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위로

by 홍정임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이국의 파란 하늘 아래 꿈의 파편들이 산산조각 흩어졌다. 연일 방송에선 탑승자들의 신원조회와 실종자들을 수색하느라 부산하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 산악지대가 있는 포카라 공항까지의 비행은 해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악명 높은 구간이다. 안나푸르나 등 고봉과 가까워 이착륙이 까다롭고 기상 상황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도 착륙 직전 발생했다. 승객 중 누군가가 송출한 영상에는 사고의 마지막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들떠 있는 승객들은 기체가 크게 흔들릴 때마다 극한의 스릴을 맛보듯 비명을 내지르며 즐기고 있었다. 바로 그 웃음찰나에 굉음과 화염이 솟구치며 영상이 블랙아웃 됐다. 덮칠듯한 기세로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가 가파른 산비탈과 협곡에 뿌려졌다.


그곳에는 한국인 부자가 타고 있었다. 군인 아버지와 10대 아들이라고 했다. 10대 아들이라는 말이 마음을 찔렀다. 전이된 감정은 떨칠 수 없는 우울함으로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검색을 하니 40대 군인 아버지와 중학생 아들이었다. 어린 아들과 산악 트레킹을 계획한 걸로 보아 군인 아버지는 생전에 활동적이고 다정다감했을 것이다. 네팔 여행을 오래전부터 마음먹고 벼려왔을 텐데 휴가를 내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두 부자는 얼마나 설렜을까? 이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한순간에 잃은 유족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언젠가 미술 심리 수업을 들은 적 있다. 사람이 심각한 상황이나 사건을 경험 후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에 대해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살면서 예기치 않는 충격을 받았을 때 3년 동안은 슬픔의 고통 속에 빠져 허우적 댄다고 한다. 5년이 지나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10년이 지나면 그냥 살아진다고 한다.

소중한 이가 갑자기 곁을 떠났을 때 유족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사려 깊지 못한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신경 쓴답시고 저마다 준비한 말을 위로랍시고 유족에게 건네는 실수를 범한다. 숨 쉴 여력도 일어설 기력조차 없는 유족에게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쳐 주는 게 어쩌면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수 있다.


슬픔은 깊이 들여다보고 배워야 한다. 그래야 소리 없는 위로로 온전히 슬픔을 보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밝은 빛이 한순간에 꺼져버린 암흑의 순간. 한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는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인지도 모르겠다. 망각은 어쩌면 신의 연민이 낳은 위로가 아닐까. 시간 속에서 점차 흐려진 기억이, 언젠가는 의식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망각이 사람을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슬픔의 고통을 시간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탄은 오롯이 혼자만이 감내하면서 통과해야 하는 각자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런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다음을 살아내야 한다는 게 어쩌면 삶이 주는 잔인함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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