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by 이지원

도망치기 위해 한 가지 일에 빠져 있는 날이 늘었다.

무엇 하나에 꽂히면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몰두하는 일이 잦다. 건강이 깎여 나가는 것도 느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삶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자꾸만 도망치려 한다. 내가 하는 어떤 일도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저도 모르게, 그냥 살고 있다.


어제 오후 1시쯤 거실에 나가서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푸른빛이 많이 섞여 있었다. 바깥에 나가 찬바람을 맞아본 것이 언제였던가 하고 기억을 되돌리려 하면 머리가 아파왔다. 시름시름 앓는 닭처럼 자리에 누워 있기만 했다. 저녁이 다가오고 아침이 밝아오는 것도 이따금씩 확인하는 시계로 알았다. 분명히 살아 있는데 죽어있는 것만 같다.


저녁때쯤 되어서는 꾸지람을 들었다. 그렇게 살다가는 분명히 나중에 실수를 하고야 말 것이라고.

남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은 별 볼일 없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길에 서 있다. 축 늘어져 있지도 않고 행동이 빠르다. 끼니도 제때 먹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나만의 세상에 빠져 살았고 그 안에 남을 들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마저도 별난 아이라고 이야기하던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을 들이며 살아갔다.


사람을 좋아하고 붙임성 있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것이 이상적인 세상에서 이렇게 침침한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쭉 좋아할 만한 모습을 보이는 수밖에.


태어나야 할 세상이 잘못 골라진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만 있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독립생활을 하는 짐승이 죽고 나서 사람의 몸을 골라 들어간 걸지도.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뭐가 되었든, 나의 본래 모습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침에 잠시 눈을 떴을 때 깨달았다. 적어도 이 안에 계속 몸을 담아놓는 동안에는 마음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혹시 모를 위험도 지금 당장은 대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짐작했고 그로 하여금 씁쓸함을 느꼈다. 단지 내가 나인채로 있을 수 없는 세상에 섞여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온몸이 땅 밑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만 같다.

그냥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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