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루꽃

03. 아침-팔자八字

by 책날 백대백

아침에 보리네시장으로 향한다. 된장찌개에는 그 시장에서 파는 손두부를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리네 시장 안 생생 생선가게 옆 골목에는 손두부만 만든 지 벌써 수 십 년 된 두부집이 있다.

정사장은 이른 아침부터 손이 분주하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그녀의 손은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다. 먼저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끓인다. 그런 다음 갈아 놓은 콩물을 천천히 넣어준다. 콩물을 한꺼번에 넣으면 덩어리가 지기 때문에 조금씩 살포시 넣어준다. 물이 한소끔 끓어오르면 콩물을 조금씩 넣는 것을 반복해 여러 번에 나눠 넣는다. 이때 솥 안의 콩물이 한쪽만 끓지 않도록 불조절을 하며 뭉친 곳이 없도록 살살 펴준다. 뭉친 곳은 이내 타버려 탄내가 두부에 배기기 때문에 가장 주의해야 하고 이때가 두부의 맛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끓어 넘치려 할 때 한 손으로 찬물을 부으면서 넘치지 않게 한다. 콩물이 다 끓으면 깨끗한 보자기로 콩물을 짜주어야 하는데 이과정 역시 두부의 맛을 내는 중요한 과정이다. 열심히 짠 콩물을 다시 솥에 넣고 불을 은은하게 하여 간수를 적당히 그리고 천천히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붇는다. 두부틀에 보자기를 깔아놓고 몽글몽글해진 두부를 틀에 부은 다음 무거운 것으로 눌러주면 두부모양이 만들어진다.

정사장이 부엌칼로 정사각형의 두부를 자르기 시작할 때 나는 두부 두모만 달라고 한다. 정사장은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두부를 계속 자르면서 말한다.


"누가 오는겨?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사러 오게"

"우리 수녀님이 오잖아"

"아 벌써 토요일인가, 그럼 내가 제일 큰 걸로 잘라 줘야지."

"그냥 대충 잘라도 돼"

"됐어 나도 수녀님한테 잘 보이고 천당 가면 좋지. 흐흐흐"

"정사장은 그렇게 안 해도 천당이고 극락이고 갈 사람이니까 괜찮아. 히히히"

"에고야.. 그렇게 말하는데 에라 오늘은 세모 같은 두모다."

정사장이 큼직하게 자른 손두부를 내게 건넨다.

"고마워. 어야 그런데 수녕이는 좀 어때?"


수녕이는 정사장이 늦게 낳은 막내딸로 삼십 중반이다. 지금은 사별하고 돌아와 정사장과 살고 있다. 수녕이 신랑은 어느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회사에 사표를 내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단다. 워낙 머리가 좋았던 사람인지라 몇 년 안 되어 합격을 하고 변호사 개업을 위해 사무실을 얻고 고급승용차도 뽑고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야말로 수녕이는 이제 변호사 부인으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날도 여전히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돌아온 수녕이 신랑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급성간암이었다. 국내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기증자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였고 그나마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급한 김에 브로커를 통해 중국에서 간이식을 받기로 하고 북경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입원하고 그의 상태가 악화되어 복수가 차오르고 혼수상태가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고 결국 수술을 하루 앞두고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동안 남편이 공부만 하느라 사용된 생활비와 변호사 사무실과 자동차 비용과 병원비는 고스란히 수녕의 빚으로 남게 되고 열 살짜리 딸과 네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엄마네 집으로 들어온 거다. 수녕은 반쯤 넋 나간 사람처럼 방구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자식들은 그대로 방치되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던 수녕이 화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게 된 거다.


" 여자인생 뒤웅박 팔자라더니 그년 꼴이 딱 그 꼴이야. 그년 차라리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가 나았지. 손주 녀석들이야 내가 밥 먹이고 학교 보내면 되지만, 지금처럼 허구한 날 밖에 나가 뭐 하고 돌아다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래도 이제 정신 차린걸거야. 산 송장처럼 집안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사람들 만나고 하다 보면 애들 위해서라도 이렇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엄마를 봐서라도 제 몫을 다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