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하는 삶 (1)

굿 타이밍

by 러비

남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인데 나는 유독 거부하고 저항하던 몇 가지 일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운전하는 거였다. 대학생 때도 나는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없었다. 운전은 위험하다는 생각, 어차피 차도 없다는 생각 등등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서 강렬한 거부감과 닫혀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생각, 변명이 생겨났던 것일지도. 이 감정의 근원을 쫓아가자면, 아마 아빠의 감정에 동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 편에 잠깐 언급했지만, 그때도 지금도 아빠는 두려움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차를 몰 때면 유독 신경질적이어서 나도 기분이 안 좋았고, 조금 멀리 나갈 때면 이유 없이 불안해서 자다가도 섬뜩한 느낌이 들어 자꾸 깨기도 했다. 그러다가 실제로 접촉사고가 났다. 그 후부터인지, 아빠는 차 끄는걸 더 싫어하게 되었는데 그 감정이 나에게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아니, 내가 그 감정을 흡수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아빠랑 나의 성향이 비슷하게 예민한 까닭도 있을 듯하다. 그렇게 나는 운전을 거부하면서, 30년 넘게 뚜벅이로 살았다. 그 사이에 나와 같이 면허가 없던 친구들도 하나씩 차를 끌고 다니는 걸 보면서도 '난 필요 없어'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그 스탠스는 사실 작년까지도 비슷했다.


운전면허 시험이 어려워진다, 비싸진다는 얘기가 들려와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마음이 변하게 된 계기가 뭘까? 사실 나도 모른다. 그냥 이제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의 이면에는 감정이, 그 이면에는 무의식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명상의 효과인가? 내 무의식이 조금은 정화되었다라고 해야 할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되어서, 혹은 아빠에게 받은 그 감정을 처리할 수 있게 되어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나조차 내가 드디어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나선게 신기할 정도였다.


학원에 등록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나 한 번 물꼬를 트자 일정은 막힘없이 진행되었고 어느새 내 손에는 운전면허증이 들려있었다. 시험은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았지만 운전하는 건 재밌었고, 운전하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내 무의식의 변화로 인한 '다른 선택'이 내 인생을 '다음 챕터'로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날 가뒀던, 제한했던 것에서의 해방감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첫 번째가 운전면허였을 뿐이다. 두 번째는 곧이어 찾아왔다. 일과 관련된 거였는데, 예전에 날 강하게 키우겠다고 들어갔다가 상처만 받고 나왔던 일 중 하나였다. 거기서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다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렇게나 그 일을 외면하며 다른 일만 찾았는데 시간만 버렸고 끝내 다시 동일 직종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확실히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모든 게 두렵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그 사람은 지금 없었다. 물론 그 일에 관한 경험이 많이 없기 때문에 미숙한 점은 있었지만,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 간극과 변화에 대해 참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다시 그때와 같은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오는 것은 내가 지금 이 경험을 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럴 때면 내가 쌓아놓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외면해 왔던 내 과거, 그 안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는 걸까.


나를 벼랑 끝에 몰았던 수많은 일들을 다시 거치면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다지 혼란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 지점을 지나며 나는 다음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내 추측으로는 아직 한 가지 더 남았다.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요즘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굳이 억지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보통 내 찝찝함과 애매한 마음을 무시하고 억지로 뭔가를 끌고 가려던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힘은 힘대로 들고 잘 되는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당장 결론 내리지 않으면 조급하고, 불안하고 마음이 못 견뎌했던 순간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성급하게 지르곤 했다. 뭐가 항상 그렇게 급했던 걸까 나는. 아마 그렇게 불확실한 시간들을 견디는 게 괴로웠던 것 같다. 인내라는 것도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삶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앞장서서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게 아닌, 때가 됐을 때 파도를 타고 가는 삶이란 것은 말이다. 그때까지 인내할 줄 아는 힘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게 이런건가?


아무튼 난 지금까지 인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질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배워야 할 테고. 가끔은 정말 인생 수업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별로 유쾌하지는 않고 오히려 피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지만 이럴때일수록 더 마음을 열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게 또 성장의 타이밍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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