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 없다

가족의 의미

by 홍정임

서브웨이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그녀가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뭐에요?”

애 키우느라 젊었을 때 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신선한 활력을 느낀다고 하자 그녀가 던진 질문이다.

그녀는 독서 모임에서 나이가 제일 어리다. 아직 미혼이며 항상 마음에 물음표를 지니고 있다. 왜요? 왜 그런 거예요? 라고 인과관계를 따지며 이해될 때까지 답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이다.

갑자기 불쑥 들어온 질문에 나도 모르게 불쑥 답했다.

“결혼의 경험요.”

준비 없이 막 튀어나온 예기치 못한 답변에 나조차도 당황스러웠지만, 은연중 진심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생각을 진지하게 그려 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아주 멀리 있어 도달해야 할 이상이었다. 가끔은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실감이 나지 않고 낯설 때가 있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도 아니었다. 나에게 결혼은 마음의 준비나 확신 없이 자연스레 찾아왔다.

지금은 다 커버린 황소 같은 두 녀석이 엄마라고 부르며 다가오면 그 상황이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울 때가 있다. 아들이 어렸을 때, 그 엄마라는 말에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워’라고 말하자 ‘그럼 뭐라고 불러?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엄마인데.’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한 두 아들에게 엄마라는 말을 듣는 일상은 지친 삶에 생기를 부여한다.

남들이 다 겪는 통과의례를 왜 난 최고의 경험이라 여기며 유난을 떠는지 생각해 봤다. 그 저변에는 이 세상엔 당연한 게 없다고 여기는 평소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 공짜와 당연한 게 없다는 건 나의 소신이자 개똥철학이다.

나는 가끔 일상이 펼쳐지는 무대를 관객이 되어 멀리 떨어져 관람하곤 한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어 나 자신을 주의 깊게 관조하거나 주시할 때가 있다.


언젠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할 때였다. 마침 TV에서 개그맨들이 나와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설거지하며 무심코 거실로 시선을 돌렸는데 세 부자가 나란히 앉아 TV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남편을 반반씩 닮은 두 아들이 아빠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입을 반쯤 벌린 채 같은 포인트에서 소리내 웃는 모습. 세 부자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자, 마음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일렁였다. 우리들만의 공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시간을 함께 나누며 웃고 떠들 수 있는 그 잠깐의 순간이 찰칵 사진으로 마음에 박혔다.

삼자가 되어 객관화시키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선명해진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주관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이 짊어진 문제나 무거운 짐이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평소 당연하게 여긴 것들도 당연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선물처럼.

나의 얘기를 가만히 듣던 그녀가 올가을이 가기 전 계획을 들려준다. 엄마랑 템플 스테이를 갈 예정인데 처음 가는 사찰로 예약을 해 뒀다는 거다. 평소 엄마와 잘 다닌다는 그녀의 후일담은 다음에 만나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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