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샤 아저씨
인도 관련 책을 몇 권 읽은 후 바라나시에 가고 싶었다. 이미 다녀온 지인은 생지옥이라 했고 다른 이들은 거기서 나 자신을 찾고 되돌아왔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같은 장소인데 어떻게 감상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유튜브에서 인도 관련 영상을 찾았다. 수많은 작가와 여행 전문가의 인도 체험기는 다채롭고 흥미로웠다. 다른 문화와 환경을 두루 다니며 현지인들의 생활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1인 방송을 통해 시간 날 때마다 나는 방구석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 그러는 사이 한 여행 크리에이터의 방송을 즐겨보게 되었다.
한 번은 그가 행복지수가 높다는 최 빈민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를 여행 중이었다. 그 나라의 대중교통은 릭샤 (인력거)이다. 횡단보도조차 없는 좁고 열악한 도로 위로 사람과 가축, 릭샤의 행렬이 뒤섞여 복잡한 진풍경을 연출했다. 여기저기서 그칠 줄 모르게 들려오는 공격적인 클락션의 위협과 뿌옇고 매캐한 공기 속 뒤섞인 인파의 출렁임은 상상 이상의 카오스를 방불케 했다.
한시라도 바삐 이 총체적 난국을 벗어나려는 듯 그가 재빨리 릭샤를 잡고 가격을 흥정하더니 얼른 올라탔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릭샤는 양쪽에서 조여 오는 소음을 뒤로하고 난잡한 거리를 노련하게 요리조리 틈을 비집으며 목적지까지 그를 데려가는 중이었다.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는 야윈 살가죽을 뚫고 돌출한 광대뼈 위로 삶의 고단함이 담긴 듯 두 눈이 움푹 패어 있었다. 그는 앙상한 어깨뼈를 드러낸 채 장작개비처럼 바싹 마른 다리로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불특정 다수가 댓글을 앞다투어 쏟아냈다.
"안쓰럽다."
" 불쌍하다."
" 내릴 때 팁 좀 더 줘라. "
온갖 동정의 말이 댓글 창에 도배되자, 참고 있던 그가 한계에 다다랐는지 한마디 했다. 이분은 지금 생활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고 그 노동의 대가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라고. 당신들이 동정할 대상이 아니라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온 그는 있는 그대로 사람을 존중해 달라고 했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데 여러분들의 감성팔이가 이분에게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아냐고 질타하듯 반문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편협한 사고가 전환을 일으켰다. 어쩌면 아저씨는 기다리는 손님을 태울 수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고. 과거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노동의 대가로 한 손에 주변 부리를 사 들고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향할 수 있음에 그 무사 귀환함에 감사할지도 모른다고.
상대를 제대로 존중하는 것은 보이는 외형상의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마음이 아닐까. 도착지에 내린 후 릭샤값에 팁을 지불한 후 아저씨와 악수하고 그가 돌아섰다. 서너 걸음 가던 그가 갑자기 몸을 틀어 릭샤 아저씨에게 다시 왔다. 뭘 감지한 듯 불쑥 그의 카메라가 아저씨의 손바닥을 비췄다. 그가 말했다. I respect you (나는 당신을 존경한다).
순간 손바닥인지 곰 발바닥인지 단단한 철갑을 붙인 듯한 새까맣게 굳은 손바닥이 화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굳은살이 퇴적층처럼 쌓인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이 손바닥 안에 켜켜이 새겨져 있었다. 앞으로도 아저씨의 손바닥에는 그날 하루하루의 시간과 노동의 양이 계속 얹혀질 것이다.
좀 전에 느꼈던 나의 알량하고 어쭙잖던 동정이 새삼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