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7장의 나인 과부 이야기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다.
이 가운데 서로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특정 복음서에만 기록되기도 한다.
오늘 묵상할 ‘나인 과부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등장한다.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먼저 가버나움에서 이방인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뒤, ‘나인’이라는 성으로 향하셨다.
성문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장례행렬을 마주하게 된다.
그 장례의 주인공은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다.
‘나인’이라는 히브리어는 **‘아름답다, 보기 좋다’**라는 뜻을 가진다.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비극이 일어났을까?
겉으로 보이는 행복의 착각
사람들은 각자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이것만 가지면”, “이 정도만 성공하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믿는다.
하지만 행복은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다.
멀리서 보면 인생은 희극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이 보인다.
사람이 아무리 생각한 것을 이루어도, 고통과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예수님이 나인 성으로 가신 이유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때, 이미 하나님이 먼저 그 자리에 와 계신다.
예수님은 우연히 나인 성에서 과부를 만난 것이 아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고통을 멈추게 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셨다.
그 시대의 과부, 가장 약한 존재
고대 사회에서 과부는 가장 약한 계층에 속했다.
남편이 없기에 사회적 보호망이 없고,
생계를 유지할 기반도 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녀에게 남은 것은 외아들 하나뿐이었다.
아들은 그녀의 마지막 지지이자, 보호이며, 미래였다.
그러나 그 아들이 죽었다.
이는 그녀의 삶 전체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스스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였다.
과부는 무엇을 했는가?
과부가 예수님을 급하게 찾았는가?
큰 믿음을 보였는가?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오셨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
1. 그녀를 ‘보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역을 위해 큰 도시로 향하신 것이 아니다.
갈릴리의 작은 마을 나인까지 직접 찾아오셨다.
헬라어 ‘보셨다(에이덴)’는 단순히 바라본 것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보셨다, 즉 그녀의 삶과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셨다는 의미다.
2. 불쌍히 여기셨다
헬라어 원문에는 ‘창자가 뒤틀릴 정도의 깊은 감정’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의 긍휼은 얕은 동정이 아니라,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강렬한 사랑이다.
3. “울지 말라” 말씀하셨다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녀가 울 수밖에 없는 조건의 본질을 바꿔주실 분이셨다.
4. 아들을 살리셨다
과부가 붙들고 있던 단 하나의 생명,
그녀의 관계, 미래, 삶의 원동력을 다시 회복시키셨다.
5. 그 아들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그녀의 품에 안겨주셨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시는 메시지
1.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결코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2. 비록 당신의 선택과 삶의 방향이 옳다고 느껴졌음에도 고통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먼저 찾고 계신다.
3. 당신의 고통보다 더 깊은 마음의 고통으로, 하나님은 당신을 불쌍히 여기신다.
4. 예수님은 “울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은 단순히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당신을 울게 하는 근본 원인을 치료하시겠다는 약속이다.
5. 당신의 마음을 살리고 회복시키신다.
단, 하나님이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의 조건’을 제거해 주신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보시는 선하신 뜻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샬롬(완전한 평안)’을 주기 위해
당신이 구하기 전에 먼저 찾아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