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시네마의 추억
어떤 장소가 사라진다는 건 새벽녘 희미하게 명멸하는 샛별처럼 아쉬운 일이다. 사라진 장소가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면 그 각별함은 측정할 수 없는 상상 이상의 의미이리라.
두 번째 밀레니엄을 코 앞에 두고 천안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천안역에서 고속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더 들어가는 당진에 그가 산다. 지금처럼 고속열차도 없던 시절, 만남은 천천히 뜸을 들이며 이루어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해는 사상 유례없는 폭설이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다. 눈 구경하기 힘든 따뜻한 부산에서 올라온 나는 쏟아지는 눈송이를 들뜬 소녀처럼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두 손 내밀어 받았다.
그의 숙소에 머물며 창턱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몇 날 며칠 고요한 순백의 시간에 흠뻑 빠져 지냈다. 적요하게 흩날리며 겹겹 내려앉는 송이눈이 주위 모든 사물들의 경계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간결하게 이어 놓았다. 아득한 곳에 작은 섬처럼 흩어진 낮은 지붕들 사이로 뾰족이 솟아 오른 십자가가 흐릿한 실루엣으로 서 있다. 있는 것이라곤 들판과 도로를 경계짓는 앙상한 나무의 도열과 한참을 지나야 마주하는 식당과 구멍가게뿐인 이곳에 이렇게 탐스럽고 하얀 눈꽃송이가 축복하듯 다발로 쏟아졌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 감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노래도 몇 번 들으면 물리듯, 나를 소녀처럼 들뜨게 했던 설렘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퍼붓는 눈 속에 속수무책 갇힐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눈부신 고립에 두발이 묶여 몸이 근질근질해질 때쯤, 따분함을 눈치챈 그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 그가 자동차 바퀴에 체인을 단단히 걸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 나는 신기한 듯 그의 손놀림을 곁에서 계속 지켜봤다. 체인을 단단히 조이며 바닥에 엎드린 그가 씽긋 나에게 미소를 짓더니 이젠 됐다는 듯 가죽 장갑에 묻은 눈가루를 탈탈 털어내며 일어섰다.
차는 눈길을 더듬으며 엉금엉금 영화관으로 향했다. 시골 읍내에 하나뿐인 영화관은 지금 생각해도 선명히 떠오를 정도로 강한 첫인상을 지녔다. 원색의 새빨간 좌석과 날 것 그대로의 시멘트 바닥. 있을 건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한다는 듯 자기주장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그 존재의 방식이 도시처럼 고상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았다.
힘들게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일본 영화 <러브레타>를 봤다. 영화는 여주인공이 (나카야마 미호) 눈을 맞으며 옛 연인의 안부를 물으며 시작된다. 여주인공이 설원에서 흐느끼며 외쳤던 ‘오겡끼데스카' (잘 지내나요?)는 그 당시 어린이도 따라서 흉내 낼만큼 유명한 대사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시점에 처음 접했던 일본 영화 <러브레타>는 특유의 잔잔한 감성과 여운을 남겨 나는 한동안 영화의 잔상에서 헤어 나지 못했다. 영화의 유명세 덕에 종종 광고나 예능 프로에 “오겡끼데스카”가 패러디되었다. 가슴 저미는 아픈 대사가 웃음 코드로 사용될 때마다 우스꽝스러운 발상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흘러 읍 단위의 시골이 신도시로 개발되자, 대형 영화관에 밀려 소규모의 지역 영화관은 자연스레 문을 닫았다. 한동안 과거의 명성만 간직한 채 아무 쓰임 없이 초라하게 그 자리를 지키던 옛 영화관 ‘당진 시네마’는 ‘문화 공감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지역 예술가들에게 장소를 대여해 주고 소소한 이벤트와 문화 행사를 주관하는 곳으로 변모한 것이다.
나는 가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흘낏 쳐다보며 여기가 당진 최초의 영화관이었는데…. 라며 혼잣말을 한다. 여기는 폭설이 내리던 날 그와 <러브레타>를 보고 매점에서 파는 오징어를 난로에 구워 찢어 먹었던 곳. 어둠에 휩싸인 밖을 헤드라이트에 의지한 채 조심스레 헤쳐 나갈 때마다 정적을 깨뜨리며 하얀 심연으로 푹푹 빠지던 체인 소리만이 철커덩 귓가에 또렷이 파고들던 추억이 있던 자리.
‘문화 공감 터’에서 오래된 명화를 무료로 상영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목록을 쭉 훑어보니 그중 <러브레타>가 보였다. 제목을 눈으로 읽는 순간 그 글자 안에서 한참 머물렀다. 나는 같은 장소에서 25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영화를 봤다. 내가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영화관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한 사람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였다.
변함없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여주인공이 무릎까지 폭폭 꺼지는 폭설을 헤치고 조난 사한 과거의 연인에게 ‘오겡끼데스카’를 힘겹게 외치는 장면이다. 답변 없는 공허한 외침의 안부는 마주 보는 설산에 튕겨 메아리로 다시 그녀에게 와닿는다. 곧이어 “와따시와 겡키데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움이 눈처럼 고요히 쌓인 곳에서 홀로 부르짖는 지난 사랑이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설원 위를 맴돌아 되울려 퍼진다.
세상엔 시간이 지나면 뿌옇게 흐려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얗게 잊히는 게 있다. 시간이라는 명약은 떨칠 수 없는 그리움마저 먼 곳으로 앗아가 버리는 특효를 지녔다. 하지만 기억 언저리를 맴돌다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익숙한 노래가, 한 줄 문장이, 어떤 한 사람이, 어떤 장소가 그렇다.
재상영된 영화를 과거의 장소에서 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 그 시절로 고스란히 소환됐다. 눈은 참 묘하게도 세상을 덮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둔 기억을 조용히 꺼내주기도 한다. 시린 공기 속에 흩어지던 하얀 입김, 체인을 단단히 조여 매던 그의 야무진 손끝, 숨 막히는 설원을 헤치고 겨우 도착한 시골영화관, 그리고 그와 처음 본 영화 <러브레타>.
그날의 폭설이 기억을 뚫고 나왔다. 감정의 뼈마디가 욱신거려 아주 오랜만에 나는 밤새 뒤척이는 몸살을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