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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SU Feb 05. 2021

헤어짐, 그것은 아픈 것만은 아니야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유치원 입학을 축하합니다."


2년 전 3월 5일

유치원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색함과 궁금함이 가득한 분위기에서 정신없이 입학식이 끝났지만 입학식 내내 울고 있던 5살 여자아이가 자꾸 아른거렸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수영(가명)이었다. 시골학교 특성상 5살부터 7살까지 다양한 연령이 함께 생활하는 이곳에서 '저렇게 울면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들었다. 역시나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유치원 출입문 앞에서 들어오지 않겠다고 엄마 엉덩이 뒤에 숨어 있던 수영이. 엄마의 곤란함이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엉엉 우는 아이를 두고 돌아서는 엄마의 발걸음 또한 꽤나 무거워 보였다. 아이를 안고 교실로 들어왔지만 수영이는 울기만 할 뿐 요지부동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울음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우는 아이를 말없이 가만히 안아줬다입학식 날 만나고 두 번째 만난 낯선 선생님의 품이 수영이는 얼마나 불편했을까그렇지만 의지할 곳을 찾기 힘들어서인지 수영이는 내 품에 한참 동안 안겨있었다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도 진정이 되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이제 일어나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신호를 준다일어나 손을 잡고 교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느린 발걸음에 맞추어 아주 천천히 언니 오빠들이 놀고 있는 공간도 기웃거려보지만 아이는 여전히 내 엉덩이 뒤에서 얼굴을 반 이상 가린 채불편함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난 이 아이를 안고 긴장된 숨소리를 들으면서 8년 전 첫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1년 6개월 육아 휴직 후 복직을 위해 홀로 아이와 둘이서 양양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은 그때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떠났고, 난 홀로 아이를 키워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복직을 결심하고 오랜만에 첫 발령지로 돌아왔다. 23개월 정도 된 딸아이를 이모님께 맡기고 출근을 했다. 매일 아침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를 밀어내고 출근하는 길은 너무 힘겨웠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모님과 잘 지낼 줄 알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일 년 정도 지났을 때였던 거 같다. 남편은 파병에서 돌아왔지만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아이가 몸부림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안감힘을 썼지만 더 날카롭게 울며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내가 없는 낮 시간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이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갑자기 바뀐 환경, 오랫동안 아빠의 부재, 엄마와의 몸부림치는 헤어짐은 아이가 견디기 힘든 무게감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아픈 마음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쉼을 결정한 난 아이를 데리고 대구로 내려갔다. 대구에 있는 동생 집에서 머물며 심리치료를 받았고 그렇게 아픈 마음을 챙겨갔다. 아이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참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 힘듦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게 아주 천천히 정말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진하게 아픈 시간을 보낸 우리는 지금은 웃으며 "엄마 내가 그때 좀 아팠지?"라고 물어오는 딸아이의 물음에 미소를 지을 수 있지만 그때는 절로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을 하루에 몇 번씩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 거다. 

매일 아침 울고 오는 수영이의 몸부림을 편안하게 안아주려고 했던 것이. 참 많이 안아줬던 아이였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 아이는 연수나 출장이 있어 내가 출근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 종일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입학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던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방과후 선생님과 잠시 자리를 비었고 난 부모님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이 그림책은 오래전 아기였던 아이가 혹시라도 어떻게 될까 봐 겁이 나서 잠들었을 때도 곁을 쉽게 떠나지를 못했던 엄마의 모습과 엄마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목놓아 울던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종종 맞이해야 하는 헤어짐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다시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긴 시간이 흘러 아이는 훌쩍 성장하여 엄마 곁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어디서든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든 돌아올 아이를... 





언젠가

네가 더 멀리 떠나고

엄마는 집에 남아 있을 날이 오겠지?

그래서 아주 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날도 오겠지? 그래도 괜찮아.







"사랑하는 아이야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렴. 날다가 힘들어 쉬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오렴. 엄마가 꼭 안아줄게."


매일 울음으로 시작했던 아이. 수영이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읽어주고 싶었다. 그 엄마에게, 매일 울고 오던 수영이에게, 그리고 지금은 추억으로 남겨져 있는 시렸던 그 시절 나에게, 마음에 난 생채기를 울음으로밖에 말할 수 없었던 나의 딸에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수영이는 유치원에서 방긋 잘 웃는 아이가 되었다. 주말이 오면 유치원을 가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 즐거워하는 그 아이가 너무 반갑고 감사했다. 난 그다음 해 다른 곳으로 전입했지만 가끔 그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을 때는 엄마가 올려둔 카톡 프사의 사진을 몰래 들여다본다.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미소를 띤 그 아이를 나는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항상 웃으며 행복하렴헤어짐은 아픈 것만은 아니야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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