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소파
낡은 가죽 소파가 있었다.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은 듯 빛이 바래고 삭아서 구멍 뚫린, 앉은자리마다 푹 꺼진 볼품없는 소파였다.
차일피일 미루다 떠나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새 소파가 들어오는 날 헌 소파는 나갔다. 한 겨울, 낡은 소파는 아파트 재활용품이 모이는 장소에 딱지가 붙여진 채 한쪽 구석에 버려졌다. 외출하거나 슈퍼 갈 때 그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소파에 자꾸 눈길이 갔다.
눈이라도 흩날리는 날에는 오롯이 맞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자꾸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그럴 때마다 원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죄지은 사람처럼 뒤 꼭지가 후끈 달아올라 이내 시선을 떼고 고개 숙인 채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집에 들어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떠나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미련이 남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다 낡아빠진 소파에 뭘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냐고 하겠지만, 내가 힘들 때 등을 받쳐주고 피곤에 지쳐 쓰러지면 풀 죽은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 나의 육중한 온몸이 기대고 의지했던 소파가 아닌가.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손때 묻은 물건은 쓰임이 다했어도 쉽게 놓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예전에 아는 분의 얘기가 떠오른다. 지인의 거실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늘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가 있었다. 어느 날 처분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중고 가게에 팔았다고 한다. 며칠 동안은 피아노가 놓여 있던 자리가 텅 비어 볼 때마다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니 싶어 마음을 누르고 달랬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헛헛해 눈물이 났다고 한다. 안 되겠다 싶어 중고 가게에 다시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한 후 돌려줄 수 없냐고 부탁한 끝에 가까스로 피아노를 되찾아 제 자리에 놓았다는 것이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같이 있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당연시하다가 사라지고 나면 그 빈자리가 커 보인다는 뜻이다.
헤어짐은 평소 느끼지 못한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사람이 아닌 무생물일지라도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아마도 피아노 주인은 마음이 괴롭고 슬플 때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두드리며 아름다운 선율에 위안을 느끼고 치유받았을 것이다.
쓸모를 잃었다는 미명 하에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잊혀도 차마 놓을 수 없는 온기와 기억이 있다. 일상을 함께 한 그 따스한 기억들이 나의 일부였기에 놓아주기 힘들었나 보다. 나는 차마 하지 못한 인사말을 이제 하려 한다.
“그동안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