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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응급 Sep 25. 2022

S1. 코로나 일지

#22. 안녕

 #. 2022년 04월 25일


 사회적 격리 해제 발표 이후 곧바로 코로나를 1군 감염병에서 2군 감염병으로 격하하겠다는 발표가 뒤따랐다. 2군 감염병 역시 국가 관리 전염병이지만, 1군과 달리 발견 혹은 의심 즉시 신고가 아니라, 1주 내로 여유 있게 신고하도록 하는 게 1군과 다른 점이다. 국가에서 관리하겠다는 취지에는 변화가 없지만, 시간적 제약이 풀린 모양새다. 약간 이해가 필요한 점은 2군 감염병으로의 격하와 사회적 격리 해제의 진정한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점이었다. 2군 감염병으로의 격하는 시간 제약의 완화이고, 사회적 격리 해제는 공간 제약의 완화이다.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제도가 일직선상에서 만나, 마치 인과관계처럼 보이는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격리가 필요한 질병임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격리 해제가 눈앞에 놓인 지금의 분위기라면 나가고 싶을 땐 나가고, 아닐 땐 집에 있는 선택적 격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확진자가 해열 주사맞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부터 분위기가 그랬고 지금은 격리자에 대한 관리마저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코로나 초기에 과자와 라면 등 구호품 박스를 주며 자가 격리를 철저하게 관리하던 때와는 달리 환자 스스로 격리를 해야 하니 당연히 강제성이 떨어졌다. '2주 격리 브이로그'가 유튜브 조회수 1위를 앞다투던 때가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다 해제되어 감염률이 낮아져 헤이해 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곧 2군 전염병 되면 자가 격리 풀릴 거라던데요.’ 하고 2군 전염병 격하와 격리 해제를 동일 선상에서 보는 시선이 이미 만연했다. 이러다 보니 코로나 검사를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하루에 내 근무할 때만 20-30명씩은 거뜬히 이뤄졌던 코로나 검사가 점점 줄어들더니 하루 종일 10건도 채 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입원 전 검사로만 코로나 검사 처방을 낸 날도 있었는데, 이런 날들이 줄을 있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아, 코로나가 이제 진짜 끝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05월은 하늘길이 아주 열리다 못해 어서 옵시오의 느낌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신-냉전시대에 석유가 동결되면서 유류값이 고공행진을 해도 2년간 방콕 집콕했던 사람들의 여행 욕을 꺾을 수는 없는지 성수기 비행기표값이 매진이란다(현재는 유류할증료가 너무 높아져 외국여행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었다). 휴양지로 유명한 동남아 국가들은 바로 입국 시 PCR 검사하는 걸 항원항체 자가 키트 검사로 변경하거나 3차 백신 접종만 완료하면 입국이 가능하게 해 놓았다. 격리 기준이 주변국보다 꽤 높은 우리나라도 해외여행 후 국내로 들어올 경우 PCR 검사가 있으면 자가격리를 하지 않도록 많이 격리 기준을 낮췄다.

 중국은 반대 노선을 탔는데 상하이에서는 이전 탄저균 발생 때와 같이 ‘상하이 봉쇄령’이 내려졌다. 발표가 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갑자기 코로나 전염력이 높아져서 인 듯했다. 나중에 봉쇄가 풀리고 나서야 그 원인을 제대로 알겠지만 중국 외 몇 나라를 제외하고 정말 위드 코로나가 실현되는 게 느껴졌다.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정부의 5월 2일 이후로 2군 전염병으로 격하, 1달 간의 계도 기간 이후에 2군 전염병으로 관리하겠다고 ‘아직 격리 해제 아닙니다’라는 발표에도 이미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졌다. 이제 누가 먼저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지 눈치싸움 중이다. 나도 5월 2일이 되자마자 오랜만에 마스크 없이 등산을 했다. 산에 들어가자마자 비 오듯 흐르는 땀과 막히는 숨 때문에 턱스크를 했다. 가끔 다른 등산객과 마주치면 올려 썼지만, 오랜만에 맞는 풀내음이 참 상쾌했다. 밤 산책할 때도 오랜만에 여름 냄새를 흠뻑 마실 수 있었다. 물 내음과 풀향이 짙은 여름 공기를 싫어했었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2년 반, 인생에서 전무후무할 전염병과의 전쟁을 전선 최전방부터 후방까지 겪고 나니, 모든 기억이 SF소설 같다. 허무맹랑하고 감정적이며, 그래서 현실감이 없다. 그래도 언젠가, 5년 10년 주기로 다가올 또 다른 전염병이 발생하면(그때는 마스크가 아니라 폴리 글러브나 라텍스 글러브가 전 세계에 퍼질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읽고 지나가는 소설은 아닌 것임은 틀림없다.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마셨다. 집 앞에 있는 작은 카페였는데, 얼마 전부터 코로나 때문에 축소했던 시간을 앞뒤로 늘려 오전 일찍부터 문을 열기 시작했다. 햇볕이 따스했던 건 2년 전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모두 똑같은데 밖에 나와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맞는 햇볕은 2년 전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었다. 이 또한 코로나가 남기고 간 작은 뜻밖의 선물일 테다. 이제야. 비로소 멀어지는 코로나의 뒷모습을 배웅할 마음이 들었다. 안녕, 코로나.


P.S.

지금까지 약 2년 간의 의료를 하면서 잦아들었다고 생각했던 코로나가 2022년 06월을 기점으로 다시 유행하며 제2차 코로나 시대가 온 것 같다. 끝나가기 때문에 글을 올린다고 했던 첫 글이 무색하게 하루 달리 빠르게 많아지는 코로나 환자들에 대해 나를 포함한 의료진도, 시민들도 많은 시각의 변화가 생겼다. 의료진으로써 진료 효율이 늘어났으며 응급실 운영면에 있어서 유연해졌다. 아마 대중들에게는 무섭지는 않지만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감염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 코로나가 준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인식의 변화를 기점으로 '1세대 코로나'와 '2세대 코로나'로 나뉘어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번 대유행은 코로나 초반 경상도 중심으로 이뤄진 대규모 감염에 비해서 체감 상의 임팩트(impact)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제는 의료 및 경제를 중심으로 국가 개입을 주도로 이뤄진 봉쇄정책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산업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코로나와 함께 동반하여 장기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 교류 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 사진 출처 : Photo by Jack B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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