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게, 사람이제..."라는 말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에 나오는 대사이다.
무엇으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쁜 사람은 사람이 아니며, 좋은 사람만 사람으로 불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좋은 기준은 무엇이며 나쁜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상 모든 사람의 얼굴 생김새처럼 우리가 삶을 대하는 기준 또한 천차만별이다.
젊어서 시어머니에게 온갖 구박을 당한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 남편을 미워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그 며느리는 늙어 시어머니가 되고, 자신의 귀한 아들과 관계를 소원하게 하는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우리의 삶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것뿐인가.
'갑질'을 했던 사람이 어느 날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든지, 가난했던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를 전부 겪어 보았다 한들, 내가 아닌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내가 나 자신을 정확히 알고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그는 그의 입장에서 그의 일을 했을 뿐이고, 나는 나의 입장에서 나의 일을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힘들게 감정소모 하며 맞춰보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노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노 땡큐~'라고 말이다.
'노 땡큐'란 상대방의 의견이나 요구, 배려에 대해 감사를 표하지만 나는 거절하겠다는 의미를 담는다.
상대가 기분 나쁠까 봐, 다른 사람의 청유나 의견에 대해 흔들릴 필요는 없다.
당신 내면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타인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상대 입장의 적절한 청유는 감사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상의 여러 가지 과일들은 각자의 고유한 맛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딸기를, 어떤 이는 바나나를 좋아하며,
어떤 이는 딸기를, 어떤 이는 바나나를 끔찍이도 싫어할 수 있다.
어떤 과일이 좋은 것이고 어떤 과일이 나쁜 것일까?
과일의 맛은 각기 다르며,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도 각기 다르다.
틀린 것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다.
어제는 이랬다가, 오늘은 저런다.
입장에 따라 다르고, 입장이 변할 때마다 다시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세상에 수많은 과일만큼 사람 또한 그 속의 맛이 다르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늘 색다를 수 있으며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은 절대로 같은 모습이 아니기에 나는 늘 변화하며 성장할 수 있다.
타인 또한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은 그가 가진 전부의 모습이 아니며 늘 변화하고 그들 또한 성장할 수 있다.
이해하려 하지 마라.
그저 다름을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을 키워보자.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볼 줄 아는 마음과 자신의 내면을 볼 줄 아는 마음을 키워보자.
사람이기에 기대를 하고 사람이기에 실망을 한다.
사람이기에 추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다.
긍게~ 사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