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사치가 된 시대,
유머는 가장 저렴한 생존기술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는데,
나는 요즘 개발도상국 국민처럼 산다.
물가상승으로 식자재값이 폭등했는데
안 먹고 살 수도 없으니 나머지 소비를 확 줄였다.
한 달 지출 내역을 펼쳐보니, 식비가 절반 이상(+ 건강보조제 포함).
‘선진국 시민’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나의 통장은 늘 환율 변동에 휘청이는 신흥국 통화 같다.
이쯤 되면 “의존하지 않고는 독립할 수 없는 삶”,
그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유머’에 의존하며 버틴다.
먹는 재미도, 쓰는 재미도, 배우는 재미도—이젠 다 돈이 든다.
자급자족은 불가능해졌고,
분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모든 것 = 돈이다.
돈이 떨어지면 즐거움도, 배움도, 감정도
모두 멈춰버리는 기묘한 시대.
그래서 나는 시시껄렁한 유머 채널을 켜놓고
내 뇌를 속인다.
“이건 회피가 아니라 즐거움이야.”
억지로 도파민을 짜내며,
그저 ‘살아 있는 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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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유머’는 ‘유희’라기보다
가치전복 욕망 + 내재된 폭력성의 방출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건 ‘유머(humor)’가 아니라 개그(gag)에 가깝다.
인간애(humanism)를 잃은 웃음은 ‘유희’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개그가 조롱에 가까운 풍자를 많이 담는 게 아닐까 싶다.
사는 게 팍팍해질수록 유흥의 폭력은 세진다.
나는 웃고 있지만, 사실 이미 쫄려 있다.
폭력은 쉽게 전파되니까.
누군가를 비웃는 순간,
나는 이미 그 폭력의 경로 안에 들어가 있다.
이때 분비되는 건 도파민이 아니라 아드레날린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찐하게 웃고 나면 힘이 생기는 게 아니라 피로만 남는다.
그렇다면 진짜 유희의 유머는 무엇인가?
아재개그.
아무도 조롱하지 않으면서,
전복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웃고 나면 맥없이 풀어지며 느슨해지는—그야말로 여유의 기술.
(사실, 이 ‘맥없음’이 바로 전투 모드 해제의 신호다.)
자본주의의 분업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외부에 의존하게 된다.
돈만이 아니라, 기분도, 동기도, 웃음도.
그래서 더더욱 유머의 품격이 중요해졌다.
조롱과 비아냥의 웃음은 아드레날린을 태우고 피로를 남기고,
인간애가 살아 있는 유머는 긴장을 풀고 여유를 남긴다.
결론.
비아냥대지 말고, 아재개그 합시다.
누구도 상처 주지 않아야 나도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요.
웃음의 코드가 만국공통의 정서는 아니란 사실을 잊는다면,
지금 폭탄처럼 터지는 웃음이
누군가에겐 진짜 포탄이 되어도 좋다는 뜻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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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유머 5선 (a.k.a. 아재개그)
피로사회 속 도파민 정화용, 무해한 웃음 샘플
1. 화장실에서 방금 나온 사람을 네 글자로? → “일본사람…”
2.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 “최저임금”
3. 전화로 세운 건물 이름은? → “콜로세움”
4. 오리를 생으로 먹으면? → “회오리”
5. 수박 한 통엔 오천 원, 두 통엔? → “게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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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노트
1. 왜 우리는 ‘의존적 인간’이 되었나
개발도상국은 기초재(식량·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의 분업화는 생존의 거의 모든 부분을 외주화 했다.
요리, 수리, 여가, 위로—이제 모두 돈으로 구매해야 한다.
물가가 오르면 몸은 노동을 줄여도 마음은 더 고립된다.
그때 ‘유머’가 값싼 생존연료가 된다.
2. humor의 어원
라틴어 umor(습기)에서 왔다.
중세의 체액설에서는 인간의 기분(humor)이 체액의 균형에 따라 변한다고 믿었다.
이후 “기분을 조절하는 여유”로 확장되며
타인을 상처 주지 않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정서적 유연함의 뜻이 되었다.
3. gag의 어원
영어 동사 to gag은 “재갈을 물리다, 숨 막히게 하다”에서 비롯되었다.
즉, ‘무대 장치’나 ‘즉각 반응 유도용 장치’라는 의미.
웃음을 짜내는 기술이지, 인간애를 돌보는 행위는 아니다.
4.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우리 안의 두 가지 ‘행동 유발 신호’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은 모두 뇌와 부신(副腎)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즉 호르몬이다.
둘 다 우리 몸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작동 이유와 결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도파민(Dopamine)
“기대와 동기”의 호르몬이다.
새로운 자극이나 가능성을 마주했을 때,
뇌가 ‘보상이 올 것 같다’고 판단하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때 인간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으로 변하며,
학습·탐구·몰입 같은 행동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다만 이 회로가 과도하게 자극되면
‘즐거움’이 아니라 ‘기대’ 자체에 중독되어
다음 자극을 끊임없이 찾게 된다.
아드레날린(Adrenaline)
“위기와 대응”의 호르몬이다.
공포, 분노, 경쟁, 긴장 같은 자극에 반응해
심박을 높이고, 근육에 힘을 주며, 감각을 예리하게 만든다.
일시적으론 집중력과 에너지를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피로와 불안을 남긴다.
결국 둘 다 ‘살아 있으려는 몸의 언어’다.
도파민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면,
아드레날린은 “지금 당장 버티게” 만든다.
그래서 조롱과 경쟁에서 나오는 웃음은
순간적으로 각성을 주지만 피로를 남기고,
공감과 여유에서 나오는 웃음은
천천히 도파민을 순환시켜 회복을 만든다.
5. 진짜 유머의 역할
유머는 원래 ‘관계의 온도조절 장치’였다.
적대나 긴장을 무력화시키는 방식.
즉, 전복의 방향이 ‘타자에게’가 아니라 ‘상황 전체’로 향할 때,
비로소 웃음은 회복이 된다.
베르그송(H. Bergson)은 웃음을 “경직된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사회적 윤활유”라 했고,
고프먼(E. Goffman)은 그것을 “긴장을 완화해 체면을 지키는 연출의 장치”라 했다.
결국 진짜 유머는 누군가를 이기는 말재주가 아니라,
함께 버티게 하는 온도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