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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삶과 앎_가려움 절대 못 참지

언어로 긁어내는 일에 대하여

by 퇴B


요철 (凹凸)

‘凹凸’.

이 한자가 처음 내게 상형문자라는 게 어떤 건지,

왜 그것이 그림에 가까운 언어인지를 가르쳐준 단어였다.


그날 이후 나는 한자 한 자를

금고 비밀번호를 맞추듯 바라보게 됐다.

마침내 뜻의 문을 열고 나면,

그 안에는 해석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이 들어 있었다.


글을 이해하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와 내 안의 이미지가

어딘가에서 맞닿지 않으면,

이해라는 금고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사람이 글을 읽다 전율하는 순간이란,

오랫동안 긁히지 않던 마음의 한 지점을

딱 맞는 문장이 긁어주는 찰나 아닐까.

그때 우리는 문장을 ‘읽는다기보다’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내게 모르는 단어를 새로 알게 되는 기쁨은

질 좋은 효자손을 얻은 기분과 비슷하다.

그 단어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내는 순간,

언어가 비로소 내 몸 안으로 들어온다.



가려움, 절대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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