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행자처럼 살기

영원함이라는 것

by 러비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던 2박 3일 가족여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네 가족은 내가 어렸을 때도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았다.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고, 가족의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화기애애한 편은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여행이라는 게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내 주변에는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 갔다 왔다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나도 여행이란 걸 생각지도 않고 살아왔다. 어쩌면 비교군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야 우리 가족은 조금씩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갔던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보단 더 자주 간 셈이다. 특히 언니가 차를 끌고 다니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더 여행이 수월해졌다. 알고 보니 아빠가 사고 날 까봐 차 끄는걸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몰 때마다 더욱 예민해지시던 아빠가 아니라 언니가 차를 운전하니 나도 마음이 훨씬 편했고, 아마 아빠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더 괜찮은 분위기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할 때 신경질내면서 분위기 망치면 다음부터는 가족여행 안 할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먹혔기도 했고 말이다.


내 일상도 매일 별 의미 없이 칙칙하게 흘러갔기 때문에 나도 가족여행하는 게 좋았다. 친구들과도 잘 만나지 않고 나 혼자 여행을 가본 적도 없어서 저절로 가족 여행이라는 것에 의존하게 됐다. 어느덧 학생신분이 완전히 끝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우리는 가족여행을 했다. 그러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언니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 건 우리 네 명의 가족여행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였다. 이전에는 별 소중함 없이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던 여행이 점점 특별해지고 있었다.


내 무채색의 일상도 이미 오랜 시간 지속됐고, 점점 힘들어지는 직장생활에 언니의 결혼이라는 몇 가지의 일이 겹친 시기였다. 여행을 가니 첫날은 좋았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는 점점 마음이 씁쓸해졌고, 마지막 날이 되자 내 감정이 혼돈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사실 무척 슬프기도 했고 괴롭기도 했다.


여행의 의미가 더 중요해지고 그만큼 나는 여행에 더 집착하게 되는데 시간은 참 냉정하고 빠르게 흘러갔다.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도 내 괴로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여행 안 가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로 혼자만 괴로웠다.


2박 3일이라는 여행이 너무 짧아서일까? 하지만 나는 이전의 10일 가까이 되는 여행에서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10일도 짧았던 걸지도. 그렇다면 도대체 며칠을 여행해야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걸까?


그때 나의 답은 '어쨌든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행은 언젠가는 끝난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시작과 끝이 포함되는 일정이니까. 여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괴로운 현실로 돌아온다. 아니, 마치 내팽개쳐지는 것만 같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끝나버리고 나는 그 2박 3일을 위해 360일 이상을 견뎌야 했다.




이게 맞는 건가?


이런 게 현실이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렇게 살기는 싫었다. 이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 다시 가족여행을 갔을 때, 나는 의식적으로 그 시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을 바꾸는 건 가능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러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 시간을 최대한 느꼈고, 그 시간에 최대한 '존재'하려 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조금 느리게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시간을 붙잡으려 노력했고 그 시도는 조금은 먹혔다.


물론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마음이 힘들어졌다. 그래도 나는 그때 잠시 '현존'했던 경험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현존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행에 돌아와서도 나는 종종 그때를 회상하곤 했다.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마치 영원히 여행하는 것처럼 살 수는 없는 걸까?'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는 '영원한 즐거움'에 대한 갈망이 솟아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내 주변만 본다면 모든 사람들이 '잠시만 즐겁게' 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또 잘 생각해 보면 매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긴 했다. 책에 나오는 많은 부자들이 그런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렇게 부를 추구하며 살지는 않았는데, '부'라는 게 나에게 그런 영원함을 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 나는 그렇게 부를 염원하게 되었다. 뭐, 잘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인식과, 내 무의식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고 내가 추구하는 삶을 알게 되었다. 내 동기는 언제나 '영원한 즐거움'이었다는 사실을.


영원한 즐거움이란 완전한 자유이다. 이 자유는 경제적, 신체적, 감정적,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중간에 주객전도되어 영원한 즐거움보다 경제적 자유를 더 쫓게 되었으나 지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부자가 됐다는 소리는 물론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상태에서도 '이전보다는 더'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것에 가깝다. 사실 이것조차 매번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예전에 썼던 것처럼,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결국 어떤 괜찮은 미래를 마주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지금 와서야 이 모든 것의 시작이 그날의 여행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날이 있었기에 나는 영원히 여행자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소장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한 책들을 구매해서 여러 번 읽었다. 부자들이 쓴 책, 자기 계발서들도 10권 (남들처럼 100권이 아니라 조금 민망한 수이다만) 이상은 읽었다. 그 책들은 하나같이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곤 했다. 특히 그 유명한 저자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이라는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자유를 원하고 있는지 느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즐거움, 영원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나는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명상을 통해 나는 내가 나와 얼마나 싸우고 있었는지, 나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의 삶을 무채색의 쓸쓸한 흑백영화로 만들고 있었고, 스스로 진을 빼고 있었다. 그러니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조금은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살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마치 내가 아웃사이더 방랑자같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게 새롭고 재밌고 신난다. 조금 힘든 경험도 그저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여행자'니까.


힘들었고, 지금도 간혹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이 길을 통해 다른 그림을 그려가기라 마음을 먹었다. 칙칙한 흑백영화 말고 찬란히 빛나는 영화를 그려가리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고, 그렇게 나를 바로 세워야 남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이제는 그냥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살아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