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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SU May 19. 2021

우리 집에는 부처가 산다.

휴일 아침 큰 아이가 일찍 일어난다. 덩달아 둘째 놈도 몸을 일으킨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는 첫째의 루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홀린 듯 방으로 가서 메시지를 확인하는 아이.. 

요즘 들어 내 눈을 피해 몰래 핸드폰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침부터 괜히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올라온다. 어김없이 변덕스러운 어미다. 아이한테 잔소리하기 전에 피하는 것이 상책.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그리고 홀로 산을 올랐다. 귀에는 산새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어폰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지만 몸은 자연에 맡기며 올라본다.  역시 잔소리 대신 산을 오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등산은 마음의 평온을 찾기에 좋은 코스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니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이 시간이면 절에 가실 시간인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건가 싶어 급하게 받았다. 

"신 서방 사무실 주소 좀 찍어서 보내."

절에 가서 남편을 위해 등을 하나 달아야겠다는 엄마다.

그만하라고 했다. 지금껏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어느 장모가 사위를 위해 그렇게 기도를 하냐고.. 그만해도 되니까 이제 하지 말라고 했다. 

"도대체 신 서방한테 전생에 빚을 얼마나 진 거야?"

괜히 속상해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남편이 2년 동안 진급 대상자가 되었을 때 엄마는 절에 가서 남편을 위한 기도에 정성을 쏟으셨다. 그것을 너무 잘 알기에 "시어머니는 날 위해 기도 한 번 해주시도 않아. 그러니 이제 진짜 그만해!"

사위에 대한 엄마의 정성을 보고 있으니 며느리에게 마음 한편 내두지 않는 시어른들에 대한 섭섭함이 그만 묻어 나와버렸다.


엄마의 기도는 몇십 년의 세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눈물 나게 힘들었던 시절, 어린 삼 남매를 두고 떠날 수 없었던 그 시절

마음 둘 곳이 필요했던 어린 엄마는 그렇게 오랜 시간 절이라는 곳에서 위로를 받으며 견딤이라는 삶을 걸어오셨을 거다.

없는 살림에 몇 천 원씩 아껴 그것을 불전함에 넣고,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골고루 초라도 하나 밝혀주려고 당신 안 먹고 안 입고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나이 들어 임용고시를 치겠다고 노량진에 짐을 싸 들고 올라갔던 그해도

엄마는 나를 위해 쉼 없이 기도를 하셨다.

백일을 남겨두고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절에 가서 2시간 넘게 기도를 하고 돌아오셨다는 걸 시험이 끝나고 나서 알았다. 딸의 앞날을 위해 부처님 전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신 거다.

그래서 난 지금도 내가 임용고시에 합격한 것은 엄마 덕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만큼 난 엄마의 기도를 믿는다.

그것은 칠십 평생을 살 수 있게 한 힘이었기에 그 힘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평생을 부처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엄마가 참 바보 같고 약해 보여서 왜 그러고 사냐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엄마가 그 세월을 부처 같은 마음으로 견디지 못했다면 우리 삼 남매는 아마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엄마의 고단함이 마음에 외롭게 박힌다.


우리 집에 살고 계신 부처여

모든 중생을 돌보시느라 본인 몸이 많이 힘드시니

이제는 당신 몸을 보살피며 사셨으면 좋겠소.

매번 받기만 했던 딸자식은

이제라도

당신을 위해 열심히 초를 밝히겠소.


부처님 오신 날

우리 집에 계신 부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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