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으려 한다'는 말이 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며,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것일까?
소설가 '앤 라모트'는 사람의 머릿속 오만가지 생각에 대해 라디오 방송이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으로 비유했다. 그것도 '스테레오'로 말이다.
오른쪽 스피커에서는 당신이 대단한 존재이며 세상 사람들이 온전히 알아주지 못한다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반면 왼쪽 스피커에서는 당신을 혐오하는 온갖 말들과 당신의 약점과 잘못, 실패한 모든 것들이 당신 탓이라는 말들을 쏟아낸다.
이러한 극단적인 두 메시지를 24시간 동안 듣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득이 되는 말이나 행동은 달기보다 쓸 때가 더 많다.
우리는 그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현실을 회피하게 된다.
우리도 모르게 말이다.
그것이 나 자신을 속이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결국, 정확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이것을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자기기만'은 나를 남과 비교하면서 내 능력, 인물, 매력 등을 객관적인 시각보다 부풀리고 왜곡하여 내 마음에 새기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부풀린 자신감과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애써 바로보아 고칠 필요도 없으며 미래의 불안에 대해 대처할 필요도 없어지게 만든다.
자신만의 완벽한 이유와 변명을 양분으로 삼아 커져버린 '병들은 자존감'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하며, 당신을 점점 고립된 삶을 살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자기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잠깐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당신은 마음의 성장과 평안을 택하거나, 그 고통이 두려워 타인의 말이나 당신이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을 회피하며 살아갈 수 있다.
어떠한 선택이든지 간에 당신은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을 피해 당신이 필요하고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당신 자신을 더욱더 완벽하게 속이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당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그 길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덕목인 '자기를 돌아보는 삶'을 살기 어렵다.
'에고라는 적'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선명한 인식을 가지고서 현재를 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불편할지라도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을 볼 줄 아는 현실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당신은 현재 무엇을 외면하고 있으며, 무엇을 애써 듣지 않으려 하는가?
지금 이 순간 용기를 내어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당신이 진정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