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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SU Feb 05. 2021


나는 아픈 사람이었다.

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


걷어 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쓱 걷어버릴 수 있는 깊이의 행복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런 마음이 들게 되었는지 아무리 물어봐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삶이 행복하고 즐거우신가요?’라고 물어온다면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물어온 사람에 따라 이 이야기는 다양한 포장 기술을 보여 준다. 포장 기술이 더 화려 해지는 날도 있다. 바로 그냥 사람이 아닌 엄마, 교사라는 명찰을 다는 순간 교과서에서 나오는 한 줄을 영혼 없이 이야기할 때도 있다. '항상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해야 한다" 막상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는 행복감이 깊지 않다는 것은 본인만 알 수 있다.      

   

유년기 기억이 많지 않은 나에게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억 몇 조각이 있다. 남아선호 사상이 깊게 물들어 있던 집안의 삼 남매 둘째로 태어나 집안의 맏이인 아빠 때문에 장손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근데 이놈의 타이틀은 나 혼자 달았던 것이라는 걸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다. 온 친척들이 세배하는 설날 아침 손자 손녀들이 쭉 서서 세배를 하고 나서 세뱃돈을 받았다. 그런데 난 분명 이 집안에서 오빠 다음으로 두 번째 서열임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늦게 태어난 사촌 남동생이 세뱃돈을 더 많이 받는 것이었다. 그건 단순히 세뱃돈의 문제가 아님을 어린 나이에도 느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초등학생인 내가 했던 말은 "이건 분명 차별이다. 내가 나이가 많은데 그렇게 세뱃돈을 준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앞으로 할머니 집에 가지 않겠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이 세상에서 종종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두 살 터울 오빠를 볼 때마다 무엇이든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엉엉 울며 오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 오빠가 알기나 해?" 그것은 존중받지 못한 한 아이의 외로운 외침이었다.


삶을 존중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용한 준비태세를 갖추게 했다. 건드리기만 하면 방아쇠를 당기려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호명만 기다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심함과 측은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차별받는다고 생각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고 방아쇠는 조준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허공에 대고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꼭 나의 심장이었다. 이런 감정이 항상 내면의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서는 그것을 끄집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엉뚱한 곳에서 이것이 터져버렸다. 시어머니는 가끔 남편의 양복을 사서 보내주실 때가 있었다. 비싼 양복을 보내주시면서 아이들 옷도 함께 보내주셨지만 물건이 담긴 박스를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거기에 내 것이라도 명할 수 있는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보내주면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너무나 명쾌한 답을 주셨다. 물론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런데 내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묵혀 둔 불편한 그 감정이 자꾸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를 하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집에서 어떤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건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고약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세월의 흐름은 기억도 흐리게 할 텐데 나에게 저 기억들은 너무나 선명하게 박혀있다. 그리고 이 고약한 기억은 가끔 출몰해 나를 괴롭히는 어이없는 짓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결국 난 그런 사람이지. 내가 무얼 할 수 있겠어? 난 아무것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매일 해주는 긍정적인 말과 다르게 난 이중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아픈 엄마 그리고 선생님이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오로지 혼자 꽁꽁 싸매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휴직계를 던진 것이다. 휴직을 하게 되면 지출을 줄여야 된다는 남편의 말에 대판 싸움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보다는 나 자신을 돌볼 생각으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학교, 유치원에 등교를 시킨 후 집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낙산사에 갔다. 어떤 날은 108배를 하고, 어떤 날은 법당에서 혼자 울고, 어떤 날은 바다가 보이는 절에서 하염없이 푸른 바다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책도 읽고, 그림책도 읽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아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그림책 한 권이 있었다. 아이 방 책장에 예전부터 꽂혀 있던 그 그림책이 그날 내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표지를 붙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는 특별하단다."


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는 나무 사람 펀치넬로 이야기다. 웸믹이라는 나무 사람들은 서로에게 멋지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웸믹에게는 별표를, 그렇지 않은 웸믹에게는 점표를 붙였다. 펀치넬로는 많은 웸믹들에 게 수많은 점표를 받게 되었고, 결국 펀치넬로 스스로도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아무래도... 난 좋은 나무 사람이 아닌가 봐." 
이런 생각은 펀치넬로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내려가게 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자신을 만든 엘리 아저씨를 찾아가게 된 그날 별표나 점표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무 사람에게만 붙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펀치넬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단다.

난 네가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존재한다는 것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 그림책은 그냥 나 자체를 특별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결국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고약한 기억을 뿌리치지 못하고 가슴 깊숙이 넣어뒀다 꺼내는 것도 나 자신이었고,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한없이 작아졌던 것도 내 마음이었다. 아직도 그것들이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감정이 요동치는 날은 빼꼼히 기웃거리는 그놈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그럴 때는 말없이 저 그림책을 넘겨본다. 마법의 책을 보듯이


지금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져 있을 때, 존중받지 못함에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조용히 저 그림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틀림없이 따뜻하게 당신을 위로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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