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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SU Aug 11. 2021

<남편> 사용 계획서 전면 수정

독박에서 벗어나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던데 몸을 누인지 9년차가 되어서 그런가 집이 요란하게 꿈틀거린다. 이 집에 이사 와 아이들도 건강했고, 별스럽던 내 마음도 찬찬히 잡혔기에 그저 고마운 집이다. 이 세상, 기운을 가진 거라고 하면 생명이 있든 없든 나와의 궁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집도 그러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는 아이도 많이 아팠고, 안 좋은 일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지어 이어져서 참 힘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이사를 가는 것이 겁이 나서 맞는 집을 찾아 한곳에 오래 머물며 살아가는 중이다. 이것만 봐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유형인지 대충 사이즈가 나온다. 벗어나고 싶지만 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많이 힘든 사람이다.


올해 돈 달라고 입을 쩍쩍 벌려대는 집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나오지만 지금껏 편안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하자며 임시방편으로 메워가고 있다. 보일러 온수통이 터져 새로 갈아 넣었고, 지난주 아랫집 베란다에 물이 떨어진다고 해서 내려가보니 이틀 동안 애들이 베란다에서 물놀이를 했던 것이 문제였나 보다. 설비 사장님을 불러 보이니 역시나 베란다 타일이 문제란다. 조치를 취한 후 돌아서니 욕조와 싱크대 수전이 고장이다. 몇 군데 업체를 검색해서 견적을 받아보니 금액 차가 크다. 인터넷으로 직접 수전을 주문했고,  설치만 의뢰해 둔 상태다. 오늘은 또 변기가 문제다. 물이 끝까지 차오르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변기 뚜껑을 열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보면 알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검색을 하면 웬만한 건 다 나온다. 대충 상황은 파악이 되었으니 내일 설비 사장님이 오시면 한번 보여주면 될 것 같다. 연이어 어디서 돈을 내놓으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닥치는 대로 보자고 마음먹었다.


주말부부를 하는 우리 가정에서 나의 역할은 이렇게 화려하다. 각종 민원처리뿐만 아니라 쓰레기처리, 종종 이런 수리의 문제까지 내 몫이 되어버린다. 떠나 있는 남편은 처음에 한두 번 이야기를 듣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지 물어오지 않는다. 내가 해결하는 게 마음 편하다 싶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건가 싶다. 여기에 몸을 두고 있지 않은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뭐 나아질 것이 있겠나 싶어 어느 날부터 입을 닫고 혼자 일을 해결하고 있다. 해결을 하다 문제가 좀 생기면 좋겠구먼 나라는 여자 이런 일에는 머리가 팍팍 돌아간다. 아무래도 생활 머리 하나는 타고난 듯하다. 뭐든 알아서 해결해버리니 그는 손놓고 불구경하는 듯하다.


벌어진 타일 틈 사이에 벽 시멘트를 셀프로 바르면 된다는 설비 사장님의 오더를 받고 몸이 꿈틀거린다. 이미 검색은 끝났다. 필요한 용품도 구입 완료다. 직접 바르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신 서방이 할 수 있게 그냥 둬라.” 그러신다. 주말에 오면 남편에게도 할 일을 내어주라는 엄마의 말에는 양가의 입장을 있을 듯하다. 혼자 동동거리는 딸을 보며 안쓰러운 엄마의 마음과  남자가 설 수 있는 자리도 내어주어야 한다는 인생 선배의 마음이 동시에 내비쳐진 것 같다.


성격이 팔자를 만든다고 결국 내가 해야 마음이 편해서 다 해놓고 힘들다고, 너 땜에 이렇게 산다고 그것을 또 탓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영리하게 남편을 잘 사용해보려고 한다. 남편 길들이기에도 노하우가 있다는 엄마의 주례사 글이 생각난다. 


성공한 여자의 인생이란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보다 어떻게 '남'편을  '내'편으로 만들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느냐에 있다.


글에 완전히 공감해버렸다. 나 혼자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징징거릴 것이 아니라 나누자. 심성은 착한 사람이니 아이 다루듯 어르고 달래서 우리 집의 가족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임무를 부여해야겠다. 잘한다 잘한다 내 남편 잘한다 궁둥이 팍팍 두드리며 일 좀 시켜볼 생각이다. 결혼 13년 동안 혼자 동동거렸던 삶은 고이 접어 날려보내고, 남편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애써보려고 한다.

 <남편> 사용 계획서 전면 수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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