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통이의 하루| 현대의학과 기능의학의 차이 - 7편
*소설: 섬유근육통 환자의 치유 성장기입니다. 근통이의 하루 7편 - 현대의학과 기능의학의 차이
'섬유근육통'을 통해 '자율신경 기능의학'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지속 가능한 건강을 기원합니다.
“이 일은 성공할 때까지 항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넬슨 만델라
“이야기가 바뀌는 순간 나의 인생도 바뀌게 될 것이다.” -BDJ
새로운 주사위는 새로운 게임판에 던져졌다.
이제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의 건강을 향한 미래의 이야기는 이제 달라졌다.
이제는 의사나 제약회사들이 나의 미래를 통제하거나 결정하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사실 병원은 옛 농담처럼 아픈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닐 때가 많다.
매일 새벽부터 환자의 잠을 깨워가며 하게 되는 수차례의 혈액검사,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검사시간에 늦겠다며 다그치는 그들, 하염없이 주치의의 설명을 기다리는 환자의 휴식보다 병원의 일과가 더 중요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커튼 한 장을 경계로 개인 공간 없이 지내게 되는 병원에서의 바쁜 일상들은 오히려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신의 모든 관절과 근육의 통증이 트럭에 부딪힌 것처럼 느껴질 때는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을 때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다른 통증관리 방법을 찾지 않으면 한마디로 남아 있는 삶에 대한 의지도 다시 되살리기 힘들지 않을까?
막상 의사 선생님으로 부터 듣게 되는 이야기는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니 약을 먹어보며 지켜보자는 말인데, 그 수많은 약들은 무슨 근거로 먹게 되는 것이며 지켜보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TV를 보니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다 실종됐던 중학생 두 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파도가 거꾸로 바다 쪽으로 몰아치는 ‘이안류’에 휩쓸린 것으로 설명하며 이안류의 위험함에 대해 기자는 꽤 진지한 자세 설명한다.
이안류는 바닷물의 흐름이 해변 쪽이 아니라 반대로 해변에서 바다 쪽으로 밀려나가는 역파도로 물살까지 매우 강해 성인 남성도 거슬러 수영하기 불가능할 정도라고 경고한다.
나의 모습이 딱 이안류에 갇힌 채 발버둥 치고 있는 꼴이다.
역류에 갇혀 살기 위해 최대한 빨리 해변으로 곧장 헤엄쳐 돌아가려고 하지만 오히려 더 먼바다로 떠밀려 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팔 하나 저을 힘마저 없어지면서 죽고 마는 모습 말이다.
어떻게 이안류에서 빠져나와야 할까?
마찬가지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을까?
이런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TV 속의 기자는 이안류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친절히 안내해준다.
역류를 일으키는 해류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이런 ‘상황의 힘’을 활용해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해류의 끌어당기는 힘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해변과 나란한 방향으로 헤엄친 다음 그 후에 비로소 해안 방향으로 수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달리 말하면, 내가 섬유근육통이라는 난치병에서 벗어나려면 건강에 역류되는 힘을 이해하는 것이 시작이다.
드러나 보이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제 너무도 자명하다.
문제의 배경, 현재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더 넓은 범위의 여러 가지 힘을 객관적으로 찾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명에 갇혀서는 아무런 새로운 결정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현재 나의 증상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와 원리가 이해된다면 결국 해결책은 그 원리를 깨거나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가져다 붙이면 될 것이다.
근통이는 다시 진료실의 대화에 집중을 한다.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현대의학과 지금 제가 근통씨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기능의학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앞으로 더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의료를 포함한 현대 과학의 발전과정은 나누고 쪼개어 세밀하게 관찰하는 환원주의적인 시각의 역사입니다. 점점 경계선을 작고 좁게 그려가며 원리를 파악하고 연구해나갑니다.
그러나 ‘부분의 합은 전체가 될 수 없습니다’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에 집착해서는 그 원리를 파악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건강을 얻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근통씨’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근통씨 내부의 개별 ‘시스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소화기계, 호르몬계, 심혈관계, 뇌신경계 등등 신체의 기능을 나누어 살펴봅니다.
점점 쪼개어 개별 ‘장기’를 봅니다.
이후 ‘조직’, 더 나누어 ‘세포’, 더 나아가 ‘분자’와 ‘유전자’, 그리고 ‘원자’, ‘핵과 전자’ 등 점점 인체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들로 시각을 좁혀갑니다.
이를 현재 근통씨가 지금껏 다녀온 병원 진료에 대입해봅시다.
이해를 위한 이야기니 오해하지는 마세요.
‘근통씨’는 극심한 피로감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호르몬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갑상선 ‘장기’를 검사해보자고 합니다.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혹이 보인다고 ‘조직’ 검사를 해보자고 합니다.
‘세포’ 검사를 했더니 암이라고 합니다.
혈액검사로 몸의 이상을 파악하기 위해 호르몬 등 ‘분자’ 성분을 검사해봅니다.
갑상선암의 예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추가합니다. 치료로는 수술을 합니다.
그런데 암이 아무 이유 없이 갑상선에 생겼을까요?
갑상선만 수술적으로 제거했다고 해서 암을 만든 환경이나 원인이 바뀐 게 있습니까?”
그렇다.
결코 암을 포함한 부분을 완벽히 제거했다고는 하지만 암을 만들게 된 환경이 바뀐 것은 없다.
내가 통증으로 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통증이 생기는 원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통증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할 뿐인 언발에 오줌누기랑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잘 알고 있지만 당장에 급급해서 다시 약을 찾는다.
어찌 보면 지금껏 못 봤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일지 모른다.
그냥 못 본 척 눈감아 버렸다는 게 더 정확하다.
“자! 이번에는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올라가 봅시다. 전체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우리 몸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포는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 기관이 됩니다.
기관들이 모여 시스템이 되고 시스템이 모여 바로 ‘나’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할 사실은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계와 달리 팔, 다리, 머리, 심장, 뇌 등을 모두 모아 합쳐둔다고 해서 생명을 가진 내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또한 ‘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라는 인간을 넘어 가족, 사회, 지구, 태양계, 우주 속의 부분에 해당되는 존재가 됩니다.”
‘신의 섭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때는 ‘나는 왜 태어났지?’라는 질문이 일상의 모든 부분을 차지했던 적이 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이렇게 살 거면… 이렇게 아플 거면 왜 태어났지 라는 뜻이다.
우주 빅뱅 이후 만들어진 원자가 돌고 돌아 현재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이유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 원자들이 특정 세포를 만들고 기능을 하게 된 이유는 신의 섭리라는 말을 빼놓고는 구현되기 힘든 일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최고의 권세를 주었지만 반대로 고통스러운 인생길과 죽음 또한 함께 주었다.
그리고 이 생로병사의 고통은 또 왜 이리 불공평한지 하늘을 향해 원망해본다.
“예를 들면 내가 갑상선에 암에 걸린 것은 나의 갑상선만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두통이 있다면 머리 외상이 아니고서는 내 몸의 전체 환경이 두통을 느끼게 하는데 모두 관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구의 오염된 환경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피부질환, 과민성 대장증후군, 어지럼증, 섬유근육통 등 나를 아프게 만드는 원인을 부분이 아닌 전체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작아 보이는 내 안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의 거대한 연결과 협력이 있고, 물리적, 정신적, 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행동의 결과가 축적되어 쌓인 게 바로 ‘나’가 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혈압약을 먹는다고 검사상 혈압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연관된 다른 문제들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런 ‘부분과 전체’의 역학 속에서 우리가 건강해지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현재 불편함이 발생한 부분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전체가 움직여야 합니다.”
기능의학병원을 몇 군데 가봤지만 대부분 검사하고 결국 병원문을 나설 때는 한가득 든 영양제 봉투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진통제를 먹지 않아서, 영양제를 먹지 않아서 내가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명을 받아 든 게 아니다.
지금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를 넘어선 우리, 사회 환경 속의 전체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본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싹트는 듯하다.
진짜 기능의학은 바로 전체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의 연결을 확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