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하는 삶 (2)

자유

by 러비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고리타분한 단어는 바로 '순종'이라는 것이었다. 듣기만 해도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사는 삶은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았다. 종교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시절에는 매번 속으로 콧방귀 뀌면서 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다.


한때 종교에 깊게 심취했을 때는 신의 뜻이라는 걸 알고 싶었다. '신의 뜻'이라는 것에 나도 순종하고 싶었다. 그러나 크나큰 문제는 내가 그 신의 뜻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신은 간편하게 나에게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뭐가 맞는 건지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면 종교활동을 일절 하지도 않았다. 나는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깊이 빠지다가도 금방 싫증을 냈다. '순종'같은 단어에 반항하듯 나는 모든 걸 뒤엎기 일쑤였다. 내 나름대로의 일탈이었다. 가족은 제외하고, 나는 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살았다. 고등학교도 기존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가고, 대학은 당연히 새로운 곳이었고, 아예 가족조차 떠나 혼자 외국으로 나가 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도 직장도 손바닥 뒤집듯이 업종을 바꿔버렸다. 처음에는 변화를 줄 때마다 새롭고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었지만 항상 끝은 별로 안 좋았다. 이제 더 이상 해볼 만한 것도 없었다. 이미 충분히 정신이 너덜너덜 해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이제 안정을 좇아 얌전히 살 줄 알았다.


당연히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 연재글을 쓰게 된 원인인 '사업', 이걸로 기어코 정점을 찍고야 말았다. 사업을 시작하고서부터 벌써 3년이 다 돼 가는 지금에서야 나는 드디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른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그걸 운명이라 부르든, 신이라 부르든, 아무튼 나는 내 힘껏 그에 반항하며 마음대로 살고자 애썼다. 그렇게 가면 갈수록 인생이 버거웠다. 바람이 내 등을 떠미는 듯한 가벼운 느낌은 없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압박감만 있었다. 과학시간에 배운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삶에도 적용되는 것인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써온 것과 같은 과정을 통해 저항을 멈추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나는 '순종'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그것은 신의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어떤 생각이나 의식에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삶을 억지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살았던 건 오히려 삶에 있는 힘껏 저항하고 있을 때였다. 내 생각에 순종이란, 가벼운 바람을 타고 갈 수 있는 힘, 명상하는 마음 그 자체인 것 같다. 즉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현재를 사는 것, 현존하는 것이다.


여기서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운명이란 정해져 있느냐,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운명이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울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각자에게 최상인 운명의 길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거기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지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얼마든지 다른 길로 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도가 매우 높은 오픈월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캐릭터를 잘 키울 수 있는 최상의 루트가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퀘스트(미션)를 받아 얼마든지 딴 루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은 게임보다 더 '현실적'이라 엄청난 서브미션에 금방 길을 잃고 마는 것 같다. 아무도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 현실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 책에서는 자신만이 그 길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외부가 아닌 내부, 내면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명상, 기도, 수행 등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도구인 셈이다.


솔직히 예전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순종하는 것. 자신에게 물어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 그렇게 되면 뒤에서 바람이 날 떠미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이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신과의 협업, 우주가 날 도와주는 느낌, 운이 좋은 사람같이. 그 대목에서 항상 이 경험을 이미 한 저자들이 부러웠다.


정말 가끔, 이렇게 일이 스무스하게 풀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참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더 자주 이런 경험을 하고 싶고, 그게 내가 명상을 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삶에 순응하는 것이고 그게 곧 현존이며 이를 돕는 게 명상이기 때문에. 어쩌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을 테지만.


요즘에는 명상을 따로 시간 내서 하지 않고, 대중교통 이용할 때나 잠자기 전에 잠시 하는데 그것도 좋지만 역시 현존수업과 함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도 잘 안 읽고 있어서 다시 인사이트도 얻을 겸, 현존수업 6회 차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 다시 감정이 널뛰는 일들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이 브런치북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다. 기존에 구상했던 것보다 분량이 많아져서 그런지 벌써 5월이 됐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사업의 방향도 다시 잡혔고, 개인적으로 시작한 일들도 꽤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은 장르로 치면 꽤나 긴 장편소설의 1편, 주인공 성장기나 마찬가지여서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스토리였다. 요즘 트렌드는 고구마는 조금만 먹고 사이다만 쏟아지는 시원하고 빠른 전개가 핵심인데 말이다. 나도 그런 전개를 참 좋아했다만. 빨리빨리를 외치며 조급하게 살다가 지금은 참을 인자를 마음에 새기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언제가 저런 인생 역전 같은 성공기도 한 번 써보고 싶은 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사업은 부업정도로 생각한다면서 아직도 막대한 부를 상상하는 게 조금 모순인가, 싶기도 하지만 원래 인생이란 게 끝날 때까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이전 편에서 '차'에 대한 부정적 생각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돈에도 역시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뒤바뀌어 집착이 됐다가 이제 점점 중심을 찾아가는 것 같다. 돈은 날 더 자유롭게 해 주고, 더 높은 곳을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니까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책에 나온 것처럼 더 많은 돈을 바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라는 이야기다.


앞으로 또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이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려 한다. 이게 내가 현실과 이상 사이를 헤매며 얻은 나침반이다. 그 길을 따라 감으로써 나는 더욱 자유로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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