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보금자리
여린 빛이 파르스름한 어둠을 몰아낼 즈음, 새들은 허공에 음표를 뿌리며 숲의 심장에서 빠져나온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녘, 나는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베란다 창가 화단에 키 큰 잣나무 사이를 까치 두 마리가 자꾸 어른거린다.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더니 부리에 나뭇가지 하나씩을 물고 나타났다. 잣나무 우듬지에 집을 짓는 듯하다. 이미 가져온 가지들의 잔해가 나무 기둥과 이어진 가지 사이에 듬성듬성 깔려 있다. 신기해서 좀 지켜보는데 바람이 불어 잣나무가 휘청이며 위태롭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날도 우중충하다. 왜 하필 이렇게 궂은날 집을 지으려는 걸까 저러다 말겠지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이틀 뒤 저녁 식사를 마친 남편이 까치들이 집을 짓는다며 두 채나 짓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얼른 베란다로 가 보니 내가 새벽녘에 보았던 자리 그 아래로 내려와 다시 집을 짓고 있었다. 처음 터는 지지대가 약해 보였는지 여러 나무줄기가 방사형으로 뻗은 좀 더 안전한 곳으로 터를 옮긴 듯했다. 바지런한 그들은 나무 기둥을 기준점으로 같은 간격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마른 가지들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화단의 수많은 나무 중 왜 하필 우리 집 베란다 창가 앞 잣나무로 거처를 정했을까 신기했다.
다음날 나는 새벽 동이 트자마자 베란다로 향했다. 까치는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바쁘게 나뭇가지를 물어 날랐다. 어디서 자재를 충당 하나 살펴봤더니 앞산 숲이 그들의 창고였다.
두 마리의 협업이 대단하다. 한 마리가 물고 온 가지를 이쪽저쪽 길이를 재며 마땅한 자리에 놓고 부리로 꾹꾹 다지다가 다른 한 마리가 날아들면 이내 자리를 비켜 둥지 가장자리에 앉는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기다 실수로 떨어뜨리면 옆에서 지켜보던 한 마리가 얼른 밑으로 내려와 물고 올라왔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캭캭 캭캭캭 캭캭”
단조롭고 낮은 소리를 매번 크게 질렀는데 나는 새들이 내는 소리를 알아듣고 싶었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힘내라고 서로를 응원하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좀 해 봐요. 빨리빨리” 타박하는 걸까. 해석되지 않은 외계어처럼 맴돌다 사라지는 그들의 얘기가 그날따라 궁금했다.
집이 반 가까이 지어질 때쯤 제 몸보다 몇 배나 긴 나뭇가지들을 물고 와 둥근 외벽틀을 점차 밖으로 늘려 나갔다. 가끔 물고 오는 작은 가지들도 있었는데 둥지 바닥에 떨어뜨려 밑바닥을 촘촘히 다지는 듯했다. 처음 짓다 만 곳에서 자재를 가져와 다시 사용하기도 했다.
얼기설기 이어가며 제법 큰 둥지가 틀을 잡아간다. 제 몸이 쏙 들어가 머리를 숙이면 까맣고 긴 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켜든다. 사선 낙하 시 하얗고 둥근 배와 이어진 양쪽 날개 끝 흰 무늬가 부챗살처럼 쫙 펼쳐 바람을 가르며 어디쯤 날아 가더니 가지 하나를 물고 돌아왔다.
부실 공사가 되지 않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듯 야물게 짓는다. 고난의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삐져나온 가지들을 점검 후 다시 빼 알맞은 자리에 놓은 뒤 부리 끝을 망치처럼 콩콩 두드린다. 입이 부르트지 않나 의문이다. 세밀한 마무리가 노련한 목수 같다. 두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둥지 안에 드니 이젠 몸이 보이지 않는다.
다정한 연인들이 지은 둥지는 달항아리처럼 둥글다. 특이한 건 문을 위로 내지 않고 옆으로 내었다. 문이 하늘을 향하면 아마도 폭우가 쏟아질 때 직격탄을 맞으니 옆으로 낸 것 같다.
늦은 봄날에 비가 뿌렸다. 오후 햇살이 점점 투명해지자 한참 동안 안 보이던 그들이 어디선가 날아왔다. 가지에 앉자 나무초리가 가벼운 리듬을 타며 흔들린다. 통통 몇 번 튀며 둥지 옆문으로 들어갈 땐, 까맣고 긴 꽁지가 위아래로 까딱까딱 흔들리며 점점 짧아지면서 몸이 쏙 들어간다.
태풍이 불면 나는 얼른 베란다로 나가 까치집부터 살핀다. 키 큰 나무들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일 때마다 둥지도 같이 흔들렸다. 혹여 통째로 둥지가 날아가거나 부서지지 않을까 안절부절 눈을 떼지 못하면 남편은 "괜찮아, 야물게 지어서 끄떡없어."라고 안심시켰다.
곧 손수 만든 보금자리에서 알을 낳고 새끼가 태어날 것이다. 둥지에 든 한 마리가 밖으로 한참이나 안 나오면 남편은 알을 품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마 교대로 품는 것 같다. 다시 한 마리가 날아들면 둥지 속 새는 어디론가 먹이를 찾아 날아갔다.
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전한다는데 이렇게 두 마리가 그것도 우리 집 앞 창가에 둥지를 틀었으니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남편은 한술 떠 “이젠 로또가 맞으려나 보다”라며 미래의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