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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Aug 28. 2022

S1. 코로나 일지

#15. 타임 투 체인지

#. 2021년 10월

 

단계적 일상 회복이 발표되었다. 그동안 진행하던 21시 이후 영업금지, 4인 이상 회동 금지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계적으로 해지될 것이란 게 발표 내용의 골자였다. 코로나 상륙 후 약 1년이 가까워진 때였다. 드디어 해지되어 숨통 좀 풀리나 생각했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이제 좀 코로나에 적응되었다고 생각했던 나를 매우 꾸짖었다. 적응된 게 아니라 사회 현상과 자연 섭리에 맞춰 나의 생활을 재단했던 것일 뿐이었다. 이미 오리고 잘라 붙여 이전 모습을 찾기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의료계와 경제계의 이해상충으로 인한 마찰과 불협화음이 수면 위로 드러난 후였다.


 '단계적 일상 회복에 대한 중대 발언'


 출근하면서 잠깐 본 인터넷 기사로도 엄청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구를 대상으로 한 분노였냐고 묻는다면 이 분노는 사회를, 경제를, 내 편이 아닌 모두 다가 그 대상이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지역 경제 죽는다, 자영업자 죽는다 연일 메스컴이 때리는데 이걸 이겨낸 정부도 정부지만 슬슬 지쳐 효과가 떨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큰 문제였다. 초반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던 것이 허점이었다면, 후반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 제도의 허점을 잘 이용하는 얌체같은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허점의 원인이었다. 회식은 없어지지 않고 4인 회식으로 변했고, 4인 이상 21시 이후 음식점이 금지되니 방을 잡고 노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전에도 드문드문 느꼈지만 우리나라가 참 음주가무에 온 힘을 다해 정성을 들인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내 인권을 중심으로 보면, 코로나에 대한 의료체계가 자리잡히자 마자 사회적 격리가 풀리는 꼴이니 환자수가 늘어날 게 눈감아도 뻔한 상황에 짜증이 났다. 정부는 사회적 격리 해제를 통해 경제 순환을 시키고, 지금까지의 노하우로 대감염에 대한 대책을 세우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초기 코로나보다 체감 치명률이 적은 것은 사실이었고(변이종 자체의 치명률이 낮고, 그때보다 의료 체계가 견고했다), 젊은 감염자들은 독감처럼 살짝 앓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즉, 기저질 환자나 노인 연령대의 발병률을 막으면 자연면역이 그럭저럭 생길 것 이라는 합리적 결과 도출이었다. 어차피 피래미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진료보는 것 밖에 없었다.

 

 2021년 11월, 새로운 변이종인 오미크론이 국내에 상륙하며 우세종이 되었다. 이전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환자수가 증가하였지만 다행히 치명률이 높지 않았다. 일반 환자는 3일 정도 독감처럼 열나고 으슬으슬 몸살 감기 앓다가 끝났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자연 면역 획득에 '호재'인 바이러스 변이종이지만, 응급의료센터운영에는 '악재'였다. 변이종이 무엇이건 간에 고위험군 환자가 항상 있는 응급실은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청소와 응급실 폐쇄를 반복했다. 응급실 과밀화를 줄이기 위해 실시했던 구역 폐쇄로도 과밀화가 해결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병원에서는 하루에 진행되는 정규 검사가 6번 정도였는데, 매 검사마다 응급실에서만 3-4명의 확진자가 발생해서 전체 폐쇄가 하루걸러 하루씩 생겼다. 응급실이 닫혀있으니 응급의료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응급실 폐쇄에서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환자들이 병원을 오는걸 두려워 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전이라면 ‘병원에서 걸릴 수 있으니까’하는 마음에 확진자들이 집 안에 콕 박혀 진행되는 2주간의 자가격리를 잘 따랐는데, 너무 많은 환자들이 코로나에 걸리고 몸살감기로 고통을 받다보니 '이걸 왜 참아, 아프면 응급실 가서 해열주사 맞고 가야지' 하는 경우가 생겼다. 너무 많은 확진자가 응급실을 방문한 까닭에 응급 의료진들도 해당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방역 택시 부르고, 이러시면 안된다 타이르고, 교육하는 난리라는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 확진자가 경환이라면 음압 시설에서 진료 후 퇴원시키고 빠르게 청소하고 다시 응급실을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이런 환자들은 격리에 대해 무지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적 격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교육의 이유도 없었다.

 일반 환자가 늘어난 만큼은 아니지만 중환 역시 꾸준히 늘었다. 대형 병원은 일반 확진자보다 중환 코로나 환자를 케어하는 게 우선이다. 일반 병원에서는 중환자에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땅치 않아 이런 환자들은 매니지(manage)가 되는 대형 병원 혹은 중환 코로나 전문 병원에 입원한다. 이미 4차 중환자 병상 확대 명령, 중환자 병상 수를 총 병상의 3% 대로 확대하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왔고, 이런 지시 외에도 환자가 너무 많아 원내 자체적으로 꾸역꾸역 병상을 늘리고 있었다.

  '코로나 중환'이 아니라, '중환인데 코로나 확진인 환자'의 케어가 가장 큰 문제였다. 호흡기 중환일 경우 코로나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하며 의료 분담을 줄여줬지만 '다른 과 중환'인데 코로나에 걸린 환자의 경우는 시술도 어렵고 입원도 어렵고 응급실에 소위 깔리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의료진 확진자도 증가했는데 메이져 과인 외내과를 비롯해 거의 모든 과의 전공의들이 돌아가며 연이어 확진되었다. 이는 곧바로 대체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예전이라면 한 두명의 전공의가 확진되어 쉬러 들어가면 펠로우, 교수들이 당직서면서 땜빵했는데 이조차도 안될만큼 감염자 수가 늘어나자 해당 분야의 진료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이면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텐데 2주씩이나 진료공백이 생기니 응급실이 열려있어도 열린게 아니었다.

 

“아니 선생님, 왜 전원보내요? 우리병원 다니시던데?”

“...선생님 저희 다 코로나 걸렸습니다.”

“...아, 그렇구나.."

"..."

"네, 저희가 전원 알아보겠습니다.”


 어느 날은 해당과 환자를 모조리 다 전원 보내길래, 따질 요량으로 응급실 당직 전공의를 찾아가 물었다. 원래도 피골이 상접하고 마른 외형인데다 꽤 예민한 성격으로 우리과와 몇 번 언쟁을 벌인적 있는 친구였다. 시비걸면 맞받아칠 게 뻔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찾아갔더니 차분한 말투로 저희 다 코로나 걸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도 인력 여유 없이 돌아가던 과였고, 한 명씩 병가나 휴가로 들락날락할 때도 피똥싸며 허덕이던 과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전공의 한 명, 인턴 한 명 제외 모든 전공의와 인턴이 확진자 및 밀접 접촉 격리당해 말 그대로 진료를 볼 사람이 없단다. 교수님과 펠로우 모두 격리라서 땜빵할 인력이 진짜로 없다고 했다. 이게 대학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나 싶었는데 일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퇴근이 뭐야, 이 친구는 당연히 수면 시간 없이 진료를 보고 있을 게 뻔했다. 차분한게 아니라 힘이 빠져서 그렇게 보였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두 명이서(심지어 한 명은 인턴이었다) 해당 과의 모든 환자를 2주째 책임져야 했으니 중환이나 시술이 필요한 환자일 경우 우리 병원에 다니던 환자던 아니던 수용이 불가했고, 모조리 전원을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 그 전공의가 일은 잘하는 편이라 입원 퇴원 전원에 대한 판단을 기막히게 빠르게 결정하여 응급실 내 진료 지연이 많지는 않았지만, 기운하나 없이 도망치지 못해 기계적으로 일하는 그 뒷모습이 한동안 너무 안쓰러웠다.


 이러다 보니 의료진 사이에서 몸이 아파도 검사를 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젊은 친구들의 경우 2-3일 앓으면 끝났고, 의료진이라면 마스크는 계속 쓰고있었으므로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지 않긴 했다. 긴가민가한 온도로 하루정도 미열을 느낀 경우, 미리 타이레놀을 먹은 뒤 열이 떨어지면 근무하러 출근했다. 혹시라도 확진되어 과 전체가 셧다운 되면 차라리 다행인데, 부분 셧다운이면 남은 인력이 죽어나니까 최대한 감염을 확인하길 꺼려한 결과였다. 환자를 많이보는 과 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일하는게 검사 받기 쉬운 환경인 것도 아니었다. 근무 중에 검사를 받을 수 없기도 했고(받으면 결과 나오기 전까지 격리인데 그 시간동안 일이 올스탑 되었으니 그 또한 동료에게 못할 짓이다), 근무 끝나고 받으려면 응급실을 거쳐야 했는데, 그러면 교수님들께 연락이 가 마음이 매우 불편했기에 검사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보호 장비를 그렇게 입으라고 교육받았으며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백신 접종을 완료했기 때문에 설마 내가 걸렸겠어? 하는 마음도 꽤 큰 이유를 차지했다. 물론 감염관리실에서는 열 37.5 도 이상 혹은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 반드시 검사하고 수차례 안내문을 공고했지만, 이걸 지킬만한 의료진은 짬이 좀 찬 고학번 전공의거나 전문의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의심되거나(고열과 호흡기 증상 3일 이상이면 의심해야 한다), 증상이 눈에 보이게 심해서 교수님들이 ‘너 검사 했니?’ 하고 검사를 챙겨주면 우리도 무서우니까 검사를 진행했고 음성이 나와야 한시름 놓으며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의료진은 검사 의무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알면서도 눈감고 아웅이었고, 병원은 그렇게 굴러갔다.


 2021년 12월, 의료진 대상 3차 백신이 배포되었다. 2차까지는 한번도 안맞은 사람은 있어도 아예 안맞은 사람은 없었다. 효과보다 부작용이 부각되는 메스컴 및 기사 때문에 3차에 백신을 기피하는 의료진이 생겼다. 그리고 언제까지 백신을 맞아야하는 지 가늠할 수 없었다. 4차? 5차? 의문이 생기던 찰나 국가적으로 방역패스를 선언하였고, 이 것은 백신을 맞기를 꺼려하던 많은 이들이 백신 접종을 선택한 계기가 되었다. 1차 때 백신 소용없다고 개거품 물던 사람들도 방역패스된다고 하니 맞자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야 어차피 이판사판이고 하루에도 몇 명씩 확진자랑 밀접 접촉하는데, 보호구 외 자기방어를 최대한 진행하며 조금이라도 죄여왔던 숨통을 푸르고 싶은 심보였다.


 결국 너무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여 12월,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개시되었고 오미크론 감염자에 대한 역학 조사는 중단되었다. 여기서 생각지 못한 의료 체계에 고비가 발생했다. 수도권 중대형 병원 중 코로나 진료를 하는 의사 중 적지 않은 수가 퇴사를 결정했다. 보통 새 학기가 시작하는 2월, 인턴 및 전공의 수련이 끝나며 인사이동이 일어나는 때이다. 이때 병원 내 뿐만이 아니라 병원 간 인력 이동이 이뤄지는데, 이때를 맞추기 위해 12월 경 퇴사를 결정하거나 다른 병원 의사 포섭을 위한 물밑 작업이 시작된다. 코로나 발병 이후 강도 높은 진료가 1년 이상 지속되자, 수도권 대형 병원 의사 인력이 지역 혹은 낮은 단계의 병원으로 인사이동을 택했다. 명예를 깎아먹을 지언정, 생명을 깎아먹는 일을 막기 위해 예견된 일이었다. 빠져나간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병원 측은 이전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대응책을 마련했고, 막 졸업하는 전공의들에게 파격 제안을 하며 펠로우를 권유하거나 학회 및 협회의 구인란을 통해 구인글을 꾸준히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직하는 의사보다 더 많은 수의 의사들이 대형 병원을 포기했다. 코로나 진료가 힘들기도 했지만 쌓이는 짜증과 화에 스스로가 지치기 시작했으며, 이 환경이 싫으면 병원 탈출이라는 선택이 제일 빨랐다.


P.S

 매일 발표되는 중앙대책본부의 지침에 얼마나 많은 임상의의 의견이 들어갔는 지 궁금하다. 물론 감염 및 예방 전문의료진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임상적으로 보았을 때 과연 그들이 내 편인가, 라는 의문은 지울 수 없었다. 어차피 나와 같은 초전방 임상의들이 백날 의견을 내봐야(사실 바빠서 의견을 내거나 뭘 생각할 시간도 없다) 의료계 수뇌부가 우리를 대표하여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의사협회는 딱히 신임받는 기구가 아니다).

 이번 지침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의료 공백에 대한 대책이 미미했던 점이었다. 사회적 격리 해제가 일어날 경우 늘어나는 환자 혹은 격리대상자에 대해서 일시적인 수단 도저히 커버가 될 수 없는 상태였다. 코로나 거점 혹은 중점 병원에서 일당 거금을 준다고 하면서 의료진을 모집함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곳곳에 생겼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코로나 중환을 볼 수 있는 과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잉여 의료 인력이 있다고 해도 환자를 볼 수 있는 의료진은 결코 비약적으로 늘 수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의료 백업이나 지원 강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내부적으로도 일단 웬만한 대형 병원과 코로나 관련 병원의 의료진은 모두 풀파워 아니 오버파워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 후배는 펠로우인데도 퐁당퐁당 당직이 너무 당연한 스케줄이어서, 밥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진심 올해는 힘들 것 같다고까지 했다. 어디서 어떤 인력을 빼올 수 없다면, 인력의 효율을 높일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이 필요하거나 간호 인력 및 다른 분야의 인력을 탄력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의료 사고 및 의료 주체 소재에 대해 분쟁이 당연히 발발할 것이지만 기계가 의료를 대신하느냐, 사람이 의료를 대신하느냐는 문제로 어느 하나를 고를 필요 없이 적절한 분야에서 보조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변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의료진은 비대면 진료 등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코로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비대면을 겪고나면서 상당 수 수용에 대해 호전적으로 변화했다. 의료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진료하는 것도 맞지만, 발전할 수 있고 발전해야하는 분야는 과감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사진 출처 : Photo by Jair Lázaro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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