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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Sep 06. 2022

S1. 코로나 일지

#18. 로칼

#. 2022년 03월 01일

 이직한 뒤 첫 출근이었다. 나는 3월을 기점으로 대학 병원을 사직하고 바로 로컬(local, 보통 대학 병원 이외의 병원을 지칭한다)에서 일을 시작했다. 나의 사직이 의료공백으로 이어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새로운 펠로우와 임상조교수가 둘이나 새로 투입되어 진료 공백은 없었다. 그래도 미운 정보다는 고운 정이 컸던 응급의료센터가 차질 없이 운영된다니 다행이었다. 추억을 미화하여 고이 간직하고 출근한 새 병원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쏟아지는 환자로부터 응급실을 사수하는데 힘을 쏟다가 상대적으로 중환이 적는 응급실로 이직을 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편했다. 환자 수도 차이나지만, 로컬은 대학병원보다 환자군의 중증도가 떨어진다. 이머전씨(emergency)보다는 어전 씨(urgency) 케어가 필요한 환자가 주 진료 대상이기 때문이다 [1]. 나는 최전선의 전장에서 도망쳐 나온 패잔병이지만, 일단 큐오엘(QOL, quiality of life)이 좋아진 게 몸소 느껴져 매우 기뻤다.


 당연히 대학병원이 아니어서 어려운 점도 있었다. 어전씨 케어가 목표인 병원에서 이머젼씨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큰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전원이 잘 안 됐다. 3차 병원에서 전원을 받는 입장에서 일하다가 2차 병원의 전원을 보내는 입장으로 바뀌니 확실히 전원이 어려웠다. ‘우리 병원 근처에 대병(대학병원) 많아서 전원 보내는 거 쉽다’고 인계받았던 것이 무색하게 10곳 남짓의 대학급 병원에서 모두 전원 수용 불가되고 나니 기운이 쫘악 빠지며 초조해졌다. 이 환자의 경우는 시간이 생명인데 병원 어레인지가 안되면 치료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러면 아웃컴(ouctome)에 차이가 생긴다. 이래서 연락 없이 대학 병원으로 쏘는 로칼 병원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병원에서 전원 문의를 받을 때 툴툴댔던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눈앞의 환자 전원을 위해 다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결국 무사히 전원을 가졌지만 퇴근 시간이 한잠 지난 후였다.


 전원이 안 되는 이유는 다양했다. 병실 부족, 감염 격리실 부족, 의료 인력 부족 등등. 그중 ‘응급실 내 감염 병상 부족’ 및 ‘격리 중환자 병상 부족’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코로나 병상은 정부에서 관리함과 동시에 본원의 경우 중증 코로나 환자의 케어가 되지 않아, 병원 내 격리 병상이 비어 있어도 응급실에서 함부로 원내 입원을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중환의 경우 코로나 전담 병원 혹은 큰 병원으로의 이송이 필요했다. 문제는 코로나 음성이 PCR 검사 결과가 아니거나 일정 시간이 지난 경우, 코로나 음성 결과가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럴 경우 보통 이송 가는 병원의 응급실에서 다시 PCR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 기간 동안 응급실 내의 격리 병상을 사용해야 했다. 대학병원이야 코로나 PCR 검사가 자체로 이뤄지고 보통 4-5시간 내 결과가 나오지만, 로컬의 경우 외부 검사기관에 맞기기 때문에 검사 결과 확인에 하루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전원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는 점에서 의료 서비스의 틈이 보였다.


 우리 병원도 PCR 결과 확인에 하루가 걸렸다. 때문에 타 병원 이송 시 해당 병원의 응급실 내 격리실을 사용해야 했고, 우리와 같은 병원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이 시국에 응급실 감염 격리실이 비는 경우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있었다. 게다가 환자가 열이 나거나 호흡기 증상이 눈곱 손톱만큼이라도 있으면 빠른 전원은 거의 불가했다. 전원이 막히다 보니 이런 생이를 아는 환자들은 처음부터 대학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2차 병원에서 입원도 안되고 전원도 안되고 치료도 안되고, 차라리 기다리더라도 대학 병원 앞에서 텐트 치고 기다리자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다시 대학병원은 다시 ‘만석’이 되어 전원이 불가하고, 이런 게 무한 반복이었다. 임상과 정책이 상이한 루트를 타는 게 로컬 병원에서 다시 한번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소아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수도권에서는 어느 정도 병실이 확보되어있었는데, 수도권을 벗어나니 소아 격리 병실, 소아 중환자 격리 병실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고열로 경기가 발생한 소아가 응급실에 왔다. 확진자였다. 소아의 열성 경련은 열의 원인을 치료하여 열 내리는 게 치료다. 다만 오래 지속되는 경련, 짧은 시간 내에 반복하는 경련, 한쪽만 일어나는 경련 등 일반 열성경련의 모습을 따르지 않을 경우엔 입원 치료 혹은 집중치료가 필요하다. 이 소아가 응급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경련에서 깨 있던 상황이었다. 보호자가 묘사하는 경련 당시의 모습은 일반적인 열 경기의 모습이었으며, 코로나로 인한 열 경기가 강력히 의심되어 퇴원할 계획이었는데 아뿔싸, 진찰 도중에 다시 경기가 일어났다. 이렇게 여러 번 경기가 반복될 경우 퇴원 후에도 경기가 일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입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 일하는 병원의 소아청소년과는 코로나 확진자를 볼 의료진 여유가 없었다. 더욱이 경기가 지속된다면 여러 추가 검사가 필요하지만 본원은 추가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방팔방으로 소아 격리실 여유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내가 있던 지역에는 여유 분의 소아 격리병상이 단 하나도 없었다(시도를 포함한 범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등 뒤로 땀이 주욱 흐르기 시작했다. 보건소에 연락하여 소아 코로나 입원 가능한 병원으로 어레인지를 진행하고자 했지만 일단 충청권까지도 없다는 답신을 얻었고, 조금 있다가 꼬옥 입원이 필요하면 서울권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답신이 돌아왔다.

 고뇌에 빠졌다. 지금은 다행히 열이 떨어져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만, 언제라도 저 아이는 다시 경기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짧게 경기를 하면 다행이지만, 경기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 그래서 뇌에 무리가 간다면, 그러다가 아이가 다시 눈을 뜨지 못한다면? 막을 수 있는 질병의 악화를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평상시 같으면 하루 이틀이라도 입원하면 곁에서 시켜보고 싶은데, 그러자고 저 아이를 수도권의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맞는 일일까? 만약 저 아이가 소아 감염실의 마지막 입원 환자여서, 더 위급한 아이의 입원이 늦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머전씨 환자와 어전씨 개념에 시간 개념까지 더해지니 계속 응급실에서 일했던 나도 우선순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정을 내리긴 해야 했다.

 결국 환자의 관찰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가 하루 만에 퇴원하는 일은 득과 실을 따졌을 때 효율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이를 토대로 보호자에게 교과서 상 ‘입원’이 필수는 아니지만 정밀 검사는 필요함을 상기시켰고, 퇴원 후 다시 경기가 발생하면 꼭 다시 병원에 올 것을 단단히 교육 후 귀가시켰다. 다행히 보호자가 열 경기를 본 경험이 있어서 당황하지 않았으며 지금 병원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해 주셨다. 약을 지어주고 퇴원시키며, 전이라면 바로 입원했을 환자가 코로나 때문에 서울로까지 전원을 가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안타까웠다. 들어보니 다른 과장님 근무 때에도 다를 게 없고, 전원을 해야 한다 싶으면 더 큰 도시로 보낸다고 했다. 중앙본부에서 관리하는 병실도 항상 모자라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중환 이상급 되어야 정부에서 어레인지를 해주지, 그렇지 않으면 알음알음하여 겨우 전원 보내는 처지였다.

 

기진맥진한 얼굴로 넋이 나가 있자 같이 일하는 동기가 '웰컴 투 로칼' 하며 액땜한 셈 치라고 했다. 코로나 환자에 대해서는 대학 병원과 전담병원이 독박 의료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로칼은 로칼 나름대로 코로나에 열심히 대응하고 있었다.


P.S.

 2월에 잠시 코로나 전파가 소강되었던 때를 기점으로 요즘에는 코로나 환자에 대해 ‘자율 입원’ 이 이뤄지고 있다. 이전에는 본원 입원 시 보건소에 신고를 했고, 병상이 없을 경우 보건소에서 병상 매칭을 시켜주었는데, 입원 시스템이 자율로 바뀌고 나서는 ‘응급 환자’ 혹은 ‘중환자’가 아닌 경우 환자가 알아서 빈 병상을 찾아 입원하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코로나 전담 병원 자체의 수는 다소 감소하였으나, 각 지역의 2차 병원급에 일정 수의 코로나 병상을 가용하여 지역별 코로나 환자에 대해 분산 입원 치료 및 퇴원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의료인 체감상으로는 경증 환자 혹은 중증으로 갈 수 있는 환자에 대해 입퇴원이 이전보다 쉬워진 것에 대해서 매우 만족한다. 다만 경증 환자 입원 병상의 우선순위를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물론 같은 환자이긴 하지만 20-30대의 단순 열 환자가 예약을 했다는 이유로 기저질환자 또는 경증이나 중증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노령환자보다 우선 입원을 하는 사례들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노인의 경우,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한 예약제에 대한 접근성이 젊은 층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집에서 버티다가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러 왔다가 입원실이 없어 자택 대기를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사실 외래를 통한 입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우선 진료자에 대해 우선 입원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응급실을 경유해 입원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한 코로나 예비 병상을 병원 별, 혹은 지역 별로 항상 마련해 두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는 1-2일 정도 의료진의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 해당하는 자들로 응급실을 통해 우선 입원 및, 환자가 악화될 경우 중증환자 전원 시스템을 사용하여 관리하는 것이 올바른 의료 시스템 사용 방법일 것이다. 다만 이럴 경우 초초초초 경환자가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비해당자에 대한 과태료 혹은 무거운 응급 입원료라는 문턱을 만들어 놔야 한다. 사실상 병원 입장에서야 환자 1명 당 하루에 일정량의 보조금을 나라에서 받기 때문에 입원하는 질병의 중증도보다는 환자의 수가 중요하고, 이왕이면 입원해서 손이 안 가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경환을 당연히 선호한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대학병원으로 중환이 쏠리는 상황이 이뤄지고 결국 의료의 분담이 이뤄지지 않아 피로도가 축적되면 모든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 로칼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환자를 성심성의껏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주석:

[1] 어전씨(urgency, 긴급)란, 이머전씨(emergency, 응급)와 다른 뜻이나 우리나라 응급실에서는 대부분 혼용되고 있다. 응급이란 말 그대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환자에 대한 치료를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며 긴급이란 생명에 부담은 다소 적지만 비교적 빠른 치료가 필요한 경우나 혹은 응급으로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다고 하자.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아있던 탑승자 두 명이 동일한 응급실에 접수가 되었다. 운전자 A 씨의 경우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 에어백이 터질 정도의 큰 충격에도 정신은 또렸했다. 다만 두피 부분에 10cm가량의 열상과 함께 손목 쪽의 통증을 호소했는데, 눈으로 보아도 심한 골절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또 다른 탑승자 B 씨의 경우는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 차 사고가 났을 때 앞 유리창을 뚫고 상체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육안 상의 외상은 없지만 정신을 잃은 상태로 호흡이 매우 느리고 불규칙했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B 씨를 응급환자, A 씨를 긴급환자로 볼 수 있다. B 씨의 경우 정신이 없고 호흡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생명이 위험한 상태이며 앞유리창을 뚫고 나갔을 때 발생할 하도록 응급실을 운영하는 것이 응급실 의료진이 판단하고 해야 할 일이다. 의심하여 두부 손상을 감별하기 위해 Brain CT(뇌 컴퓨터 단층 영상)을 촬영해야 한다. A씨도 마찬가지로 두부에 큰 상처가 있어 Brain CT를 촬영해야 하나 당연히 B 씨가 먼저 촬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B 씨의 경우가 A 씨보다 뇌출혈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즉, 단순 열상, 위장염, 일차성 두통 등 빠른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복합 골절, 심폐기능 정지 등 응급 치료가 필요한 경우를 따로 생각해야 하지만 전자와 후자가 같이 있는 경우가 꽤 있어 구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응급’이라는 말이 ‘빠른’이란 말과 동급 시 되는 경향이 있어 더 구별에 혼선이 있다. 그리고 이런 환자들을 잘 분류하여 효율적인 진료가 이뤄지도록 응급실을 운영하는 것이 응급실 의료진의 역할이다.


[ 사진 출처 :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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