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었던 때가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내내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때.
다리 수술 후 회복기간이 길어져 재활에만 몰두하던 시기였다. 학교를 그만두기 전에도 대인관계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등 뒤에 두고 집으로 향하던 그 순간부터 또래 친구를 만날 일은 대폭 줄어들었다. 다니던 재활병원과 청소년 상담센터가 아니면 사람을 만날 길은 없었다.
물론 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또래 친구를 만날 길은 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잃기 싫다는 마음으로 두 귀와 시야가 단단히 막혀 있었다. 믿지 않으면 잃을 것은 없으니 아무도 믿지 말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다그쳤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람과 부대끼는 모든 것들이 그저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아파서, 작은 기회도 외면하고 곁에 있던 가족들과 최소한의 공적인 인간관계만을 남긴 채로 살아갔다.
내가 쌓아둔 벽은 매우 차가웠으나 아늑했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성에 사는 느낌이라고 할까, 차가운 벽의 안쪽에는 거울만이 가득했다. 오로지 나, 나만을 비추고 있었다. 거울로 만들어진 곳에서는 나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할 창구는 오로지 뉴스나 SNS 뿐.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속에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사람을 해치고 미워하는 모습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새기려 해도 좀처럼 새겨지지가 않았다.
나를 잃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수밖에는 없겠다.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는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서워져서 함께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만 안심하고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유리파편처럼 날카롭게 가슴속에 박혔고 상담 센터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탈 때는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거나 최대한 들어 올려 하늘만을 보아야 했다. 식당이나 카페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라도 하면 속이 울렁거려 간단한 주문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나를 감싼 거울의 개수는 많아졌다.
거울 안에서는 계속해서 내가 말을 걸어왔다. 그렇지만 그 말들에 온기가 있지는 않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조롱했고 내가 하루빨리 나를 내던지길 바랐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사람의 눈조차도 보지 못하는 나는 더 이상 사랑받을 가치도, 이 세상에 살아있을 가치도 없다고.
그렇지만 나는 차마 나를 내던질 수가 없어서, 미칠 듯이 내가 싫었지만 나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작은 손톱을 물어뜯고 때때로 몸을 꼬더라도 몸속에 숨겨진 심장만은 멈추게 할 수가 없어서...
때로는 밀쳐내고 울다가도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을 하는 나날을 이어갔다.
어서 나를 사랑해 달라고, 어서 나를 예뻐해 달라고 몇 번이나 빌고 빌며
그 작은 몸을 안고 방법도 모르는 사랑을 계속해서 찾았다.
나를 지탱하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망가지는 그 와중에도,
나는 간신히 나를 짊어진 채로 얕은 숨을 내쉬며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