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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우화

프란츠 카프카의 글

by 이도한

왕이 될 것인가 왕을 섬기는 전령이 될 것인가 선택하라고 하자,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 모두가 일제히 전령을 지원했다

그렇게 해서 전령만이 온 세상을 달리고 있을 뿐, 지금은 왕이 없기 때문이 무릇 무의미해져버린 포고를 서로 외치고 있다.

누구나 이 비참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 하지만 전령의 서약이 있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아브라함의 마음의 가난함과 가난한 자 특유의 둔중함은 장점으로, 덕분에 하나의 일에 쉽게 집중할 수 있으니 가난함 자체가 하나의 집중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집중력을 동원하는 장점을 잃고 말았다.

아브라함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세상의 단조로움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은 끔찍할 정도로 다채로우며, 그저 한 줌의 현실을 보기만 해도 바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단조로움에 대한 아브라함의 탄식은, 다채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과 충분히 깊이 어울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에 다름 아니다.

“아이고, 세상에”

라고 쥐가 말했다.

“이 세상은 날마다 좁아지고 있어. 처음에는 끝도 없이 넓어서 무서울 정도였어.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어느 틈엔가 멀리 오른쪽과 왼쪽으로 벽이 보이기 시작해서 안심했지. 그런데 이 기다란 벽이 순식간에 합쳐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지금은 마지막 방이고, 막다른 곳의 구석에서는 덫이 기다리고 있어. 뛰어들 수밖에 없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어.”

“방향을 바꿔.”

라고 고양이가 말하고 날래게 쥐를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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