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도둑맞다

by 홍정임

어둠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지리멸렬한 밤의 뼈를 갈아

내 잠을 태워 한 줄 읊조린다

내 안의 불씨를 일으켜

단련된 칼끝으로 초승달 하나 베어

심드렁한 백지 위에 눕히고

뭇별 중 몇 개를 박았다

심장을 도려낸 나와 같은 나

날뛰던 동맥은 말라붙고

이름은 지워졌다

너는 모르겠지

이 글이

이 노래가

이 붓질이

내 피로 세운 성채라는 걸

넌 나에게 묻지조차 않았다

한순간 흩어진 무명의 존재

꺾인 숨과 토막 난 리듬

빼앗긴 이름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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