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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한 Feb 19. 2024

신께 보내는 편지

신이시여


신이시여

그대는 그곳에 계십니까

저 먼 하늘에 비치는 별들보다도 더 멀리

우리 은하를 벗어난 하늘 저 어딘가에 계십니까


신이시여

그대는 저를 내려다보고 계십니까

그대의 눈에 작게 반짝이는 이곳 지구라는 작은 점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제가 보이십니까


신이시여

제 삶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대의 눈에 그저 한낱 먼지에 불과하겠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악행을 저지르기도

크고 작은 죄를 지어보기도 하였고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신이시여

저는 가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들을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지극히 이기적인 내적 동기에서

벌이는 행위들일 때가 많습니다


신이시여

저는 주변 사람의 성공을 보며 배가 아팠던 적도,

주변 사람의 실패를 보며 내심 짜릿해한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스스로가 간사하기 짝이 없는

한낱 인간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이시여

저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인간이기에 불완전하다는 말이 더 맞겠지요

우리 인류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한없이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신이시여

저는 가끔은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기쁨이 버거워 환희의 춤을 추기도 하고

슬픔에 사무쳐 울거나 분노에 지배당하기도 하지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신이시여

저는 살아오며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앞으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날이 물론 있을 것입니다


신이시여

저는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비열한 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마트라는 곳에서 빵을 훔치기도 했지요

인간들이 돈이라는 종이와 물건을 교환하는 곳을

우리는 마트라고 부릅니다


신이시여

저는 사람의 마음에 새빨간 생채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 가까운 이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지요

나약한 저 또한 그런 상처가 온몸에 남아있습니다

여기저기 긁히고 찢긴 흔적들이 몸에 가득하지요


신이시여

이렇듯 저라는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1차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비열한 짓을 하기도 하죠

더럽고 추악한 것들도 그 무언가를 위해서

감수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인간도 결국

하나의 짐승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신이시여

그대는 인류에게 이성과 의식이라는 선물을 주셨지만

인간은 그것을 현명하게 다루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입니다

인류의 뇌 속에는 파충류의 뇌가

여전히 남아있는 영역이 있지요

그곳을 우리는 R-영역이라고 부릅니다


신이시여

그대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거대한 우주의 한 점 티끌 같은 제 삶도

저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하지만 지구에만 해도 수 백억 개의 삶이 존재합니다


신이시여

지구의 하늘에 보이는 저 반짝이는 것들은

지구보다 몇 천배가 큰 행성과 항성들이지요

그렇게 반짝이는 거대한 것들을 담은 은하는

우주에 도대체 몇 개가 존재하는 것인지

저의 상상력으로는 담기조차 버겁습니다


신이시여

저 별에서 보는 우리네 지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이 작은 지구 안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신이시여

이제 이곳 지구는 나무로 만든 종이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싸우는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자산가들과 노동자들, 여성과 남성, 문화와 다른 문화,

종교와 다른 종교 등 저들끼리 싸우고

난리도 아닙니다


신이시여

인간은 너무도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법과 윤리와 도덕이라는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러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길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기도 합니다


신이시여

인간의 마음에 차별과 혐오와 공격성을 숨겨둔 것에는

그대의 어떤 깊은 뜻이 깃든 일입니까

그것들 덕에 이곳 작은 지구 별에서는

우리 나름대로 분주합니다


신이시여

인간들은 불완전하며 불쌍한 아이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장난감 개수로 경쟁을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인간은 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집이 84 타입이니 59 타입이니 하는 탁상공론을

꽤나 진지하게 하며 서로 으스대고 열변을 토합니다


신이시여

광활한 이 우주 안에서 한 점의 먼지 같은 지구이지만

이곳에서 누구 집이 더 크냐며

인간들은 서로 으스대며 경쟁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말이죠

그대가 계신 그 별에서 보면

결국 그것을 모두 합쳐 놓아도

티끌만 한 점 한 송이일 뿐이겠지만요


신이시여

이곳에서 우리 인간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도 합니다

수컷과 암컷이 한 쌍을 이루어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를 만드는 행위를

우리는 결혼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반대의 과정인 이혼도 하지요


신이시여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 두 인간 간의 결합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게 결합했다가

시간이 흘러 분리가 됐다는 이유만으로도

누군가는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신이시여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두 인간의 결합은 인간의 관점에서 본

수소 원자의 결합과도 같은 미시적인 일이니까요


신이시여

우리 인간들은 수소 원자가 결합하여

분자가 되는 과정에는 관심도 없으며

그러한 과정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바삐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들이 그러하듯

수소들도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신이시여

이 광활한 우주에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생명체는

정녕 지구에만 빚어놓으셨습니까

저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면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신이시여

제 작은 눈에 보이는 수많은 저 별들 어딘가에서도

누군가가 반짝이는 작은 점인 지구를 보며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이지요


신이시여

정녕 지구는 그렇게나 외로운 행성인 것일까요

인간의 삶이 근원적으로 고독한 것도 그것 때문일까요

지구의 숙명은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인 것이고

그렇기에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인간도 하는 수 없이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신이시여

그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외로움에 익숙해졌으며

고독이 주는 고요를 즐길 줄 아는 자가 되었으니까요


신이시여

이 외로움과 고독이 지구의 숙명이며

그렇기에 인간의 숙명이라면

우주의 티끌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지요


신이시여

저는 가끔 밤하늘의 달과 별을 올려다보면

왠지 모르게 외롭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밤이 주는 그 알 수 없는 고독감이 좋습니다

문득 제가 이렇게 무해한 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하늘의 저 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지요


신이시여

그러나 저는 내일도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에

발을 디디고 한없이 미시적인 행위들을 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저는 한없이 덧없는 일들을 하고는

나무로 만든 종이를 받지요


신이시여

그곳에 가면 이렇게 말하는 저 또한

집이 59니 84니 하는 어리석은 논쟁을 하곤 합니다

나무로 만든 종이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비열한 짓도,

더럽고 추악한 짓도 어느 정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죠


신이시여

그러나 저는 바로 그 순간에도, 우주의 광활함과

밤이 되면 어김없이 눈에 보이는 별들의 존재와,

그곳에 살고 있을 생명체들과,

당신에 대한 생각들을

이 좁은 가슴속 마음 한편에 두고 살아갑니다


신이시여

그렇기 때문인지 저는 다른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자동차라는 바퀴가 달린 굴러다니는 말과 같은 도구와

집의 크기와 옷에 걸치는 천과 가죽들에 대한 욕망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

그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나 봅니다


신이시여

물론 저는 그것을 잘 숨겨서

사람들에게 크게 미움을 받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을

제 주위 동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신이시여

지구에서는 다르다는 것을

참으로 이상하게 취급합니다

그러나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도,

또 저런 사람을 하는 인간도

매우 희귀하고 소중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신이시여

피부가 까맣든 하얗든 누렇든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지구에만 존재하기에

우리 인간 하나하나는 소중하지 않습니까


신이시여

인간은 우주의 희귀종이며,

멸종 위기종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에 완벽하게 적응한 생명체는

어찌 됐든 이 지구에만 존재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신이시여,

그런 우리 인간들은 약간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혐오하곤 합니다

스스로가 그리 귀한 존재인 줄도 모른 채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안에서도 종을 나누려 합니다


오, 신이시여

이렇게 불쌍한 인간들에게

현명함을 하사하여 주소서

이 불쌍한 인간들을 가엾게 여기어

사랑과 평화를 한 아름 선물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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