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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Aug 31. 2022

S1. 코로나일지

#17. 격리야 아니야

 #. 2022년 02월


 8세에서 60세 미만의 확진자에 대해 추적검사 및 격리 진료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더불어 경증의 경우, 생활 보호소 입소가 아니라 자택에서 자가 격리를 진행하도록 권고하였다. 확진자가 너무 많다보니 검사 이후 보건소 연락이 바로바로 이뤄지지 못했다. 잠잠해지는 가 싶었더니 무섭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결국 추적검사는 없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확진자 행렬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다년간 마음 수련을 해온 경험으로 빠르게 화를 가라 앉히기로 했다. 이 측이 여러모로 에너지 보존에 최적화된 방향이었으며, 2월 말 퇴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나에게는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진정되었다. 그렇지만 60세 미만의 확진자에 대해서 격리 진료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발표는 응급실과 내마음을 다시 한번 크게 뒤집어 놓았다.

 지금까지 응급의료센터는 진료 전 문진 시 증상에 따라 격리자와 비격리자, 크게 2개의 그룹으로 각각의 공간에서 진료를 했다. 하지만 이를 나이로 다시 한번 나누게 되면 총 4개의 진료 그룹이 생기는 꼴이 된다. 격리 및 비격리자 2개의 그룹의 진료도 물자 및 인력의 여유가 없어 허덕이는 마당에 4개의 진료 그룹으로 나눠 진료를 해야한다면 더욱 허덕이게 될 것이다. 밀어붙여 한다고 해도 애초에 격리, 비격리가 안착되는데 2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단시간 내 이뤄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당했다.

 

‘60세 미만은 격리하지 않고, 60세 이상만 격리하면 안되나요? 즉 60세 미만 그룹 A, 60세 이상 격리군 B, 60세 이상 비격리군 C가 있다고 하면 A와 C를 같은 공간에 두어도 된다는게 정부의 방침인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결국 격리/비격리로 2개의 진료군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예를 한번 들어보자. 50세 남자가 기침이 있어 응급실에 오면, 60세 미만이기 때문에 비격리 구역으로 분류가 된다. 그런데 옆자리에 증상이 없어 비격리 구역으로 배정된 허리가 다쳐 온 69세 할머니가 앉았다고 하자. 이때 50세 남자가 알고보니 확진자였다고 가정하면 69세 할머니는 ‘밀접 접촉자’가 되며, 지금까지의 임상 경험에 미뤄보았을 때 코로나 감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걸 방지하려면 결국 각각의 진료구역이 별개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총 4개의 구역이 필요한 셈이다. 탁상 행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우리 응급실은 수많은 회의를 거쳤고(사실 나 정도급의 의사가 참여하는 회의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꽤 여러날동안 회의가 진행되었다고 했다) 결국 기존과 같이 나이가 아니라 증상에 따라 격리, 비격리 환자군으로 나눠 진료하기로 했다. 비격리로 구분될 수 있었던 환자들이 격리 구역으으로 분류되어 의료지연이 되자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원 응급실의 격리 구역 존재의 목적은 고위험자의 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정도 불만은 감수하기로 했다 (사실 응급실에서 일하면 욕 많이 먹어서, 마음이 그렇게 상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정부 지침상 의료진은 3일 격리를 권고받았다.


“아니 뭐 우리는 피가 달라? 뭐 의료진이면 걸리면 빨리 낫는데?”


이건 첫 지시 사항보다 더 의료진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왜 의료진은 3일 격리인 것일까? 임상적으로 전염력이 강한 초기 3일만 격리해도 된다면 일반인도 3일만 해도 되는 거 아닐까? 예민한 지침이기에 이 역시 회의를 거듭했지만, 의료진 감염자의 조기 격리 해제는 의료 공백을 최소화가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의료진 감염 시 발생할 득실을 따졌을 때, 3일 격리는 의료 공백 최소화라기 보다는 조삼모사 같은 것이라서 본원은 기존과 같이 2주간 격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2주를 격리하게 되면 공가가 3일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11일을 연차 휴가로 메꿔야 했는데, 듀티(duty)가 있는 의료 인력의 연차 사용은 예민한 문제라 이에 대해 다른 직군의 불만이 많았다고 들었다. 우리? 전공의와 전문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돈 받고 일하는 것보다 돈 안받고 돈 내고서라도 쉬는 게 이득이었기에 (그리고 어차피 연차 맘대로 쓰지도 못한다) 합법적 연차 휴가가 꽤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임상 의료진 사이의 확진 사례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더니, 이번에는 진단검사의학과와 같은 서비스 파트에서 의료진 확진자가 발생했다. 원래 거의 없던 당직 근무도 하면서 2년 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진단 검사 직원들이 확진되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면서 또 한번 진료에 커다란 브레이크가 걸렸다.


“OO 환자 입원예정으로 응급실 대기중입니다. 코로나 검사가 나오지 않아 입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6시간 내외로 나왔어야 할 코로나 검사 결과가 12시간 이상 걸리자 TFT 카톡방에 푸쉬(push)[1]가 러시(rush)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직원 중 확진자가 발생, 격리중으로 검사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정된 검사들은 기존 시간보다 한 타임 늦게 나올 것 같습니다. OO환자는 빠른 시간 내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검사 결과를 독촉하는 카톡에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님의 천사같은 마음씨만 반짝 거렸다(역시 점잖은 과). 진단검사의학과 외의 서비스 파트에도 확진자가 나왔고 이미 입원한 환자에 대한 서비스가 지연되며 치료도 함께 지연되었다. 결국 이 기간동안 최대한 입원을 미루거나 입원 환자 중 퇴원했다 재입원 하는 경우도 생겼다. 입원을 해야하는 환자라도 조금이라도 CT 값이 높으면 격리하지 않기 위해 TFT 카카오톡 창에 문의가 끈임없이 이어졌다(당시 카톡에 들어와있는 사람만 200명이 넘었다).


 소아에 대한 입원 수요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확진자 수가 많지는 않으나 코로나 중환자 비율이 늘었다. 문제는 소아를 보는 의료진이 부족해서 입원이 성인보다 까다로운 점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성인에 가까운 청소년이나 소아가 격리 병실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이는 '골절' 등이 주 병명인데 알고보니 확진자여서 내과적으로 손이 많이 안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성인과 달리 소아 코로나 환자를 전담하여 볼 의사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이미 소아호흡기분과는 소아중환자실의 환자를 커버하느라 바빴고 끌어다 쓸 수 있는 다른 소아청소년과 인력이 없었다. 결국 우리 병원을 다니던 환자도 소아 중환자들은 자체 수용 능력 부족으로 타병원으로 전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맘때쯤 나는 이직을 준비하느라 도시 간 이동이 잦았다. 하루는 면접을 보고 공항에서 대기중이었는데 화면에서 여느 때와 같이 오미크론 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뉴스입니다. 오미크론 확진자의 평균 입원일이 12일에서 4일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혀를 쯧, 하고 찼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해석의 오류를 일으킬만한 내용이 아무렇지 않게 전파를 타고 있었다. 입원일이 짧아진 것은 당연하다. 여유 병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초반이라면 격리기간 2주동안 꼬박 입원했을 환자들이 이제는 증상만 호전되면 먹는 약을 처방받아 자택 격리했다. 그렇게 퇴원시켜도 그보다 많은 환자가 입원 대기중이었기에 회전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입원일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코로나 중환자실도 1달 이상이 되면, 일반 중환자실로 옮기라는 지침이 내려왔으니 표면적인 중환자 격리 일수도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현실과 뉴스가 똑같은 사항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동상이몽을 꾸는 중이었다.

 이게 또 문제인게, 감염 후 30일 이상이면 감염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위와 같은 권고사항이 내려왔다고 하나, 취약자들은 폐렴으로 몇 개월이나 입원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결국 1달이라는 기간만으로 격리해제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병원마다 중환자실 격리해제 기준이 천차만별이었고 (대부분 PCR을 통한 CT값을 다시 확인하여 결정했다), 전원할 때 병원별 세부 기준을 맞추기 위해 갖가지 검사를 진행하다보면 힘든건 환자들이었다. 중환자실은 응급의학과 관할 구역이 아니어서 그냥 지나쳤지만, 들어보니 중환자실에서도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2월부터 일반 소아 환자가 말도 안되게 늘었다. 남다른 속도로 증가하는게 느껴졌다. 소아는 의사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에 초진만으로 입퇴원 여부를 확신하긴 어렵다. 단순 고열이고 애가 울고 있거나 정신이 온전하다 싶으면 일단 해열 주사를 준 뒤 경과관찰하지만, 영아이거나 기저질환자의 경우는 그럴 수 없다. 따라서 소아의 경우는 진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성인에 비해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소아 응급실은 항상 만원이었다. 이것은 119의 소아 환자 수용이 매우 어려움을 의미했고, 결국 사고로까지 이어졌다. 코로나 확진 소아 환자가 수용 불가 때문에 119에서 병원으로 이송까지 늦어졌고 사망했던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응급실에서 진료 불가에 대한 강력한 제제가 내려왔다. 최대한 환자 수용에 협조하라는 내용이었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대부분 협조적이었지만 진료 불가 가능 이유 중 '의료진 부족'이 제외되어 있어 또 한 번 말이 나왔다. 의료진이 부족해도 일단 받으라는 것은 치료 여력이 없다는 병원의 의사표현을 묵살하겠다는 의미였고, '병원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하겠지'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대부분 응급실에서 응급 치료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는 없으나 후속치료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시 책임소재 때문이라도 굉장히 예민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결국 정부의 권고에 따라 진료 지침을 수정했고, 이는 격리 대상자의 감소를 뜻하며 결국 응급실 격리 기준을 하향 조절을 의미했다. 이로 수용 가능한 환자의 수는 늘어났지만 원내 감염 취약성도 함께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P.S

이 당시 응급실 근무자로써 병원 안밖의 입장차이가 극명하게 달랐다는 것을 느꼈다. 병원 협회 / 의사 협회 / 시민단체 / 정치권 / 중앙대책본부 다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빠르게 변화하는 코로나에 대응하려 했기 때문에 노력 대비 결과가 충분히 효율적이지 않았다. 물론 다른 나라나 다른 질병 사례와 비교해서는 안되지만 적어도 각 계층 및 단체 별 '의사소통'이 원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코로나에 대해 전체적인 임상 진료의 피드백(feedback)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잘 이뤄졌지만, 응급의료센터의 임상 진료 피드백은 조금 더 빠르고 실시간으로 이뤄졌거나 자율성을 부여했더라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코로나 초기 전파를 막고, 코로나 후기의 대유행에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응급의학과의 단점이자 장점 중 하나가 '의료의 유연성' 인데,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권고사항일 뿐, 당시 응급의료센터의 상황이나 환자의 상태, 의료진의 상태 등에 따라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과이다. 게다가 24시간 근무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 있어서 실시간 대응이 가능한 '임기응변'역시 수련하여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응급실에서는 '가이드 라인을 지켜라' 보다는 '가이드 라인을 참고하라' 는 식으로 자율성을 주고, 응급의학협회의 주도 하 초반 대응 및 응급의료팀을 꾸려 중대본과 함께 활약했더라면 응급의료센터의 과밀화로 인한 의료 사고나 의료 지연을 많이 해소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반적으로 코로나가 국가 전염병으로 지정되며 중대본의라는 국가기관 주도 하에 대응 방안이 이뤄졌기 때문에 강력한 공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충분히 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시간 대응을 하기엔 무리였던 것이 이 이유이지 않을까.


주석:

[1] 병원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지만 본원은 의료 프로세스에 있어 지연이 있을 때 상대 파트에 연락하는 것을 푸쉬(push) 라고 한다. 급할 경우, 해당 파트에 직접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대부분 시술 및 수술 등의 경우이며 인턴이나 전공의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유선연락이나 EMR(전자의료시스템) 상 푸시기능을 사용한다.


[ 사진 출처 :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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