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by 작가 고결


1476925.jpg?type=w773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었다.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다.

시집온 후 감사하게도 시부모님께 김장김치를 받아먹고사는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며느리이다.

이해심 많고 나를 참 많이 사랑해 주는 남편과 좋은 시부모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혼 초부터 시댁 어른들은 우리 부부에게 참 많은 것들을 배려해 주셨다.

그 배려들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즈음부터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넘치는 배려들이 나중에 내가 언제 어느 때든지 간에 받아들여야 하는 족쇄가 되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엔 몰랐다.

시부모님이 주시는 음식들, 시누이가 내 아이에게 주는 선물, 시댁식구들과의 잦은 모임, 휴가마다 함께 여행하는 것과 행사에 나의 의견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들 나름대로의 타당한 요구와 심부름도 당연하게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참으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주시는 것 받고, 여행도 시켜주시고, 행사에 참여하고, 때로는 그들의 부당한 요구와 심부름을 나는 또한 당연히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점점 답답하고 위장이 아파오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시는 배려를 응당 감사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간과 날짜도 그들에게 맞춰야 하는 게 어느새 당연해져 버렸다.

거절하면 나는 나쁜 며느리니까.

이렇게 배려해 주시는데 싫다고 말한다는 것은 아주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심하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위염을 달고 살며 시댁 어른들의 '배려'와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급성으로 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때가지만 해도 몰랐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화산이 폭발하듯 사건이 터져버렸고, 감사하게도 나의 감정도 함께 폭발되었다.

더 이상의 과분한 배려는 받지 않겠다고, 그 과분한 배려로 인해 시키는 대로 하지는 않겠다고 폭발한 뒤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나 나의 위궤양과 우울은 씻은 듯이 낫게 되었다.

이제는 시부모님도 무리한 부탁이나 요구를 잘하지 않으며, 나 또한 그때그때 표현하려고 서로 노력하고 있다.


행복한 추석연휴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요즘, 또다시 일이 일어났다.

과거 그 사건 이후, 서먹서먹한 시누이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초대를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명절날 시누이와 시부모님과의 대화로 집안 약속과 일정이 잡혔고 그 자리에 없던 우리 부부는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얼떨결에 시부모님의 환한 얼굴을 마주 보며 싫은 내색 없이 '알겠다'는 대답이 냉큼 나와 버렸다.

그리고 요 며칠간 이상하게 속이 좋지 않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너는 무엇이 불편한 거니?'

'너는 무엇을 원하는 거니?'

'너는 무엇 때문에 너의 진심을 바로 이야기할 수 없었니?'


'내 안의 나'가 대답해 주었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야.'

'그저 나는 그들에게 존중받고 싶어.'

'무슨 일이 있을 때 너는 어떠냐고 물어봤으면 좋겠어.'

'그래도 괜찮겠냐고 내 의견도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랬으면 행복하게 '예스'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반면에, 부족한 날 참으로 많이 사랑해 주시는 시부모님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진심을 말하면 기분 나빠할 까봐 걱정 돼.'

'그들에게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어.'


나의 마음은 양면적인 마음으로 힘들었구나.


'그래서?'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네가 행복할까?'


'음......'

'내가 어떻게 하고 싶냐면 말이야...'

'이번에는 가고 싶어. 그리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 마음을 정중하게 꼭 표현하고 싶어.'

'어떤 행사나 여행이나 내가 함께 해야 할 일들에 관해 내 의견은 어떤지 꼭 물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

'존중받고 싶다고 정중하게 내 마음을 이제는 솔직히 표현하고 싶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말이야.'

'그것은 그들 몫이니까.'


'그랬구나 내 마음아.'

'가는 것, 안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는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싶은 거구나.'


'미안해.'

'이제는 나부터 너의 마음을 좀 더 빨리 알아차리고 존중할게.'

'무슨 요구를 들었을 때 네가 두 손 들며 찬성하지 않는다면,

마음에도 없는 대답 따윈 바로 하지 않을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너에게 시간을 줄게.'

'미안해 내 마음아......'


그랬다.

나는 상대에게 기본적인 존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나는 이토록 간절하게 기본적인 존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가족, 친구, 나의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그런

기본적인 존중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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