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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Sep 30. 2023

비속을 걷는 제주 원도심

성안올레1코스, 건입동에서 일도동으로

제주시 원도심 '성안올레'걷기가 9월 16, 17일 양일간 개최되었다. 제주올레를 완주하고 '한 걸음 더 들어간 올레길'을 계획하고 있던 차라 반가운 마음에 참가한다.


작년(10월 1일) 개장한 1코스를 먼저 걷는다. 성안올레는 제주성 안쪽이라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불러오던 옛 명칭이다. 제주 원도심의 골목길을 걸으며 제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과 만난다.

제주올레처럼 올레 수첩은 따로 없다. 출발점과 중간 기착지의 간세에 비치된 노란 리플릿 스탬프를 찍는다. 산지천 북수구광장에서 북성교를 건너면 (구) 새마을금고 앞에 성안올레1코스 출발점이자 종점인 노란 간세가 있다. 여기서 출발한 성안올레1코스는 건입동 주민센터, 동자복, 건입동 벽화길로 이어진다.


서귀포시 대포동에서 1100 도로를 넘어 한차례 환승하여 행사장 김만덕기념관에 도착하니, 본대는 사전행사를 마치고 이미 출발했다. 갑자기 장대비가 내린다.

물 사랑 홍보관 앞뜰에 장대비가 내린다.

우리는 본대를 따라잡으려 물 사랑 홍보관 뒤 계단을 올라 건입동 주민센터로 허겁지겁 질러간다. 주민센터 앞 건널목을 건너면, 산지 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동산이다.


동자복. 만수사 옛 터인 주택가 마을 안에 고려 후기의 석불 입상이 자리 잡고 있다. 높이는 286cm, 얼굴 길이는 161cm인 동자복이다. 두 손을 가슴에 정중히 모으고, 예복을 걸치고 있다. 소맷자락이 선명하고, 머리에 패랭이를 쓰고 있다. 이 벙거지는 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동자복(동미륵,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1-1호)

사람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동자복(동미륵)은 서자복과 더불어 제주성의 수호신으로 숭배되며, 서쪽 제주성 안을 바라보고 있다. '동미륵'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주항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


여기부터는 곳곳에서 안내 리본과 노란 이정표를 만날 수 있어 길은 어렵지 않게 찾는다. 올레는 김만덕 객주 주차장이 있는 산복 도로로 들어선다. 옛 건입포 산지항(제주항 1부두)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건입포 산지항. 건입포는 전북 군산, 연평도, 해주, 신의주까지 오가던 육지와 교역하고 어로활동을 하던 중심 포구였다. 1928년 산지 축항 공사를 위해 암석을 채취 중 거울과 칼, 화폐 등 중국 한나라 때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당시 탐라(건입포)가 한반도와 중국, 일본과의 교역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건입동 벽화 길. 옛 주정공장 수용소 4.3 역사관 뒤편에서 올레18코스와 함께 간다. 바람 따라 걷는 건입동 벽화 길을 지나간다. 건입동 칠머리당 영등굿, 바람과 함께 생명을 품고 오시는 영등할망, 사라봉을 주요 주제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라봉 들머리에서 올레18코스와 헤어진다. 성안올레는 제주항을 조망하며 등고선 따라간다. 비는 오락가락한다. 앞서 간 본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차가 다니는 둘레길이지만 민가는 사라지고 사라봉 중턱 숲길이 이어진다.

숲이 우거진 터널 같은 출입구 사이로 빨랫줄이 보인다. 빨래를 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이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민가다.


산지등대


산지 등대로 들어선다. 성안올레1코스 중간 기착지다. 입구에 노란 간세가 있다.

산지등대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로 제주도의 관문인 제주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916년 10월 무인 등대로 설치된 산지등대는 이듬해 3월 유인 등대로 변경되어 84년간 운행되었다. 원래의 등탑은 노후화되어 1999년 12월 새 등탑으로 교체된다. 옛 등탑은 항로표지의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신(왼쪽), 구 등탑

현재의 등대는 2002년 12월에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고광력 회전식 대형 등명기로 교체되었고 불빛은 15초에 1번씩 반짝이며, 빛은 48km 떨어진 곳까지 도달한다.


나팔 4개가 바다를 향해 설치되어 있다. 이 전기혼(나팔)은 비, 눈, 안개 등에 의해서 시계가 불량(28km 이하)하면 고동 소리를 내어 등대의 위치를 알려주던 시설이다. 현재는 선박 항해 장비가 발달하고, 효용성이 떨어져서 사용을 멈췄다.

공연 '제주 정열에 물들다'를 관람한다.

비가 그쳤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집중 호우라 또 언제 내릴지 안심하지 못한다. 잔디 마당에는 길 위의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 탐방객들이 낭만집시와 발레리나 신지아의 공연, '제주 정열에 물들다'를 관람하고 있다.


사라봉, 의녀반수 김만덕 묘


여기서부터 본대에 합류한다.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 앞에서 숲길로 들어선다. 앞이 캄캄해지더니 다시 비가 세차게 내린다.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다가 아예 비를 맞고 걷는다.


객주 김만덕

김만덕은 1739년 양가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기녀의 수양딸이 되어 잠시 기적에 오르기도 했다. 20살 무렵에 양민의 신분을 되찾아서 객주를 경영하여 거상이 된다. 1794년 큰 흉년이 들자, 그는 거금을 출연하여 육지에서 사들인 곡식으로 굶주리던 제주민들을 구휼한다. 이를 가상히 여긴 정조 임금은 김만덕을 궁궐로 불러 내의원 의녀반수의 벼슬을 내리고, 금강산 구경을 허락한다.


사망 후 제주성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라봉 기슭(건입동 710)에 묻혔으나 도로 확장으로 이장하여 모충사 경내의 묘탑에 안치되었다. 원묘에 있던 묘비와 상석, 동자석, 망주석 등의 석물은 이곳으로 옮겨져 만덕의 근검, 절약, 박애 정신을 길이 받들고 있다.

거상 김만덕 묘비와 상석, 동자석, 망주석

빗줄기가 굵어진다. 겨우 사진 몇 장 남기지만 비석의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김만덕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복제품을 살펴본다. 김만덕의 묘비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행수내의녀김만덕지묘(行首內醫女金萬德之墓)'로 새겨져 있다. 여자의 이름을 비문에 쓰지 않던 조선시대의 관행과 다르게 비문에 그의 이름 석 자와 직함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김만덕 묘비 복제품(김만덕기념관 소장)

비석 왼쪽에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 '은광연세'를 새긴 비석이 있다. 현종 6년 (1840) 대정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만덕의 선행을 전해 듣고 감동하여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번진다'라는 뜻으로 은광연세(恩光衍世)이라 편액 하였다.

은광연세

제주 의병 항쟁. 제주 의병 항쟁은 의병장 고사훈과 이중심, 격문 작성자 김석윤 등의 발의로 만인의 의병을 규합하면서 시작된다. 1909년 3월 3일을 기하여 관덕정 광장에 집결, 일본인 관리를 축출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던 계획은 모병 단계에서 비밀이 탄로 나 실패한다. 하지만 일본 침략에 항거하는 도민의 주체적 대응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항일의식을 더욱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제주의병항쟁 기념탑

우당도서관, 제주국민체육센터를 지나 사라봉을 벗어난다.

제주국민체육센터


6,70년대의 거리 풍경


사라봉 오거리에 옛날 다방이 보인다. 6,70년대의 풍경이 옛 향수를 불러낸다.

사라봉 오거리, 옛 찻집

두맹이골목. 오래된 골목에 공공 미술의 옷이 입혀져 있다. 골목길 초록 정원, 이를 만들기 위해 조성한 꽃담, 낡은 건물 외벽에는 꽃과 나비, 해녀들의 물질 모습, 문어가 기어 다닌다. 골목에서 사라진 아이들의 시간과 소소한 사건들, 만화 보는 장면, 개구쟁이들의 말타기 장면 등이 벽화로 재현되었다.

두맹이골목

성안 마을과 오름 들, 해안 마을의 방사탑과 도대불, 고기잡이배와 여객선, 거센 파도와 영등굿 하는 무녀, 해수욕장의 비치파라솔, 붉은 등대.

할머니 손을 잡고 눈깔사탕 사러 가는 손녀, 가방을 메고 어깨동무한 교복 입은 아이들, 버스가 승객을 기다리고 마냥 서 있다.

골목이 끝나는 마지막 집의 벽화는 빨간 입술을 내민다.


운주당지구 역사 공원


'운주당(運籌堂)'이란 당호는 중국 사마천의 사기의 고사 중 '운주유악지중(군막 안에 들어 않아 계획을 꾸민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조선 전기 동성(東城) 높은 곳에 축조한 장대(將臺)로 장수가 장졸들을 모아 놓고 훈련하거나 지휘하는 곳이다. 제주 성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곳에 군사지휘소를 갖추고 왜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문화해설사가 운주당과 제주성에 대해 설명한다.

문화해설사는 운주당 일원의 경관이 빼어나 제주목사 이원조가 쓴 '운주당에 나가 관등(觀燈)을 즐겼다'라는 탐라록 기록과 한말 유배인 김윤식이 '운주당에 올라 배롱나무를 감상했다'라는 속음청사 기록을 소개한다.

우뚝우뚝 솟은 돛대에 반짝반짝 눈부신 별이
하늘인 듯 바다인 듯 온 성안을 환하게 비추기에
높고도 널찍한 곳에 있는 운주당에 자리하니
때에 맞추어 불빛들은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고
텅 빈 성곽 어느 곳에 반달이 깃들어 있는지
관아 누대 높은 곳에 걸린 깃발 한 쌍이 보이는데
대장군의 풍악소리는 흥취를 탐함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과 태평한 시절을 즐기고자 해서라네

<운주당 관등> 이원조, 탐라지(1653년)
제주특별자치도 향토 유형유산 제26호 운주당지

운주당지구 발굴조사 시 원풍통보 및 다수의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동문시장. 사람이 붐빈다. 마을은 텅 비었더니 시장으로 다 모인 것 같다. 맛집으로 소문난 빵집 앞에 줄을 서있다.

큰 시장이다. 동문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방향 감각을 잃는다. 긴장하여 앞서가는 일행을 바짝 따라붙는다. 안내  화살표와 리본을 살피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탐라문화광장으로 나온다. 제주출신 가수 혜은이의 애창곡 ‘감수광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혜은이의 생가터가 인근이다.

노래비에는 ‘감수광’ 노래 가사가 새겨져 있고, '감수광', '열정', '제3한강교' 등 혜은이 히트곡을 길 가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뮤직 센서가 장착되어 있다. 노래비 옆에 포토존과 혜은이의 프로필이 적힌 표지판도 보인다.

감수광 노래비

(구) 새마을금고 앞에서 일정을 마친다. (202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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