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 브랜드로서 무신사 스탠다드의 브랜드 확장성
결혼을 준비할 무렵이었습니다. 강남역 모 의류매장 앞으로 나오라는 여친(지금의 아내)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반팔 티셔츠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던 쇼핑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 금액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옷장에 있는 옷은 다 버리자”
스트라이프 위주의 옷장은 경험하지 못한 컬러와 패턴으로 채워졌습니다. 패피까지는 아니지만 옷을 못 입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다소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 그 시점부터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을 많이 듣기 시작한 것을 보면 그분의 선택이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7월 1일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 플래그십 매장이 오픈하였습니다. 홍대점에 이은 두 번째 오프라인 매장입니다. 강남 매장은 무신사 본격적인 오프라인 확장 전략 공간으로서,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1. VMD: 일반적인 패션매장의 입구는 시즌 상품 또는 대표 테마를 꾸미는 공간입니다. 마네킹으로 공간을 채우는 대신 14m에 달하는 미디어 월을 설치하여,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감각적인 영상으로 화면 가득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아티스트 프로젝트: 매장 내 아티스트와 협업한 체험형 전시공간을 친환경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매장을 방문한 고객에게 특별한 감성과 경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3. 라이브피팅룸: 여러 명이 피팅룸에 한 번에 들어갈 수도 있고, 소셜미디어에 게시할 콘텐츠를 즉석에서 촬영하고 만들 수 있습니다. 피팅룸을 옷을 입어보는 공간을 넘어서는 이색적인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였습니다.
4. 컬러와 향기: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익스클루시브 컬러와 시그니처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방문한 고객에게 '다양한 감각'으로 브랜드를 기억시키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5. O2O서비스: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오프라인에서 픽업하는 무탠픽업 서비스는 매장 매출의 18%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온라인에 적용되는 쿠폰을 오프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고, 픽업한 상품에 대해 적립금과 온라인 후기를 남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온, 오프라인을 결합한 옴니채널 환경을 통해 충성도를 높이고 매장 경험 만족도를 높이고자 합니다.
오프라인의 본질이 '공간 비즈니스'임을 감안하면 고객이 매장에서 체류하면서 경험할 오감(五感)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오픈 후 3일간 8천여 명의 방문객, 1억 9천만 원의 매출을 기록한 강남 매장의 시작은 순조로워 보입니다.
PB(Private Brand) 또는 PL(Private Label)은 유통업체에서 기획, 개발한 자체 브랜드 상품을 뜻합니다. 소비자는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싸게 구할 수 있고, 유통사는 제조사와 직거래를 통해 유통마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판매 가능한 채널이 자사의 온, 오프라인 매장 밖에 없기 때문에 '재고관리의 리스크'를 오롯이 유통사가 가져갑니다. 상품개발은 신기술이나 트렌드를 이끄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매출 검증된 품목 위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PB제품의 경쟁우위는 가격, 가성비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얼프라이스, 온리프라이스, 홈플러스좋은상품과 같은 PB 네이밍은 그 반증입니다.
NPB(National Private Brand)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공동 기획하여 해당 채널에만 독점 판매하는 제품으로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제품력과 브랜드력을 일부 보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많이 등장하는 콜라보 제품도 NPB범주 속합니다.
몇 년 전부터는 자사 유통채널을 벗어나 독립적인 브랜드로서의 PB(Private Brand)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마트의 자주(JAJU), 노브랜드(NoBrand)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주’의 경우 분사하여 신세계인터내셔널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품질과 컨셉을 가진 별도의 브랜드로 승부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무신사는 작년 별도법인으로 운영되던 무신사 스탠다드의 운영사 ‘위클리웨어’를 흡수 합병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출점하면서, PB를 넘어 독립 브랜드로 성장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오프라인에서도 지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독립적인 브랜드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PB가 NB와의 경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품질과 브랜드력 2가지입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현재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슬랙스’로 대표되는 무신사 스탠다드의 제품은 품질과 스타일에서 웬만한 브랜드를 압도합니다. 40여 가지가 넘는 핏(Fit)의 종류는 물론 재질, 컬러, 사이즈 등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선택이 가능합니다. 보통의 PB는 특정 카테고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속성만을 제하는데 반해, 무신사 스탠다드의 구색은 NB를 압도하는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모 브랜드인 무신사(MUSINSA)는 1020세대, 특히 남성들에게 가장 강력한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다 무신사랑 해” 등의 캠페인을 통해 트렌디하면서도 ‘나를 알아주는’ 대세 채로 자리 잡았습니다. 플랫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매력도는 타 유통업체와 비교불가의 우위입니다. 이러한 무신사의 브랜드 력을 그대로 전이받을 수 있는 것은 PB로서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사실 품질과 브랜드는 PB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PB는 어느 정도의 품질과 유통사의 브랜드를 단순 ‘붙이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MD입장에서 반추해 보면, PB는 진열공간과 페이지 상단을 항시 차지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출공간을 손쉽게 확보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매출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가 상승의 요인인 품질 개선보다는 낮은 판매가 설정을 위한 요인에 집중하게 됩니다.
브랜딩관점에서도 론칭 초반에는 브랜드로서의 ‘존재 이유’, ‘스토리’를 강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가꾸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전략의 일관성, 지속성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PB팀에 브랜드 매니저가 부재한 경우도 많습니다.
유통업은 동일 면적(공간)에서 최대 효율(평효율)을 추구합니다 ‘안 나가는 제품은 빼고, 더 잘 나갈만한 제품을 끼워 넣는’ 무한반복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PB 또한 그러한 레고 블록의 하나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조업체에서 만든 브랜드는 긴 호흡으로 가꾸고, 키우고, 양육한다는 '팜 시스템(Farm system)' 관점이라면 유통업체의 브랜드는 성과가 안 나오면 퇴출하는 '용병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유통업과 제조업은 DNA가 다릅니다. 이러한 차이가 긴 호흡의 브랜딩 작업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무신사 스탠다드가 독립적인 브랜드로 나아가는 행보가 더욱 흥미롭습니다.
강남역한복판에서 무신사스탠다드를 바라보는 시선과 무신사라는 플랫폼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프라인 독립매장은 모 유통사가 보호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오롯이 브랜드 본연의 역량이 중요니다. 따라서 오프라인에서의 성공여부는 Private Brand가 아닌 'Brand'로서 어떻게 준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반적인 PB와 달리 무신사 스탠다드는 타 플랫폼처럼 정책적으로 PB를 상위에 배치하지 않았음에도, 오로지 실제 고객들 구매 결과를 바탕으로 '상위' 페이지를 당당히 차지하였습니다. PB임에도 진열, 노출의 특권 없이 준비했었기에 현재까지의 행보는 순조롭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무신사 테라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경험에 대해 파일럿 테스트하면서, 홍대 매장의 고객 피드백을 바탕으로 강남 매장에 개선점을 반영하였습니다. 지금부터는 많은 온라인 브랜드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왜 실패했는지의 반면교사를 통해 오프라인 확장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소위 ‘뜨는’ 많은 브랜드의 확장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이슈가 된다(입소문 단계)
-백화점 또는 주요 쇼핑몰에 입점 제의가 온다(오프라인 진출 단계)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로드샵으로 확대된다(오프라인 확대 단계)
-여러 유통사, 브랜드와의 콜라보 협업을 한다.(브랜드 경험의 확대 단계)
-대기업, 사모펀드 등의 자본투자 또는 상장을 준비한다.(자본 확대 단계)
…
각 단계별로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왜 나를 좋아했는지 “존재 이유”에 대해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확장 전략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단계를 지나가며, 소위 힙하고 핫한 브랜드력을 유지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초기 팬들에겐 더 이상 ‘나만의 브랜드’라 할 수 없고, 대중들에겐 한두 번 경험 이후엔 특별할 것 없는 매스(Mass) 브랜드일 뿐입니다. 마치 홍대 인디밴드가 대중매체를 통해 유명해지는 과정에서 전국적 팬덤을 가진 그룹이 되느냐, 그저 그런 밴드로 남느냐는 것과 유사한 느낌도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압박으로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브랜드는 흔해져 있고, 매장은 관리가 안되고, 차별화되는 경험은 과거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이 확대됨에 따라, 브랜드의 팬 입장이 아닌 재무담당자의 숫자 관점에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비즈니스는 마땅히 돈을 벌기 위함입니다. 다만 브랜드 관리는 적어도 5~10년 이상의 중장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육성해야 합니다. 당장의 과실을 극대화하기 위함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이어야 합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무신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입니다. 그럼에도 독립적인 브랜드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운영되어야 마땅합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1. 품질
유니클로(UNIQLO)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이유에는 일본 도레이(Toray)와의 협업이 큰 역할을 차지합니다. 혁신적인 신소재 원단은 유니클로를 품질력을 갖춘 SPA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한 핵심 요인입니다. 히트텍, 에어리즘, 후리스, 울트라라이트다운 등 많은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무신사 스탠다드도 소재에 진심인 편입니다. 국내 원단업체 효성(Hyosung)과의 협업을 통해 발열내의, 여름용 쿨 소재, 친환경 소재를 개발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울(wool) 원단 전문 기업인 이탈리아 MTR社의 원단을 사용한 코트와 글로벌 데님 소재업체인 터키 키파스(KIPAS), 찰릭 데님(Calik Denim)의 프리미엄 원단을 사용한 제품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품질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2. 카테고리 확장
키즈, 코스메틱을 비롯해 카테고리 확대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입니다. 영역은 넓어져도 브랜드의 기본 스타일 철학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만약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에 패턴셔츠나 캐릭터 제품이 등장한다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3. 오프라인 확대
지금까지 ‘갓성비’ 브랜드로 유지될 수 있던 이유는 온라인 브랜드였기 때문입니다. 입점 수수료를 내야 하는 백화점, 대형 쇼핑몰 진출에 신중해야 합니다. 매장을 확대하더라도 평효율이 아닌 고객 경험의 파이를 키우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매장 직원의 고객응대, CS경험은 브랜드 신뢰에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온라인 브랜드가 오프라인 진출 시 간과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4. 데쟈뷰(Dejavu) & 쟈메뷰(Jamaivu)
기시감(旣視感)과 미시감(未視感)으로 표현되는 이 2가지를 적절히 지켰을 때, 브랜드의 정체성과 신선도를 동시에 잡는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무탠다드’로 표현되는 기본에 충실한, 편안한 핏의 특징은 자칫 무난함과 식상함의 경계에 놓일 수 있습니다. 특히 무채색 솔리드 컬러로 대표되는 제품 라인을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할 것인가’는 고민할 지점입니다.
무신사 스탠다드에서 리딩하는 AI모델, 미디어 월, 라이브 피팅룸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접목은 브랜드 차별화 관점에서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무신사 스탠다드 하면 떠오르는 ‘기본에 충실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단입니다.
유통사의 PB가 독립브랜드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표준화가 어려운 패션 카테고리의 특성상 네이버, 쿠팡의 견제를 피해 시장에서 빠르게 안착했지만,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재고자산과 관리비용은 늘어나고, 이익률은 높이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브랜드 관리, 품질 2가지를 만족시킨다면 우리나라 대표 패션브랜드로서 자라(ZARA), 유니클로(UNIQLO)를 넘어서는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무신사 스탠다드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패션에 진심이며, 감각적이고 싶으면서도, 튀지 않고 싶은 배치되는 마음을 적절히 충족시키는 브랜드. 어떤 선택을 해도 기본(Standard)은 해주는 브랜드. 오프라인의 경험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온라인의 경험을 무신사가 이어받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O4O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합니다.
이러한 고객 경험을 통해, ‘Private’ Brand가 아닌 ‘Wannabe’ Brand로 자리 잡게 되고 오프라인에서도 ‘무신사 스탠다드’는 독립적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끝.
*이 글은 무신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