 버리는 것이다.
"... 지원아."
정신이 든 끝에는 상담사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걱정이 어린, 슬픈 표정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은, 안타까움이란 감정이 형상화된 듯한 표정. 한 번이라도 눈을 깜박였다간 넘쳐흐를 것 같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스스로만을 지켜보느라 타인의 감정에 둔감해진 나도 그 표정을 보고선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책상만 훑던 나는 우물거리며 입속에서 한 마디씩 물기 어린 말을 뱉어내었다. 입술이 떨리고 아래턱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듯했다.
"...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
"아, 선생님... 전 제가, 제가 너무 싫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방법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나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
숨이 차오른다. 물속에 갇힌 것처럼 먹먹한 숨이 자꾸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명이 들린다.
날카롭고 아프게, 두 귀를 통과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던 모든 소리가 입을 다물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나의 끝을 알리는 듯한 그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가 손을 잡고 섞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요,
저는 죽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살고 싶은가 봐요.
매일 이렇게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그 증거인가 봐요.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숨 쉬어, 지원아, 숨!"
희미하게, 그런 말이 들렸다.
귓가에 울리는 그 말이 아득히 멀어지기 전에,
내가 정말 사라지기 전에,
이 바보 같고 미련한 삶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숨을 쉬어야겠다.
어떠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강했을 것이다. 흔들리고 꺼져버릴 듯한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어떻게 붙잡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몇 번이나 가슴을 부풀려 가며 나를 살려내야 했다.
나는날 다루는 것에 굉장히 미숙했다.
자꾸만 나를 속였다. 내가 느끼는 괴로움은 전부 동정심을 얻기 위한 하나의 연극일 거라고 단정 지었다. 억누르고 솔직하지 못했던 그 어설픈 응급조치가 나를 구렁텅이로 이끌었다. 무엇하러 고통이란 것을 가짜와 진짜로 나누려 했을까. 남이 보기에 크든, 작든, 내가 괴롭다고 느낀 이상 그것은 괴로운 것이 맞을 텐데. 결국 답은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
"... 정말 죄송해요."
한결 차분해진나의 목소리에 선생님께서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선생님한테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야. 잘못된 것도 아니고."
따스한 눈빛이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것도 결국 네 감정을 표현해 내는 한 방법이니까, 괜찮아. 잘못된 것도, 혼날 일도 아니란다.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 앞으로 찾아나가면 돼. 선생님이랑 같이 천천히 찾아가 보자."
나는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안에 따스한 온기가 내려앉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생생히 느끼는 사람의 온기였다.
"그리고, 우리 지원이가 이렇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은 너무 안타깝고 슬퍼."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잡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놓고 싶지 않았다. 그 따뜻한 손 덕분에 잔뜩 날이 선 나로부터 조금은 멀어질 수 있었다.
불안과 우울을 차마 남에게 옮길순 없었기에 나에게 향하도록 했던, 그 서툴고 불안하고 몹시도 흔들리던 과거의 사계절.
'날 두고 가지 마, 사랑해줘.'
떠나려 했던 그 순간 들었던 작은 속삭임이, 이제는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어리고 서툴기만 했던 나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자랐다.
네 마음에 박혀 있던 손톱을 빼내고 너를 놓아줘. 너를 아프게 하지 말아.
그리고 한 번만 더 꼭 안아주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줘.
내가 오래도록 너에게 바라는 건 사실 그것 하나뿐이었단다.
한 시간만 더, 하루만 더,
너를 사랑해줘. 새된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리고 종일 입술을 오물거리며 어리광을 부려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봐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