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장. 삶과 앎_온 동네 역사는 수건에 있다(브런치북

by 퇴B


그 집에 역사는 서랍에 산다


엄마 집엔 언제나 새 수건이 넘친다.

가져오고 또 가져와도, 서랍 한 칸을 열면 여전히

박스째로 수건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다.


그중엔 1989년 수건도 있다.

아직도 새 수건이다.


그러니까 박스를 열면 먼지가 아니라 시간이 날린다.

펴보면 역사가 쏟아지는, 살아있는 박물관인 거지.


“00 건설 기공식”, “00 병원 개원기념”, “00 동창회 10주년.”

그리고 조카 돌잔치 수건, 사촌동생 결혼식 수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한 가족과

이웃사회 소식들은 수건에 다 남겨져 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수건에다 역사를 기록할까?

이게 어디 역사책이지, 수건이냐고.


그 조카는 벌써 군대도 다녀왔는데,

그 수건은 여전히 박스째 뽀송하다.


그래서 가져간다니까 엄마는 말한다.

“그건 아까워서 안 돼. 딴 거부터 써.”




고작 수건이 뭐가 아깝다는 말이지 하다가,

다른 수건들을 모두 펼쳐본 다음엔 이해했다.


유독 박스째 멀쩡한 수건들은 모두

엄마 일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담긴 수건이었다.



왕래가 잦던 친척의 결혼식,

엄마 계모임 회원들의 회갑연,

생때같던 손주들의 돌잔치.



그러니 아까운 건 수건이 아니라, 그 시절의 기억이었다.


수건으로 남아버린 그때의 감정들- 떨림 벅참, 낯섦, 기대.

그리고 부지런히 그들을 축하하러 다녔던 그 시절의 당신.



사진첩의 빛바랜 사진들보다 더 생생하게 접혀 있는 엄마의 추억들.


비단 우리 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집집마다 유래를 알 수 없는, 유물은 수건이 발굴된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집 안에서 그 동네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왕조실록 500년의 기록 정신은,

사진첩에 죽은 채 박제되는 기억이 아니라

살아가는 생활로 역사를 이어가는 민족의 습성으로 전승된 거지.


그러니 한 가정의 욕실 안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그래서 우린 우리의 뿌리를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그런 방식으로 우린 서로와 서로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어제처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손 닿는 거리 안에서,

매일의 생활 속에 그때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머문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말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된다(durée)'.


시계 위의 시간은 단지 ‘측정’이지만,

의식 속의 시간은 켜켜이 쌓이며 현재를 침투한다.



우리는 그걸 삶으로 사는 민족이다.

기억은 어제의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감각 안에서 살아있다.



시절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때의 감정만큼은 오늘로 함께 사는 거지.


그러니까 ‘왜 우리 민족은 도무지 잊지 못하는가 ‘에 대한 답은

우리 집 욕실 서랍장에 있었다.

그저 잊히지 않을 만큼 가까이에 두었다가,

잃어버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는 것이다.



—-

자매품, 우산


비 오는 날 지하철역에 흘리고 가는

‘00 돌잔치’. ‘00 개업 기념’ 로고의 우산들,

그건 또 다른 형태의 유실된 역사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