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살얼음판을 걷던 날들. 그때의 나는 모든 것들이 미웠다. 사방을 메운 채로 나를 비웃는 거울들, 서로를 미워하고 잡아먹을 듯이 구는 사람들, 가뭄이 와 버린 듯한 세상.
모든 것이 밉고 무서워서 나는 거듭해 나를 감추고 숨기려 했다. 두려움은 맨 처음 눈을 떴을 땐 덩치가 큰 어른을 향했으나 끝내는 작은 어린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어린아이의 눈빛마저도 두려웠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평범한 사람들이 다가오는 순간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온 공포일까? 나는 왜 부르르 몸을 떨어대는 사시나무가 되어버렸을까?
침침한 방구석의 침대에 틀어박혀 몇 번이나 질문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 근원 중 하나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넌 좀 가만히 있어!"
학교 복도를 울리던 그 거칠고 아픈 목소리 탓일 것이다.
소중한 친구를 지키고 싶어 내뱉었던, "네가 정말 옳다고 생각해?"라는 나의 물음이 단 한 마디에 소리를 잃고 말았던 그날.
"쟤한테 말 걸지 마."라는 한 마디에 응하지 않고 뒤돌아섰던 그날.
기억에 작은 얼룩이 묻었을 뿐인데. 이젠 그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곳으로 오지 않았나?
그렇지만 내 목을 죄고 이리저리 후려치던 그 수군거림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눈이,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나를 비추던 거울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계속해서 나를 좀먹는 그 괴로운 순간들이 사라지지도 않고 내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평생, 이 끈적한 기억의 늪 속에서 지내야만 하는 걸까?
단 하나의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아도, 거기에서는 비명이 들린다. 사람이 아닌 괴물만이 보였다. 생명을 빼앗아 삼키고 더럽혀진 입을 닦는, 정체도 모를 괴물들.
좋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거야.
아니, 좋은 사람이란 게 있긴 할까?
당장 나부터도 이렇게 칙칙한걸.
이렇게 좁고, 어둡고 축축한 마음속에 누굴 들일 수 있을까.
그런 말들은 불안한 미래와 맞물려서 큰 불꽃을 일으키며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도 불안정한 데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도 모르는, 그저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루어진 빈 껍데기.
그런 껍데기를 가진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버틸 수가 없었다.
'싫어, 전부 다 싫어!'
나는 분명히 잘 지내고 있었는데.
아침이 오면 분명히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시작하는데,
따스한 햇살도 사랑하는 가족도 모두 그 자리에 있는데...
나는 왜 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걸까.
다 지난 일인데, 이제는 그런 일에서 벗어났는데.
내가 이상한 거겠지?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거울로 이루어진 벽에 갇혀 소중한 가족을 보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리고 그 원망과 괴로움은...
속에서 울리는 것을 넘어 점차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