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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계속 뛰어도 제자리일까?

열역학 제2법칙 :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by 이도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는 이를 잘 설명한다. 앨리스가 “난 계속 뛰는데 왜 제자리인 거죠?”라고 묻자, 붉은 여왕은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는 제자리를 유지하려면 있는 힘껏 뛰어야 해. 더 멀리 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하고.”


어릴 땐 몰랐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지를. 붉은 여왕은 정확히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서 물리학 법칙을..? 꽤나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메세지는 명확해 보인다. 그리고 그 명확한 깨달음은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 살아가며 어렴풋이 품어봤던 가슴속의 의문들이 풀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것은 동화와 철학과 물리학의 만남이다.


"내 인생은 왜 계속 뛰는 것 같은데도 제자리일까?"

"별 것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왜 내 사업의 매출성장은 그대로일까?"

"왜 인간관계는 가만히 두면 점점 멀어질까?"

"그저 삶을 유지하는 게 왜 그리도 힘들까?"


따위의 질문과 고민들은 더 이상 할 필요 없다. 무언가에 큰 발전이 없다고 좌절에 빠질 필요도 없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적어도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심할 것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기보다는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과 각도를 바꿔야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기 위해선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Entropy)는 무질서도의 증가를 뜻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계(system)에서는 엔트로피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자연의 근본적인 원리로, 물질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몸은 시간이 지나면 노화한다. 정리하지 않은 방은 점점 어지러워지며, 관계는 아무런 노력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소원해진다. 이러한 흐름을 막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쉽게 생각해 보자.

우리의 몸이 에너지를 써가며 대사활동을 하지 않으면 주위의 온도와 같아진다. 우리 몸속 세포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섭취한 양분을 에너지원으로 열심히 일한다.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무질서도(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해서 우리는 방을 청소해야 하고, 세포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투입시켜줘야 하고, 인간관계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


이러한 개념을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곧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가만히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동화 속 이야기일까? 아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삶의 어느 한 지점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직장에서 우리가 열심히 일해도 경쟁자들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해도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관계에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으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소원해진다. 서로의 삶은 계속 흘러가고, 우리가 유지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운동을 멈추면 근육량이 줄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않으면 몸은 점점 쇠약해진다.


즉, 엔트로피의 법칙은 우리에게 "유지는 곧 노력"이라는 교훈을 남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점점 흐트러지고 사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현상이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은,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생각이다. 과학적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저 우주 어느 구석에 존재하는 먼지 같은 존재이다. 오만한 시도를 하지 말자. 우주의 법칙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 =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것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대표작 ’창조적 진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고, 성숙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즉,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변화를 창조해 나갈 때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베르그송은 변화 자체를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이 본질적으로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연에서 생명체는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며 진화해 왔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경험을 쌓으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


만약 우리가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 상태에 안주하려 한다면, 그것은 곧 저연에서의 도태를 의미한다. 결국, 존재는 진화할 때만 지속할 수 있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다.

엔트로피 법칙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혼돈, 즉, 무질서도의 증가를 결코 막을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혼돈 속에서 우리가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더 와닿게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돈을 벌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자산은 줄어든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소비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유지비는 발생한다.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재정적 안정도 사라진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잘 나가던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몰락한다. 노키아, 코닥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개인의 기술과 커리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현재 가진 기술과 능력이 10년 뒤에도 유효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꾸준히 독서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사고의 폭이 좁아진다. 한때는 열린 사고를 가졌던 사람도 변화를 멈추면 점점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된다.


즉, 우리는 변화 속에서 스스로를 창조해 나갈 때만 성장할 수 있다. 변화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욱 나아지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엔트로피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점점 무너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어떻게 의미를 창조할 것인가이다.



현상유지를 넘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고, 세상은 항상 혼란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치자. 그럼 결국 이런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현상 유지가 아닌 더 큰 발전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시점까지는 에너지를 끌어 모으면 된다.

생각보다 우리는 잉여 에너지를 많이 남기고 살아간다. 무식하게 투입량을 늘리면 성과는 한계점까지 쭉쭉 늘어난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정체기가 올 수밖에 없다.

에너지는 계속해서 투입하고 있는데, 그저 현상만 유지될 뿐이다. 이때, 절대 좌절하지 말자.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크면 클수록 유지비는 더 든다. 성장 없이 유지만 하는 기간 동안에도 우리는 분명히 특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유지 자체가 큰 성과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시점부터는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물리적인 에너지양으로 승부 보는 단계는 지난 시점이다. 그때는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과 각도를 조정해야 한다. 적절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최대한 적은 에너지로 현상을 유지하는 방법을 먼저 연구해 보자. 더 많은 성과와 성장을 이루려는 생각은 한쪽에 접어두고, 똑같이 현상을 유지하되, 조금 덜 힘들게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즉,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끝없는 성장과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기본적인 것들을 놓친다. 그런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한 번쯤 되돌아보자.

우리가 지금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럴 가치가 있는가?

조금 덜 힘들게 유지하는 방법이 전혀 없을까?

성장과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좌절과 매너리즘에 빠져있지는 않은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만하게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려 하고 있지는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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