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묵비권

by 홍정임

유치한 줄 알면서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어린아이 앞에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것처럼 어른들은 배우자를 앞에 두고 “다시 태어나면 누구랑 같이 살 거야?”를 묻는다.


거짓 없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힘든 건 아직 같이 사는 중이기도 하고 앞으로 닥칠 후한과 불이익이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서로에게 착한 거짓말을 시전 한다.

다음 생애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질문을 어느 모임에서 심심풀이 화제로 다룬 적 있다. 그에 앞서 내 마음은 한결같다. 솔직히 다시 태어나도 나는 호건 아빠랑 결혼할 거야, 단언한다. 다음 생애도, 그다음 생도, 그 그다음 생도 우주가 마르고 닳고 해져 먼지 되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따라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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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은 아직도 그 나이에 콩깍지가 안 벗겨졌냐며 웃는다. 그리곤 나에게 정색하며 묻는다. 이생에서 지겹도록 오래 살았는데 다른 사람이랑 살아보고 싶지 않냐고. 다음 생애도 또 만나 같이 살고 싶냐며 자기 부부는 각자 놓아주기로 다른 사람과 살 수 있는 기회를 서로에게 주자고 합의를 봤다고 한다.

언젠가 나도 남편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다시 태어나면 누구랑 살 거냐고. 무반응이다. 나는 해바라기처럼 한 곳만 바라보는데 내가 묻는 말에 침묵을 행사하는 남편의 속내가 궁금하다. 처음엔 고지식한 남편이 생각해 볼 테니 시간 좀 달라고 했다. 이게 생각해 볼 문제인가. 바로 yes나 no로 나와야지 곧장 말하지 못한다는 건 부정에 가깝다. 나는 어떤 말이라도 괜찮으니 no,라고 말해도 화내지 않을 테니 진실을 말해 달라고 재차 묻는다. 그때마다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다. 종용하면 이리저리 확답을 피하며 얼렁뚱땅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느낌상 보나 마나 no인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아.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남자인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으니 자기는 미리 가서 다른 여자 만나고 있을 테니 나중에 와서 아는 체하지 말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땐 내가 하도 지겹게 끝까지 쫓아가겠노라 하니 손사래 치며 받아치던 말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는데, 어쩌면 농담 속에 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시간을 줄 만큼 줬는데 아직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반쪽의 의중이 요즘 들어 확증으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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