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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SU Jul 18. 2021

복숭아에 취하다

여름내 먹는

하얀 분홍빛에 빨간색을 적당히 버무린 듯한 빛깔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통통한 볼처럼 탐스러움에 이끌려 살짝 손끝을 내밀어 본다. 과일 사탕 하나가 혀끝과 처음 만났을 때 목젖으로 넘어간 그 맛을 상상해 본다. 주인장은 그중에서 못난 놈이라고 하나 집어 건넨다. 칼날이 들어간 자리에는 더욱 선명한 분홍빛을 내고 있다. 베어낸 한 조각을 입에 물어보니 코끝을 간지럽히던 그 내음과는 또 다른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감싼다.

오늘 아침 일찍 친한 언니, 동생과 양양 복숭아 마을을 다녀왔다. 복숭아 마을 근처에서 근무할 때는 복숭아가 냉장고에서 없어지기 전에 사서 채우기 바빴다. 복숭아꽃이 피고 익어가는 것을 출근길에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다. 언제 다 익어서 내 입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넓게 펼쳐진 복숭아밭은 꼭 내 밭인 것처럼 설레했던 적도 있다. 어느 날 농장 주인들이 색색의 바구니에 복숭아를 한가득 담아 평상 위에 올려두면 그때부터 올여름 복숭아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내가 먹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보내드리기도 하며, 7~8월은 복숭아와 여름을 났다.

 

첫째가 배 속에 있었을 때 매일 퇴근길 사서 들고 온 것도 복숭아였다. 까만 봉지에 한가득 담아 들고 와서는 털썩 주저앉아 한 봉지를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부풀어 있던 배는 쉴 새 없이 들어가는 복숭아로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다. 복숭아가 먹고 싶었던 겨울 남편이 사 온 복숭아 통조림을 먹으면서 아기를 달랬다. 여름이 되면 원 없이 먹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여름내 복숭아를 달고 살았던 난 20킬로 이상 불어나 그만 먹어야 할 지경이었지만 복숭아가 사라지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 날까지 열심히 먹었다.

지금도 여름이 되면 첫 아이를 배에 품고 복숭아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무거웠던 몸, 달라진 얼굴, 두려운 여러 마음이 복숭아 한입을 깨무는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그저 먹는 것에 집중했던

시간이다. 맛에 홀려서.

 

오늘 복숭아를 산 농장 할머니의 세련된 하얀 머리카락 색과 뽀얀 얼굴을 보니 몇 년 전 뵐 때보다 더 고와지셨다. “복숭아 파는 분들은 참 곱더라. 복숭아를 자주 드셔서 그런가 봐.”하는 동생의 말에 일리가 있는 듯하다. 출발하면서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우리 셋은 “너무 예쁘세요.”라고 외쳤다. 할머니의 얼굴에 스치는 미소는 복숭앗빛처럼 너무 예뻤다. 매일 몇 개씩 먹으면서 엄마가 복숭아 많이 먹었으니까 예쁜 얼굴로 만나자 했던 나의 혼잣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살이 오른 첫째의 볼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엄마가 복숭아 많이 먹어서 이렇게 예쁜 거야.”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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