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통이의 하루| 섬유근육통 증상 - 5편
*소설: 섬유근육통 환자의 치유 성장기입니다. 근통이의 하루 5편 - 섬유근육통 증상
'섬유근육통'을 통해 '자율신경 기능의학'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지속 가능한 건강을 기원합니다.
막 옷을 벗고 재빨리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려는 찰나에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저기 아가씨!..."
목욕탕도 아닌데 훌렁 벗은 채로 대답할 수는 없고 얼른 환자복을 입어보려 하나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를 몰라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찍찍이를 뒤로 해서 입으면 돼요! 오늘 처음 오셨나 봐요?"
"네. 감사합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라고 묻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가씨 치료 잘 받아봐요. 나도 정말 많이 좋아져서 여기저기 소개하고 다닌다니까. 죽을병 걸려도 일단 와보라고 할 정도야. 여기 병원에서 나한테 월급이라도 줘야 해. 얼마나 소개 많이 했는지 몰라."
"그리고, 아픈 사람일수록 좀 화려하게 입고 다녀봐요. 이렇게 어두운 색만 입으면 마음도 어두워져..."
그러고 보니 내가 옷을 사본적이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뭐 특별히 만날 사람도 없다 보니 꼭 가봐야 할 결혼식이나 되면 모를까 화장을 안 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여보세요. 네~ 아 지금 병원 끝나서 그쪽으로 넘어갑니다."
친화력이 대단한 아주머니는 블루투스로 전화를 하면서도 나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대부분 비슷한 날짜에 오니까 여기 환자들은 다들 금방 친해져요. 오늘은 내가 바빠서 먼저 갑니다. '우리' 다음에 만나면 또 이야기해요~"
'우리' 오프라인에서 듣는 '우리'라는 사뭇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대화는 거짓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소위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얼음덩어리가 갈라지고, 멀어진 것처럼 느낀다.' -에이드리언리치 <침묵의 지도 만들기>에서
연결을 넘어서 초연결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의 나에게 있어서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시쳇말로 '카페인 중독'이라는 신조어처럼 기웃거려보는 SNS 속의 '우리'가 그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까? (카페인 중독: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중독)
SNS나 유튜브를 보면 죄다 멋지고 행복하고 당당하고 럭셔리하고 웃긴 사람들 투성이다.
그러나 재미있게 보다 보면 언제나 굉장히 초라한 기분이 밀려온다.
동화 속에서 선한 사람들은 대부분 멋진 모습을 가진 반면, 악당들은 추하고 가증스럽고 못생긴 모습으로 묘사하듯이 나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해 보이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악당이 되고야 만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야' '너처럼 되고 싶어''나도 할 수 있어!'로 시작했던 감정들이 화면을 아래로 당겨 슬롯머신처럼 새로고침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가 아닌 '너와 나'로 분리가 되고, 너와 나를 비교하면서 평소에 나에게 불만 있었던 부분들이 터질 듯이 부풀려져 나를 짓누른다.
동화 속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끝내 거북이가 승리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명백한 패배자일 뿐이다.
엄마가 생각났다.
웅~ 웅~ 무심하게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니 엄마의 생일 축하 문자이다.
'자랑스러운 내 딸!
네가 태어나던 날처럼
함박눈이 축복처럼
하루 종일 내린다.
셀프 축하 케이크 사들고 가서 비타민들과 행복에너지를 충전합시다.
너무 달려가지만 마시고 쉼표도 꼬꼬 챙기시고
건강합시다.'
뜻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처절함이었을까? 감동이었을까?
항상 모질게만 이야기했던 미안함이었을까?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SNS에서 나는 초라한 패배자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내편, '우리 엄마'가 있다.
우리 엄마는 슈퍼히어로임이 분명하다.
아직도 앞머리로 가려진 나의 오른쪽 이마에는 슈퍼히어로에게 도움받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많은 기억들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매우 선명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코흘리개 시절(아마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맹이였을 것이다) 우리 집은 인조대리석으로 된 돌 턱이 집을 빙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어느 날 눈을 감고 깬 발 뛰기를 하면서 잡기 놀이를 하다가 넘어졌는데 하필 그 돌 턱에 이마를 찧고 말았다.
아마도 너무 놀랜 나머지 크게 울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눈을 가리고, 얼굴을 뒤덮을 때의 공포는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 엄마는 슈퍼히어로임이 분명하다.
그날의 기억은 매우 선명하다.
신발을 신지도 않은 채 방에서 순간이동을 하듯이 뛰어나온 엄마가 나를 엎고 맨발로 병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과 성당을 다니시는 엄마의 기도인지 절규인지 모를 아우성이 나를 오히려 안정시킨다.
이제는 흐릿해진 흉터를 안고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가 본 그 거리는 맨발로 뛰어갈 수 없는 거리였다.
징징거리는 근통이에게도 영원한 내편인 슈퍼히어로 '우리 엄마'를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에, 대기실에서 느꼈던 고독과 외로움이 씻겨져 나가 버린다.
앞뒤가 헷갈리는 어색한 환자복의 옷매무새를 그래도 단정하게 정리하고 탈의실을 씩씩하게 나서본다.
근통이는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모든 순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는 연결되어있다.'
세포노화도검사, 자율신경계 검사, 전척추 X-ray 3가지 검사를 받았다.
지금까지 너무나 대단한 검사를 받았음에도 결국 섬유근육통 진단은 설문지를 통해 내려졌기 때문에, 간단한 X-ray좀 찍는다고 해서 뭐 다를 게 있겠냐마는 전체 척추 X-ray는 처음 해본 검사이기에 살짝 기대되기는 했다.
대학병원에서 한참을 기다려 진료받고, 온 병원을 돌며 이름도 모를 여러 가지 검사를 받다 오히려 지쳐버린 것에 비하면 좀 싱겁다고나 할까?
검은색 머리망으로 단정히 정리했지만 흘러내린 옆머리를 연신 쓸어 넘기는 버릇이 있는듯한 간호사가 나를 진료실로 안내한다.
드디어 내 시간이다.
“많이 힘드시죠?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다 해보세요.”
시작부터 당황스럽다.
지금까지의 진료는 시간에 쫓겨 말을 하다가도 끊기고, 바쁜 분위기에 압도되어 질문도 못했는데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 뭐라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오히려 내쪽에서 머리를 한방 맞은 느낌이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말은 치료약이나 영양제, 시술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
그러나 내가 듣고 알고 싶은 것은 내가 불편한 증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들이었다.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이 된다면 치료 방법이야 가져다 붙이면 되리라 생각해왔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이유를 듣지 못했었다.
브레인포그로 멍해진 뇌를 깨워가며 질문을 던졌다.
“섬유근육통 원인이 뭔가요”
시멘트처럼 굳어진 얼굴로 범인을 취조하는듯한 말투였던지라 오히려 내가 굉장히 무안해진다.
“우리 진단명은 내려두고 불편한 증상 위주로 이야기해보시죠. 사실 진단명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섬유근육통이란 고명한 의학적인 진단명 자체도 우스운 것도 사실이다.
섬유근육통이라고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야기해보시라. 야유회로 등산 갔다가 아픈 근육통 정도로 치부할게 분명하다.
“오랜 기간 아파왔어요. 장장 7년을 다양한 진단명으로요. 최근 대학병원에서 섬유근육통이라고 진단받고 우연히 블로그 글을 읽었는데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서 병원까지 찾아왔어요.”
말문이 트여서인지 활시위처럼 당겨져 있던 긴장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말씀하기 어려우면 머리부터 내려가 볼까요?"
"일단 브레인포그가 심해요. 기억력이 떨어져서 딸아이 하원 시간을 놓치고 병원에 있는 적도 있어요. 문장을 읽을 때 이해가 안 가고, 평상시 나사가 풀린 듯 머리가 멍해요. 집에만 있고 사람들을 안 만나서 외로움이나 우울증인 가도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다는 생각을 해 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요. 잠들기도 어렵지만 일어나기도 어려워요.
두통이 심해서 깨기도 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도 그렇고 긴장되고, 예민해서 폭발하듯 화를 낼 때가 많아요.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이기도 해요
처음은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제는 이유 없이 계속되고 강도는 더 심해진 것 같아요.
3시간 자면 많이 자는 것 같아요. 다 악순환이겠죠.
예민한 건지 하여튼 시끄러운 것을 못 참아요. 딸아이가 틀어놓은 유튜브 영상도 조금만 볼륨이 올라가도 떡을 먹다 체한 듯 속이 울렁거리면서 두통이 생기고, 어지럽기까지 해요.
어느 병원에서는 편두통이라고 편두통약을 줬는데 너무 졸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안 먹었어요.
부신피로다, 번아웃이다, 스트레스받지 말라, 잠을 충분히 자라, 운동해라라고 하는데 어디 그게 쉽나요!"
"그렇죠.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한테는 오히려 그런 말들이 상처가 되기도 해요. 그럼 목이나 어깨는 괜찮나요?"
"어휴~ 말도 마세요. 뒷목과 어깨랑 날개는 곰 두 마리가 올라가 밟아대다가 새끼까지 낳은 것처럼 너무 무겁고 아파서 굵은 바늘로 마구 후벼 파 줬으면 할 때가 많아요. 지하철 탈 때도 모서리만 보면 남들 모르게 등에다가 모서리를 대고 꾹 누르면서 갈 정도예요."
"혹시 어지럽지는 않나요?"
"자다가 일어났는데 어지러워서 몇 번 쓰러진 적이 있어요."
"어떻게 어지러웠나요. 빙글빙글 돌던가요? 핑~ 하고 넘어가는 것 같았나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의식을 잃은 적도 있어서 혹시 몰라서 침대 옆에 아이매트를 아직도 깔고 지내요. 그리고 일어날 때도 한참을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일어나요"
"머리 검사는 해봤나요?"
"대학병원 가서 MRI도 해보고 뇌파검사까지 다 해봤는데 괜찮다고 정상이라고 혈액순환제 그 뭐냐 은행잎 추출물 주고 끝나던데요!"
"일단 머리가 정상이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럼 눈은 어때요?"
"이 나이에 벌써 백내장인지 녹내장인지 왔나 걱정돼서 안과도 다녀왔어요. 항상 눈이 침침하고 뻑뻑해요. 뭐 안구건조증에 노안이라고 인공눈물 처방해주었어요."
"목은 어때요? 뒷목 말고 밥 먹는 목이요"
"역류성 식도염이 있나 봐요. 항상 뭐가 걸린듯하고 컥컥거려서 남들이 담배 피우냐고 핀잔을 줄 정도예요. 뭐랄까 목감기가 자주 걸리는 느낌이랄까? 좀 심하면 목을 조이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목소리도 잘 쉬고요"
"가슴은 어때요. 답답하거나 한숨 많이 쉬나요?"
"꼭 가슴에 돌 하나 얹어 둔 것처럼 무겁고 숨 쉴 때 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와서 한의원 갔더니 화병이라고 했어요. 간기울결을 풀어줘야 한다고 한약도 먹고 침도 맞았는데 효과는 잘 모르겠어요.
코로도 숨쉬기가 힘든데 검사를 하면 이상이 없다고 해요"
"손 발은 어때요?"
"손이 엄청 차가워요. 사시사철 얼음처럼 차서 누가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면 움츠러들어서 오해를 많이 사요. 여름에 땀도 잘 안나는 것 같아요. 다리도 얼마나 차가운지 수면양말이랑 내복을 한여름 빼고는 벗을 수가 없어요. 한여름에도 발이 너무 축축해져서 수면양말을 못 신는 거지 따뜻해져서 안 신는 게 아니에요. 일 년 내내 지속되는 추위를 참지 못하겠요.
그리고 한동안은 류머티즘이라고 치료받기도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특히 손가락이 뻣뻣해서 구부리기가 힘들어요. 류머티즘 검사상 항체는 안 나오는데 류머티즘 약을 처방해줘서 먹었어요."
"소화는 어때요?"
"과민성대장증후군이랑 SIBO를 진단받았어요. 기능의학병원 다른 곳에서 장 치료한다고 항생제를 먹었는데 피부 트러블이 너무 심해져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고 거기서는 곰팡이 때문이라고 항진균제를 반년 정도 먹었어요."
"반년이 나요?"
"저도 곰팡이 약이 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약을 먹으면 좀 편해지고, 또 끊으면 완치되지 않을까 봐 먹다 보니 반년이나 먹었어요. 지금은 제자리예요"
"무슨 증상이 있는데요?"
"어디를 가도 화장실부터 확인해야 해요. 화장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대중교통은 너무 불안해서 탈 수 없어요. 가스가 너무 심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창피할 정도이고, 크게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바로 화장실을 가야 해요. 매번 풀어지는 변에 배가 꼭 배가 쥐어 틀듯이 아파서 화장실을 가게 되는 그 과정 자체가 정말 지옥 같아요. 특히 안 좋은 기간에는 소변도 문제가 생기고 피부 트러블도 심해요. 생리할 때는 생리통이랑 복통이 합쳐져 약 없이는 버티기 힘들 정도예요.
이것 보세요. 지금도 배가 볼록해요."
"자. 더 캐내면 한도 끝도 없이 나오겠네요. 그럼 어떻게 아픕니까? 통증말이에요"
"전신이 돌아가면서 아파요. 일반적인 근육통이나 쑤시는 거랑은 달라요. 지금은 오래돼서 평상시에는 버틸만한데 좀 신경 쓰거나 그러면 바로 심해져요. 대개 심한 날은 잠을 못 자고, 아파서 일어나기도 힘들기도 해요. 일반적으로는 저녁에 통증이 심한 것 같아요.
꼭 운동 안 하다가 산에 갔다 오면 허벅지가 터질 듯이 아픈 그런 느낌이랑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담 걸린 듯 눌러보면 아픈 곳을 굉장히 강하게 누르면 억 소리 나게 아프지만 시원하기도 해서 눌렀더니 피부가 이렇게 변해버렸어요.
웃긴 것은 오늘은 왼쪽이 아팠다가 또 다른 날에는 오른쪽이 아프고, 어깨는 왼쪽이 허리는 오른쪽이 이렇게 대칭으로 대중없이 아파요.
그래도 가장 아픈 곳은 마음이랄까요!
내편이 없어요. 다들 꾀병이라고 하고, 걱정해주는 척 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왜 이러고 사냐고, 한심하다고 하거든요."
한번 트여버린 말문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범람하는 황하강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왠지 기분이 상쾌하다.
꽉 막힌 숙변이 빠진 가벼운 배처럼 시야마저 환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부터 바깥까지 이 많은 곳에서 불편한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각각의 부분 모두의 문제일까요?"
간단해 보이는 단답형 질문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모두들 그렇지 않은가?
피부 문제가 생기면 피부과를 가고, 소화가 안되면 내과를 가고,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를 가서 각각의 증상만을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소화도 안되고, 피부 트러블도 있고, 허리까지 아픈 것은 우리 몸 하나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각각 다른 진단명, 치료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누가 봐도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고개를 들고 봐도 전체를 보기 힘든 코끼리를 놔둔 채 다리만 만져보고, 꼬리만 만져보고, 기다란 코만 만져보고, 나풀거리는 귀만 만져보고 진짜 코끼리라고 믿는 장님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앓고 있는 섬유근육통은 혼자 버티기에는 너무 버거운 매머드 같은 코끼리다.
이번에 내가 물었다. "제가 섬유근육통이 맞나요? 섬유근육통을 진단받아도 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섬유근육통 진단은 대학병원에서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질병들이 배제된 상태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를 섬유근육통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섬유근육통은 정확히 실체를 알 수 없어요.
섬유근육통 진단 기준만 봐도 답답한 게 사실이에요. 아직까지 1990년대에 미국 류마티스학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이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어요. 이 차트를 한번 봐보세요. 전신에 18군데의 압통점 중 11곳 이상에서 통증이 있는 경우를 섬유근육통이라고 진단합니다.
물론 섬유근육통이 진단명 그대로 통증만 있는 게 아니에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각과 운동, 내장기관 그리고 정서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가 겪고 있는 증상만 가만히 들어봐도 그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하기도 힘들 지경이에요.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합니다.
큰 병원에서 설문 조사하지 않았나요? 그 설문지 표시하는 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증상에 대한 항목이 많았을 겁니다.
특히 피로, 잠을 잔 후에 개운함이 있는지, 그리고 집중력과 같은 인지기능에 문제가 되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증상이 있나요? YES or NO, 어느정도 있나요?'로 질문과 답이 끝나고, 고혈압처럼 140/90mmHg과 같은 가시적으로 알 수 있는 수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한번 같이 생각해봅시다.
각각의 증상이 따로 존재할까요? 공통분모는 없을까요?
이유 없이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잠이 오겠어요? 잠을 못 자니 피곤하고, 더욱 아프고, 소화는 될까요? 이런 분들이 면역력이 떨어지니 염증이 잘생길 것이고, 과민해진 방광이나 장기능 이상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현대의학적으로 촘촘히 살펴보기 위한 구실을 붙이고 있지 않난 생각되기도 해요. 지금 느끼는 많은 증상들이 공통분모에서 출발해서 서로가 물고 물리는 연쇄적인 증상들일 수 있다는 뜻이에요."
간호사의 딸깍딸깍 계속되는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그렇게 거슬렸는데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내가 최근에 이렇게 집중한 적이 있었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번 죽 이야기하니 속 시원하시지요?
자 지금부터는 이렇게 많은 증상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
무슨 사자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불편한 증상들 때문에 왔는데 내버리고 시작하라니...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섬유근육통| 장장 7년의 세월이다. - 근통이의 하루 2편
기능의학이란?4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