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숨을 고르며 멈추자, 저 멀리 마른 손을 허공에 휘휘 내저으며 노인 한 분이 비척비척 다가온다. 버스는 재촉하지 않고 한양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시래기 줄기처럼 앙상한 몸이 힘겹게 버스에 올라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놓았던 숨을 덜컹거리며 버스가 출발한다. 자리에 앉은 노인이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쉰다.
나는 지금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빨리 닿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승용차가 아닌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정 사이마다 놓여 있는 풍경을 두 눈에 담으려 나의 시선은 줄곧 창밖을 향한다. 휘어진 굽은 길은 밤나무와 전나무 군락지를 뒤로하고 아담한 단층의 교회를 지나 여인의 눈썹을 닮은 아미산을 스친다. 건너편 논과 들녘 너머엔 어깨를 맞대고 첩첩이 포개진 높고 낮은 산자락이 길게 누워있다.
버스의 승객은 거의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다. 정류소에서 한 분이 오르자 서로 아는 사이인지 어디 가냐고 안부를 묻는다. 이어 아무 게는 몸이 아프다는 둥 거동이 불편하니 언제 한번 같이 둘러보자는 둥 즉석에서 날을 잡기도 한다. 엿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들려오는 건 지역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정겨운 이야기다.
면천 읍성에 내렸다. 낮고 아담한 읍성은 성체의 위협감이 전혀 없다. 새끼를 품은 어미 새의 긴 날개 죽지처럼 한 마을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나는 고즈넉한 동네를 방금 오수에서 깨어난 나른한 고양이의 한가로운 걸음으로 어슬렁거린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곳은 아지랑이 풀리는 봄에는 벚꽃이 가득하고 여름에는 골정지 연못에 연꽃이 탐스럽게 만개한다. 폭설이 쌓이는 겨울까지 마을은 사계절의 정취를 담백하게 보여 준다.
이 지역의 차별화된 분위기는 차분함과 잔잔한 평화다. 마을을 둘러보는 데는 한 시간 정도면 족하다. 그만큼 작은 변두리의 시골 동네다. 오래된 서사를 품고 있는 동네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면 예기치 않게 뭔가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마치 오래된 마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요즘엔 지자체의 홍보와 이미 다녀간 분들의 후기가 여러 매체에 알려져 방문객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주말이면 마을에 생기가 돋아난다.
방문객들의 편의와 트렌드에 맞춰 읍성 안의 예전 모습도 변했다. 흙길에 보도블록과 운동기구가 깔리고 대형 커피숍이 들어서고 시간이 지날수록 뭐가 늘어나고 조금씩 현대화되는 과정의 속도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랫동안 노쇠하다 부활한 이곳이 주변에 동요되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길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기대한 건 나만의 사심이었을까. 마을 특유의 개성과 정체성이 옅어지는 게 아쉬워 어떤 방법으로든 기록해두고 싶었다.
처음엔 마을을 오가며 사진을 주로 찍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 그림은 ‘넘사벽’이다. 배워본 적도 그릴 줄도 모르는 문외한이고 학교 다닐 때를 마지막으로 지금껏 붓을 잡아 본 적도 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손에 이미 붓이 들려졌다.
보통 멋진 풍경 앞에 ‘그림 같다’라는 말을 하는데 스케치를 하면서 왜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궁금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실상과 그 현상을 찍은 사진, 그리고 그림의 차이점이 뭘까 생각했다. ‘그림처럼 멋지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머릿속으로 찾으며 밑그림을 스케치했다. 비슷하게라도 그리려다 보니 눈앞의 풍경을 예전보다 더 면밀히 들여다보며 관찰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했다. 그래서인지 흘깃 지나쳐버린 익숙한 풍경들이 저마다의 의미로 새롭게 와닿았다.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를 빼닮게 그리는 게 아니라 눈을 거쳐 마음의 창이 투영된 곳에 내가 느끼는 고유의 색으로 옷을 입혔다. 실제 모습에 나만의 감상이 색으로 덧입혀지는 과정을 통해 이게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닐까 느껴졌다.
버스로 되돌아가는 길. 같은 풍경인데도 창밖은 차분한 빛의 산란에 산 능선의 긴 그림자가 바닥으로 내려와 어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