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딘가에서

익숙해진 것 같아도 그리운 날

by 이지원

떠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냥 좋은 글을 한 편이라도 써야 할 텐데, 기분이 가라앉을 때만 찾으니 글도 어째 무겁기만 하다. 그렇게 나쁘진 않은 인생이었는데 돌아보면 왜 이리 슬픈 것만 보이는지.

최근 들어서는 기억이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살 날을 봐야 하는데 살았던 날만 보고 자꾸만 뭘 정리하고 싶어진다. 쓰던 물건이나 마주하는 사람이 낯설게 느껴진다.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고 이 불안감이 매일 밤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제야 이야기하는 부끄러움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추억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적이 있었다. 먹었던 것, 받았던 물건의 포장지, 여행을 다녀온 뒤의 짐을 한참 동안이나 풀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건드리면 또 사라질 것 같아서 그대로 두고 있었다. 쓰레기와 짐으로 지은 거대한 성과 같았다.


그런 좋은 날은 긴 꿈과 같아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몸을 담아두었던 방이 비는 것을 몇 번 상상했었다. 정리를 잘하지 못하니 야단도 많이 맞았었다. 그래도 내 방이 비는 날에는 세상 그 어떤 방보다 깨끗하게 해 놓고 가야지. 적어도 열어보는 사람이 탄식을 내뱉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잠깐 떠난 것처럼, 금방 돌아올 것처럼 그렇게 해놓고 가고 싶다.

아끼던 물건, 쓰던 것, 사랑했던 모든 것이 아마 그 안에 남아있지 않을까.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봄이 다가올 것을 생각하면, 떠나간 고양이가 생각난다.


2년 전 3월 초에 떠나간 고양이는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꿈에 나왔다. 자러 오라고 이름을 부르며 이불을 두드리니 어두컴컴한 거실 어딘가에서 방까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래간만에 느끼는 따스함이라 한참 동안 꼭 안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애가 날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가야지 하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사진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하며 다시 새기고 있다.


나중에 들려줄 이야기는 만들고 가야 하니 잘 지내다가 가야지.

무엇을 사랑했는지, 무엇을 힘들어했는지.

그런 것도 알지 못한 채로 가면 너무 심심하니까.

줄이고 줄여 30분 정도는 떠들 수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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