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흑백사진
친정에서 머물 때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시간이 무료할 때쯤 엄마가 서랍장을 뒤적이더니 몇 권의 사진첩을 꺼내 우리들 앞으로 가져왔다.
아이들은 관심 밖인지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남편과 나는 두툼한 앨범 한 장 한 장을 넘겼다. 갈피마다 빛바랜 추억의 편린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지만, 눈길이 머문 곳은 한쪽 모서리가 닳아 벗겨지고 실금이 하얗게 드러난 흑백사진 하나였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우리 동네에 손수레 이동 사진관이 등장했다. 산수화가 그려진 커다란 판넬을 수레에 싣고 그걸 뒷배경 삼아 사진을 찍어주는 이동 사진관은 평화롭다 못해 심심한 동네에 이색적인 구경거리였다. 읍내에 사진관이 하나 있었지만 주로 증명사진 위주로 찍었기에 이동 사진관은 평소 사진을 접할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비싼 촬영비 때문에 “사진 찍어요”를 아무리 외쳐도 정작 손님은 없고 주변으로 아이들의 호기심만 몰려들 뿐이다. 생활에 여유가 없으면 사진 하나 남기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동 사진관이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이때를 놓칠 수 없는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단장시켜 사진관 앞에 세웠다. 남동생은 이모가 선물해 준 양장을 오랜만에 장롱에서 꺼내 입고, 나는 줄무늬 바지를 입었다. 베레모를 사선으로 눌러쓴 막내는 어느새 소품인 장난감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사진사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설 자리를 배정받았지만, 우리 삼 남매는 무대에 처음 오른 배우처럼 어색한 표정이 어디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 웃음기 없는 얼굴과 굳어버린 차렷 자세.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지 못한 벙벙하고 얼떨떨한 두 눈이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말과 동시에 같은 곳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넉넉지 않던 시절, 엄마는 비싼 돈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사진을 찍게 했다. 후일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사진으로 남겨 놓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 당시 엄마가 소중하게 여겨 붙잡아 놓은 삶의 조각들을 들여다본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소풍 때 찍은 사진에 나는 입학 선물로 받은 분홍 코트를 입고 엄마랑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지금보다 훨씬 마르고 날렵한 얼굴선을 가진 젊은 엄마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학교 운동회 때도 졸업식 때도 엄마는 빠짐없이 그날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쉽게 찍고 지우지만 당시에는 필름을 사용했기에 찍고 현상 인화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시간 들여 얻은 사진 한 장이 소중했다. 사진값을 선불로 내면 보름 정도를 거쳐 집주소로 사진을 동봉한 우편물이 도착하는데 한번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사진도 돈도 떼이는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엄마는 가슴에 묻어두고 며칠을 속상해했다.
사진사 아저씨는 엄마에게 반가운 손님이자 소식이었다. 손바닥만 한 종이 그 안에는 흘러간 시간이 지나간 사람들과 이미 사라진 사람들을 붙잡고 있다.
지날 때는 모르다가 뒤돌아봐야만 보이는 게 있다. 때론 추억되지 않은 누군가도 보여 잠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그때의 소리와 향기 온기가 고스란히 소환된다.
반세기를 훌쩍 건너온 사진이 앨범 속 갈피에 누워있다. 덕분에 나는 어린 나와 마주한다. 망각의 물결 속 잠겨 있던 기억이 잠에서 깨어나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우리는 서로를 응시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엄마는 우리들의 시간을 기억 모퉁이에 저장했나 보다. 덕분에 나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상자에서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 들었다. 그 기억들은 변하거나 마모되지 않은 채 그때 그날에 멈춰 고스란히 남겨졌다. 지금껏 나는 그 모습들을 잊고 지냈다. 그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하나 숨을 쉬며 지금 되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