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처럼
입춘이 지났는데도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기만 하다. 잠시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코끝이 시큰하고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리다. 보일러를 틀어 온기를 돌게 한 후 거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안으로 쏙 들어가 몸을 녹였다. 계절이 다시 겨울로 돌아갔는지 산간 지역에 눈이 내리고 안전에 유의하라는 한파 재난 문자가 연달아 핸드폰을 울린다.
이렇게 추운 날 남편은 얼마나 고생할까. 정년 후, 남편은 일 하던 곳에 촉탁계약직으로 재취업했다. 제일 말단인 남편은 아들뻘 되는 신입과 현장에서 일한다. 사실, 그들보다 서열이 더 낮다. 팀원과 잘 어우러져야 하기에 자존심 따위 다 내려놓고 초심으로 정신을 재무장해야 한다. 불쑥 들어온 나이 든 사람을 젊은 사람들이 싫어할지 모르니 눈치도 살펴야 하고 과거 계급장을 버린 채 솔선수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인이 말하길 본인 남편은 자존심이 강해 하루아침에 그런 낯선 환경에 떨어지면 못 견뎌한다며 남편을 대단한 사람이라 추켜세웠다. 어찌 보면 대단할 수 있다. 상사로 일을 지시하던 사람이 갑자기 강등돼 제일 밑바닥부터 그것도 최저 시급으로 시작해야 하니까.
남편의 강점은 성실과 유연함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대체로 본인의 고집을 양보한다. 잘게 쪼갠 대나무 살처럼 낭창 휘어지는 유연함은 주변과 잘 섞여 융화하게 한다. 꼰대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남편은 새벽 5시 30분쯤 출근한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세팅된 기계처럼 제때 눈을 뜬다. 수십 년 동안 몸이 기억하는 생체리듬이기에 다시 리셋하기 힘들다. 캄캄한 밤길을 뚫고 회사까지 차로 30분 달린다. 서둘러 도착해야 하는 습성이 몸에 밴 남편은 일단 출근 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다 사내 식당에서 아침 식사하고 근무시간 8시 30분에 맞춰 일에 들어간다.
남편이 내복을 입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속옷 가게에 들러 내복 3벌을 샀다. 요즘 내복은 얇고 가벼운 데다 발열 기능도 있어 강추위에 적합하다. 현장에서 일하려면 우선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 젊은 친구들이 “아이, 추워”를 입에 달고 살자, 남편은 나처럼 내복을 입으면 거뜬하다고 사 입으라고 강권하지만 “추워”만 남발할 뿐 내복 입을 생각은 아예 안 한다고 한다. 그들의 젊은 혈기가 쪽팔림보다는 오히려 추위에 떠는 걸 선택한 것 같다. 그렇다면 추위에 대항할 패기를 잃어버린 남편은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걸까. 남편도 내복을 안 입고 그들처럼 추위와 맞짱 떠 이겼던 때가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몸에 딱 달라붙어 답답해 이제껏 내복을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몸속 열이 많은 것도 아닌데 잠자리의 온열매트도 저온으로 맞춰야 중간에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지금엔 늦가을 바람에도 뼈마디가 휑하니 시리다. 잠자리의 온도도 높여야 몸이 노곤해져 피로도 풀리고 편한 잠을 잔다. 따뜻한 걸 선호하도록 몸과 체질이 변했다. 남편과 나는 평생 거들떠 볼일 없을 것 같은 내복을 사랑하는 내복 마니아가 되었다. 내복은 감기도 예방하고 난방비도 줄일 수 있으니, 겉멋보다는 실속을 챙기는 실용적 아이템이다.
언젠가부터 내복은 나이 든 사람의 전유물이 되었다. 꽃샘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릴 때, 옛날 어르신들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보리 고개 넘어가던 4월에 노인네들 얼어 죽는다고. 그땐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세상 모든 이치를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지니게 만든다.
그 너그러움으로 착한 이월이 따뜻한 삼월을 데려오고 조용히 물러나려 한다. 남편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지금 혹독한 계절을 통과하는 이들에게도 하루빨리 봄의 미소가 스며들었으면 한다.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오는 봄처럼 모두의 봄날이 따스했으면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