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 응급 Sep 08. 2022

S1. 코로나일지

#19. 로칼 2

#. 2022년 03월


‘119 인데요, 70대 여자 환자 오늘 00시 기준으로 격리해제됬다고 하는데, 제너럴 위크니스(general weakness, 전신쇠약)로 신고됬습니다. 혹시 가도 될까요.’

‘네 멘탈 얼럿(mental alert, 의식 상태가 정상임) 이시죠? 오세요.’


 로컬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별로 안된 어느 주말이었다. 주중보다 바쁜 주말인지라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119 상황실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격리가 풀린 지 별로 안된 환자였는데, 주변에 수용 가능한 응급실이 없었는 지 다른 도시 119 상황실에서 혹시 수용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문의했다. 119 구조대원 말로는 환자 정신과 신체징후가 괜찮은 상태라고 했지만 코로나 격리 해제 후 극초반인 환자인지라 지역에서 도무지 수용이 안되는 듯 인근 도시로 계속 문의중이란다. 사정이 딱했다. 딱봐도 두어 시간은 구급 차량 안에서 누운 채 이 병원 저 병원 문을 두드리는 중 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응급실 진료는 가능하지만 입원 여부는 불확실하다, 입원이 필요할 경우 전원을 고려해야한다’는 사실을 보호자 및 환자가 동의할 경우 이송해달라고 했다. 잠깐 수화기 저편으로 뭐라뭐라 시끌거린 뒤 환자를 이송하겠다는 119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보호자도 구조대원도 도로 위에서 날린 시간이 많아서인지 어느 정도 타협을 했던 것 같다. 보호자는 수액만이라도 맞고 싶다고 했고, 그것이 그날 악몽의 시작이었다.

 

 곧 도착한 환자는 70대 여환으로 과거력은 없지만 코로나 확진 이후 기운이 없어서 기분 전환 겸 산책나갔다가 계단에서 주저앉아 119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아이, 나 괜찮아! 요즘 못나갔더니 다리에 힘이 없어서 넘어진거야, 영양제 하나만 놔줘.”


라고 환자가 주장했지만, 주사 한대맞고 될 것 같은 모폴로지(Morphology, 상태)가 아니었다. 전신 부종과 쌕쌕거리는 숨, 날씨에 비해 지나치게 흘린 땀. 정신만 말짱하실 뿐, 신체는 말짱하지 못한 상태였다. 환자의 말대로 수액만 드리고 퇴원시켰다가는 다음날 꼴깍 넘어간 채로 오실 것 같았다. 이럴 땐 잘 구슬려서 검사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머님! 어차피 수액맞으려면 주사 바늘 잡아야하고, 다 맞는데 두 시간 걸리니까 주사맞는 김에 피 쪼끔만 빼서 검사할게요! 오케이?”

“응? 그래? 그램. 알았어 오케이.”

 

 저 연세에 기저 질환이 없다면, 없는 게 아니라 모르고 계실 가능성이 더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뒤늦게 도착한 보호자가 말하길 전에 심박동기 시술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정상 심장 기능이 아니니 몸이 부었을 수도 있지만, 감별해야 할 몇가지 질병이 있어 검사를 진행했다. 응급실 문을 들어올 때부터 결막에 핏기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초진 및 채혈이 끝날 때 까지는 환자 컨디션이 괜찮았기 때문에 한시름 놓고 밀려들어오는 다른 환자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갑자기 날 불렀다.


“과장님, 혈압이 좀 떨어지네요.”

“얼마에요?”

“80에 60이요(혈압 80/60 mmHg).”

“레이트(Rate, 맥박 수 heart rate을 뜻한다)는요?”

“90정도 되는 것 같아요.”

“엑스레이 찍었죠? 괜찮네. 노말 500만 로딩할게요.”


  환자의 혈압이 떨어졌고, 쇼크(shock)가 의심되는 상태였다[1].


 ‘아, 패혈증왔네.’


 어떤 감염인 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환자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문제는 우리 병원은 혈압이 떨어지는 패혈증 치료를 할 수 없는 작은 병원이어서 더 큰 병원으로의 이송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보호자에게 급히 입원 치료와 전원을 설명했고, 다행히 전원가야하는 상황에 대해 동의 했주셨다. ‘어차피 여기도 집 근처는 아니어서요.’ 이미 119 구급차를 탈 때 떠돌아 수용에 대한 역치가 매우 낮아진 상태셨다. 그런데 인근 대학 병원에 전화를 돌리며 전원 어레인지(arrange)를 시작한 30분만에 이거 큰일임을 깨달았다. 일단 주말이어서 전원이 잘 안되었고, 대학 병원의 중환자실은 이미 더 중한 환자들로 가득 차 수용 불가였다. 게다가 환자는 정부가 제시한 기준 상으로는 격리 해제에 해당했지만 감염 의심 증상이 남아있어 다른 병원들에서는 격리실을 이용하길 원하는 상황이었다. 중환자실 부족, 격리 병상 부족. 이 두가지 이유로 근처 모든 병원에서 전원 수용이 불가하다고 전해왔고, 부랴부랴 2급 병원 중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았지만 비슷한 상황이었다.


“과장님, 환자분 검은 변을 보셨는데요.”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환자가 검은 변을 보기 시작했다. 검은 변은 위장관내 출혈을 뜻한다. 급하게 약을 달고 환자를 지켜보는데 한 2차 병원에서 답신이 왔다.


“경리 병상은 있습니다. 코로나 검사 확인 후 입원하시게 되겠지만 응급실에서 24시간 정도 대기 감안하셔야 합니다. 연세가 많으신데 멜레나(melena, 검은 변)라...응급 내시경(위장관 출혈에 대한 적극적인 검사 방법)은 아마 못할겁니다. 대증치료 먼저 할 건데, 나빠지면 연명 치료 중지 권유할 겁니다. 모든 게 동의되면 전원오세요.”


 의학적으로 틀리거나 정도에서 벗어난 소견은 아니었다. 수용받는 병원의 입장이라면 나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을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고령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시경술은 이득보다 해를 입힐 가능성이 더 높았기에 대증치료가 먼저 필요했다. 문제는 환자와 보호자가 연명치료중지에 동의 하지 않는 데다가[2] 오히려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전이라면 환자가 테이블데쓰(table death, 시술 혹은 수술 중 사망하는 것)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경우 내시경술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는 모든 걸 동의한다고 해도 감염 격리시설 및 시술 가능한 의료진의 감염 위험성 등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목숨을 담보로 한 연명치료중지에 동의를 종용할 수도 없었다.


“죽어도 괜찮다는 서류에 싸인을 해야 입원이나 전원이 된다 하면, 저더러 엄마를 죽이라고 서명하라는 건가요?”


 이제는 화가 난 보호자의 적나라한 물음에 할 말이 없었다. 죽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나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보호자는 의료 방향에 대한 시각과 죽음을 목도한 감정의 동의,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현재 가능한 치료 선택지에 환자를 맞추며 차이를 메꾸려는 시도는 변명으로 들릴 것이다. 결국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드셨던 것 압니다. 격리해제 후에도 코로나가 발목을 잡는 게 저도 답답한데 보호자 분은 어떠시겠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환자만 그런게 아니라 전염병의 경우 거쳐야 할 절차가 많은데, 지금 전국적으로 갑자기 환자들이 늘어나 병원들이 잘 굴러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시경을 원하시는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위장관 출혈의 원인 파악보다는 일단 떨어진 혈압을 올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저도 다른 병원들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컨디션 올려놓고 내시경을 고려하자는 거에요. 연명치료중지와 일맥상통하는 건 아니지만, 내시경을 포함해서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를 할 수 있는 대형 병원들이 다 수용불가인 상태이고, 사실 상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이 불가하다면 저희급 병원에서 최선의 치료는 컨디션을 올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연명치료중지를 이야기가 나온 것 이에요. 지금은 약물 치료가 최선인데,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저희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하니까요.”


 보호자의 눈이 벌개졌다. 그리고 내가 조용히 내민 연명치료중지 서류와 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제 생각에 어머님은 입원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연명치료중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어느 병원에서도 전원이 힘들다고 하네요. 그런데 연명치료중지 작성하기로 결정하셨다면, 혹시 괜찮으시면 그냥 저희 병원에서 입원하세요. 저희 병원도 주말 내 내시경은 불가하지만 약물치료는 가능합니다. 지금은 이 환자에 대해서 제가 제일 많이 아는 의사이고, 입원하신 동안 응급상황이 터지면 응급의학과한테 연락이 오는데, 저 내일 밤에도 일하거든요. 주말 끝날즈음까지 컨디션 올려놓고 주중에 내시경을 고려해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주중에는 그래도 전원이 조금 더 여유로울 겁니다.”


 오랜만에 현타가 왔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위험 시 적극적 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서류에 서명을 요구하는 게 내가 건낼 수 있는 최선의 제안임이 서글펐다. 오랜시간동안 고민하던 보호자는 결국 연명치료중지에 동의했고, 우리 병원에 입원했다. 다행히 환자는 고비를 넘기고 치료를 이어갔으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면... 전원은 막혔고, 환자는 원하는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정부의 방침과 현장 사이의 괴리가 또다시 느껴진다. 병원 별 가능한 치료와 검사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존재했던 병원 간 네트워크가 무너진 것을 마주했고, 생각보다 로컬이 무섭게 흔들리고 있었다.

 

 P.S.

위의 환자에 대하여.

 코로나 중증 입원문의? 문의해봤지만 격리해제자는 해당이 안된다는 답신을 받았다.  

 코로나 재감염 여부? 문의해봤지만 격리해제자는 양성으로 나오니 오히려 PCR 검사를 하지 말라는 답신을 받았다.

 감염증상이 해소되지 않는 격리 해제자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견이 많다. 지금은 격리 해제(당시는 증상발현 14일 이후 PCR 검사없이 해제)후 일정 기간동안은 증상이 있어도 전염력이 없는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있지만, 실제로 입원하여 PCR 검사를 진행하면 여전히 감염력이 남아있는 환자들이 왕왕 보인다. 이러한 점들이 병원마다 자체 수용기준을 만들고, 정부의 다른 격리 해제 기준을 제시하는 이유다. 위 환자 역시 입원하여 진행한 PCR 검사 결과  CT 값이 10 정도였으며  CT(컴퓨터 단층 촬영)에서도  남아있는 폐렴 소견이 관찰되었다. 즉 환자는 전염력이 남아있는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이 의심되는 경우였는데, 정부의 격리 해제기준에 해당함을 토대로 비격리 병상으로 입원했다면 거기 입원한 모든 환자들이 코로나에 노출되어 더 큰일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기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골치아팠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격리 유무에 대한 점이었다. 시시각각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탄력적으로 변화한 점은 칭찬할 만한 점이지만, 맹목적으로 가이드라인 만을 따라가기엔 위험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병실 순환율과 감염병 전파차단을 조율하는 데 있어서 경환과 중환, 증상의 유무, 기저질환 유무, 나이 등 환자의 감염일수와 함께 다른 기본 변수(factor)를 함께 고려하여 스코어링(scoring)을 통해 환자 그룹 별 격리해제 여부 및 격리 단계를 제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고안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불가하지만 이를 토대로 다음 전염병때는 쓸 수 있지 않을까.

 

주석:

[1] 우리가 알고 있는 쇼크는 신체 기관의 산소 공급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여러 증상 중 대표적인 증상이 저혈압 소견이다. 그래서 혈압이 낮으면 ‘쇼크가 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쇼크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응급실에서 접하는 원인 중 상당수가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다.

[2] 암 등 기저 질환자들은 이미 연명치료중지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어 이해도가 높으며 가족과 충분한 논의가 진행된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동의율의 높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설명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의미를 이해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지금 당장 환자에 대해 죽음을 동의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의율이낮으며 의료진에 대한 불신 또한 높다.


[ 사진 출처 : Photo by Zhen Hu on Unsplash ]

작가의 이전글 S1. 코로나 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