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도비 이즈 프리
#21. 2022년 04월 15일
정부에서 2022년 4월 15일, 격리해제에 대해 언급했다.
“내달 2일부터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됩니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가 가시화되었다. 하늘길이 조금씩 열렸고, 폐쇄되었던 캠핑장이나 놀이공원 등이 속속들이 개장함을 홍보했다. 수도권 소재의 상점의 시간 및 인원 수 제한도 점차적으로 줄인다고 했고, 이미 해제된 지방도시에서는 밤이 깊어도 시끌시끌 기분좋은 사람들의 떠들썩함이 울려퍼졌다. 응급실 내 감염의심자가 방문하는 수도 많이 줄었다. 응급실 내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는 걸 깨달아서 였는 지 감염 환자가 진짜 줄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체감되는 고열 문의 자체의 감소 및 격리해제자 수의 증가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후자가 더 현실에 부합하는 결과라 생각되었다. 아직 나가지 않은 대학병원 TFT 카톡방에서도 하루에 진행되는 검사 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코로나 입원도 대기 없이 바로 이뤄지는 걸 보면 대학병원도 드디어 여유가 생긴 듯 했다. 웬수였던 코로나가 조금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루드윅 안자이나[1] 인데 혹시 전원될까요?”
“네, 됩니다.”
“코로나는 키트검사밖에 안나왔는데요, 음성이긴합니다.”
“코로나요? 아아, 괜챃습니다. 그냥 빨리보내세요 ~”
“감사합니다!”
로컬에 일하면서 상황이 변함에 따라 가장 좋았던 것은 코로나 확진자가 아닌 환자에 대한 전원이 쉬워졌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코로나 환자의 경우 전원가려면 보건소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논외이다). 일부 메이져 급 대형 병원 빼고는 응급실 빗장이 가벼워졌다. 전원이 아직 어려운 병원도 중환자 병상이나 응급실 병상 여유가 없는게 문제이지, 코로나 격리에 대한 기준은 많이 완화되었는데, PCR 외에도 항원항체 키트 검사를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이 큰 몫을 했다. 하루도 더 걸리는 PCR 보다 30분밖에 안걸리는 항원항체검사는 검사 결과 대기로 인한 딜레이를 없앴고, 덕분에 전원 때문에 전전긍긍하거나 늦게 퇴근하는 일이 줄었다.
응급실 자체적으로도 PCR보다 항원항체 키트 검사를 먼저 진행했고, PCR이 필요할 경우에는 안심진료소나 선별진료소를 이용하도록 안내하여 응급실 과밀화를 줄였다. PCR 검사 결과를 하루라도 빨리 얻기 위해 야간에 응급실 내원하는 환자들도 키트검사가 인정이 되자 응급실에 굳이 시간을 내서 오지 않았다. 이때 하루 평균 감염자의 수가 1만 명~ 2만 명 정도였다. 응급실 환자의 구성비도 변했는데 코로나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단순 복통, 두통, 목코감기, 눈병 등의 경환 비중이 늘었다. 코로나 때 확 줄어든 환자 수는 아직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았지만 곧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따라서 응급실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이 필요했다[2].
“곧 회식 가능하겠다, 그치?”
“헬스장이랑 찜질방이랑 시간제한도 다 풀렸을걸?”
“결혼식들도 올해 엄청 몰려있더라.”
“돈 쓸일만 남았네!”
코로나 격리 해제가 발표되며 의료진도, 의료진이 아닌 사람들도 '이제는 자유야! 도비이즈 프리('Dobby is free',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집안일 요정이 해방되면서 외친 말)'를 외쳐댔다. 각종 제약이 슬슬 풀리며 마스크가 없는 생활이 눈앞에 놓여있는데, 곧 마음 놓고 실내 생활을 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이나 운동 경기들이 재개될 것임이 틀림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모습일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눈앞에 대가와 있었다.
P.S.
코로나 환자가 감소하면서 기분좋은 분위기가 연연했지만, 가슴 한켠이 항상 불편하다. 중증 환자와 사망 환자에 대해 충분히 논의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뉴스를 보아도 '총 환자 수 감소'는 글자 포인트 60 포인트로 매시간 보도하면서 '중등도 코로나 환자의 사망률이 늘었다'라는 기사는 쥐똥만한 글자 크기에다 메인 뉴스 뒤에 짧게 뒤따라 나오는 정도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자 했던 이유가 초반에는 감염률을 줄이기 위해서였더라면, 후반에는 치명률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팽배했다. 초반에는 ‘내가 걸리면 안되는데’하는 마음에 백신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킨 것이, 코로나의 증상이 경한 오미크론으로 우세종이 바뀌며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때문에 코로나에 걸려서 고생하면 안되지’하는 생각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한 것이다. 하지만 10대부터 50대까지의 높은 감염률에 비한 낮은 치명률이 자꾸 부각되다보니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율이 떨어지게 되었고, 고령자와 고위험군은 어느때보다도 더 코로나 접촉에 취약해졌으며 이들의 치명률은 줄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60대 이상의 고령자와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와 치료는 잘 되었을까 의심해 볼만하다. 그리고 조금 더 집중하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따라온다. 더욱이 이런 의료적 약자에 대한 의견이 빈약한 것은 그들이 이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마무리 되어가는 것을 자축하기에 너무 많은 사람이 아깝게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내 부모님 연배의 환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사망했다).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에, 그들의 생존권 보장에 최선을 다했는 지 반성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체 치명률은 줄어들었다. 이게 치료의 효과가 가져온 결과인지 이미 병에 목숨을 빼앗길 고위험자가 더이상 남아있지 않아서 집계된 통계적 오류인 지 잘 한번 생각해보자. 그 후에 대학 병원 및 코로나 전담 병원 축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더 많은 기저질환자와 노인분들이 잘 버텨내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주석 :
[1] Rudwig angina, 이비인후과적 응급으로 목이 심하게 부어 기도를 막을 수도 있는 질병으로 시간을 다투는 초응급 질환이다.
[2] 개인적으로 이 시기가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의 정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 강제적으로 국민과 의료진 모두가 경험한 2년 동안의 emergency(응급) 와 urgency(긴급)의 차이점을 확고하게 해야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달라진 응급실에 대한 인식 덕에 이전에 병의 경중에 상관없이 ‘큰 병원이 빠르고 고급진 진료를 해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줄어들었고, 현재 환자의 질병의 치료가 가능한 근거리 병원으로 방문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줄었다. ‘연락된 전원’과 소위 밀고들어가는 ‘연락되지 않은 전원’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높아졌다. 즉,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환자 및 보호자의 순응도가 높아져 응급진료에 대한 효율성이 높아졌다. 물론 응급의료센터 자체에 대한 인식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개선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인식이 한층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몸으로 겪은 인식을 확고하게 하고, 미래 세대에게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유지해야 한다. 결국 이 시스템이 유지되며 발전할 지, 이전과 같이 복구되어 도루묵이 될지는 정책적, 사회적 시류의 파악과 이에 대한 의료계와 정계, 응급의학과의 빠른 대처 및 노력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 사진 출처 : Photo by Jacob Jensen on Unspla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