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평등과 인격적 평등

자유와 평등

by 오호영



자유와 평등은 상호 배치되는 것일까. 평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자유는 많이 갖고 잘난 사람들의 것이고, 평등은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것일까.


우선 자유부터 생각해보자.

자유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 강압이나 강요를 당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로 나눌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극적 자유는 상당부분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다. 좋은 차를 사고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은 부자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해서 적극적 자유를 못 누리는 것은 아니다. 투표를 통해 권리를 행사하거나, 특정정당을 지지하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직업을 선택하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도 소중한 적극적 자유다.


소극적 자유는 부자나 가난한자 모두에게 소중하다. 재산,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지 않고 의견을 표현하고 정치활동을 하고 개성을 추구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국가권력에 의해 당하는 권리침해는 민주국가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평등은 무엇인가

자유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고 있지만 평등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지 않다. 처음에 평등은 하느님 앞에서의 평등, 인격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1776년 6월에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기안했고 7월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회의에서 채택된 미국독립선언서(美國獨立宣言, 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에서 평등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 받았다. 그 가운데에는 생활, 자유 및 행복추구권이 있다.



미국독립선언서에서 평등은 누구나 평등하게 대우받거나 평등하게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면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개인들이 자유롭게 사는데 있어서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누구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남북전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인격적 평등의 개념은 기회의 평등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기회의 평등은 가문, 국적, 피부색, 종교, 성별이 인간에게 열리는 기회를 결정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그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회의 평등은 사실상 인격적 평등과 동일한 의미이다. 그런데, 기회의 평등도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인 소극적 평등과 동일한 기회를 확보하는 적극적 평등으로 나누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극적 기회평등은 피부색, 종교 등으로 차별받지 않고 능력과 노력에 따라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므로 인격적 평등과 동일하게 된다. 피부색, 종교가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선택권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그런데, 적극적 평등은 어떤 기회를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해야 하므로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빈부, 학력, 계층이 다르고, 본인의 능력, IQ, 성격, 외모, 신체적 능력 등 모두 다르다. 개개인이 모두 다르고 다름을 추구한다는 전제에서 기회의 평등을 생각해야지, 다름이 비정상적인 상태이고 모든 사람의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신체적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모두가 손흥민과 같은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동일한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축구선수 출신의 열정적인 아버지, 조기교육, 재능, 성실함, 조기 축구 유학, 훌륭한 스승 등 모든 조건들을 똑같이 맞춰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두뇌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게 어떻게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줄 수 있을까. 멋진 몸매와 외모를 타고난 사람이 할 수 있는 영화배우, 탤런트를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어떻게 평등한 기회를 줄 수 있을까. 한 번만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발상이다. 모든 성공한 사람과 똑같은 환경을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제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스템을 만들고 주어진 시스템에 따라 각자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 개인은 가만히 있는 가운데 시스템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만드는 방식은 그 어느 역사에서도 시도한 적도, 성공한 적도 없는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모두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면,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속임수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누구는 한 시간만 공부해도 우등생이 되지만, 누구는 백시간을 공부해도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기회를 만드는 것이 가치있는 인생이고 살아갈 의미를 준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과 같은 드라마틱한 삶도 분명 존재한다. 되지도 않을 기회의 평등때문에 모두를 망치는 불상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기회의 평등보다 더 최악은 결과의 평등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 이념은 소설 그 자체다. 공산주의 국가는 정치체제만 공산당이 독재할 뿐, 경제체제는 시장경제로 모두 전환되었다. 지구상 그 어느 국가도, 심지어 북한까지도 장마당이 경제의 근간이 되어 계획경제는 실패한 실험이 되었다. 결과의 평등은 가능하지도 않고, 추구할 필요도 없음이 명확하다.


기회의 평등이 반드시 필요하고 자유보다 더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려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인데 성, 연령, 학력, 피부색, 인종, 지역 등을 기준으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차별은 당연히 금지해야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예컨대, 성의 경우 남성, 여성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게이, 레즈비언, 성전환자 등을 고려하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남녀 화장실에 더하여 이들 각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차별은 금지해야 하지만, 쌍둥이 조차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는데, 현실에서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차별금지,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선언적 이상향에 그쳐야지 정책목표가 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세상에 동일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리사의 음식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청소부도 사람마다 청소결과가 다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곧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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